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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새로운 서식지

까마귀의 생존과 적응 그리고 공존을 위한 공간

by 이른아침

찬 기운을 품은 바람이 분다. 바람을 가르며 까마귀 예닐곱 마리가 날아와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는다. 검은 깃털은 햇살이 스치며 은빛으로 번뜩이고, 까악 까악~ 울음소리가 차갑게 하늘로 퍼져간다. 잠시 후 한 마리가 건물 옥상 위에 설치된 피뢰침으로 옮겨가자 우르르 뒤따라 날아오른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때 어디선가 까치가 날아와 까마귀 무리 뒤를 쫓는다. 얼핏 보면 꼬리잡기 놀이 같은 비행이지만 높은 자리를 두고 벌이는 쫓고 쫓기는 신경전이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들은 사라지고 파란 하늘 아래 빈 허공만 남는다. 찬바람이 거친 소리를 내며 지난다.


요즘 도심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벌이는 잦은 경쟁과 충돌은 우연이 아니다. 본래 까마귀는 주로 숲이나 산에서 서식했다. 한라산의 영실기암 등 험준한 산지에서도 무리를 이루며 비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요즘엔 농경지나 인가 주변은 물론 도심까지 빠르게 서식지 넓히고 있다. 그러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살아온 까치와 맞닥뜨렸고 도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먹이, 서식지, 번식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한다. 이들이 편을 갈라 날고, 쫓고, 울고, 싸우는 광경을 점점 자주 본다.

<높은 자리를 두고 벌이는 까마귀와 까치의 다툼>

까마귀들이 서식지를 도시까지 확장해 온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개발이 이어지고 도시가 커지면서 숲이나 농경지 같은 먹이를 구하고 쉴 수 있는 서식지가 줄었다. 건물과 전봇대나 가로등 같은 여러 형태의 인공 구조물들은 완전하지는 않으나 나무와 숲을 부분적으로 대신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이런 시설들은 자연의 나무처럼 생명력을 품고 있지 않지만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게다가 숲이 줄어든 대신 도시에는 공원과 녹지가 생기고, 크지는 않지만 도심 속에 흩어진 이 작은 숲들은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한다.


또한 까마귀가 산과 들을 떠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기란 예전보다 어려워졌을 것이 분명하다. 농약이 뿌려진 논밭에서는 곤충 같은 자연 먹잇감이 줄어들고 비닐하우스와 기계화 농업으로 들판에 남는 낟알 같은 먹이도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반면에 도시는 사람이 남긴 쓰레기나 길가에 떨어진 음식 쪼가리 같은 먹이가 있고, 찾으려 헤매지 않아도 강렬하게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도 있다. 자연 속에서는 계절마다 먹이가 들쭉날쭉하고 겨울에는 텅 빈 식탁처럼 느꼈겠지만 도시는 겨울에도 음식의 흔적이 끊이지 않는 365일 영업하는 거대한 뷔페가 아니었을까.


또한 도시는 숲보다 따뜻해 추위를 피하기에 유리하다. 난방열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눈이 쌓이더라도 금세 녹아 먹이를 찾는 데 방해가 적다. 그 때문인지 겨울이면 까마귀의 모습이 도시 곳곳에서 더 자주 눈에 띈다. 특히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는 추위를 피해 큰 무리로 도시에 몰려들곤 한다. 전깃줄이나 가로수 위에 앉아 시끄러운 울음과 배설물로 불편하게 한다. 이런 모습을 전하는 뉴스 속 풍경이 거북하거나 흥미로운 기삿거리로만 보이지 않는다.


도시로 삶터를 옮긴 까마귀의 선택은 생존 조건이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금방 배우고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지능 덕분이라는 연구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산과 들보다 도시의 환경이 몇몇 조건에서 유리하다면 더 많은 종의 새들이 도시로 몰려와야 한다. 그러나 도심에 적응한 종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도시라는 공간이 새들에게 결코 쉬운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시는 소음, 조명, 사람과 차량의 이동 등 낯설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많다. 그럼에도 까마귀는 이러한 환경에 학습과 적응으로 대응해 왔다.


사실 이런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까마귀를 지켜보면 곧 알 수 있다. 바람에 날리는 물체를 집거나 따라가고, 인쇄물이나 비닐을 부리로 물고 놀며 탐색하는 행동을 곧잘 본다. 차가 지나가는 짧은 틈에도 내려앉아 도로 위를 바삐 살피기도 한다. 겉으로는 장난처럼 보여도 이는 주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호기심과 탐색은 도시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지능과 감각을 다지는 행위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름부터 지켜보며 느낀 것은, 까마귀를 도시로 불러들인 것은 우리이며, 불편과 불만을 내세우기에 앞서 이 도시도 모든 동식물이 함께 살아갈 공간이고 서로의 일상이 겹치는 자리라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파트 옥상 난간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는 까마귀 한 마리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곳의 새벽과 바람을 함께 하는 이웃이다. 겨울바람이 한층 날카로워진 이른 아침이다.


<까마귀가 다양한 물건을 부리로 탐색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 까마귀의 지능이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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