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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r 24. 2024

향기 나는 봄

쑥에 난 털은 뭘까

봄이면 쑥을 캔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것에 비할 만한 큰 즐거움이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렸을 때 엄마와 누나를 따라 쑥을 캐러 다닌 기억도 어렴풋하다. 서울살이를 끝내고 지방 도시로 오면서 다시 쑥을 캤고 그 이후로 계속된다.

    

비닐봉지와 과도를 챙겨 작정하고 나가지만, 산책이나 산행 나갔다가 쑥이 보이면 캐게 되고 칼이 없으니 손톱으로 뜯게 되어 까맣게 쑥물이 든다. 등에 따뜻한 볕을 독차지하쑥 캐기에 빠졌는데 여성분들이 옆에 와 캐는 바람에 쑥스러웠던 이후로 늘 아내와 함께 캔다.

    

이렇게 캔 쑥으로 국을 끓인다. 쑥 맛은 향이 8할이다. 그러나 향은 오래 머물지 않으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국물에 넣기 전에 쑥을 찧거나 잘게 자를 때 향이 난다. 이때는 야생 그대로 콧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끓을 때 한 번 더 부드러운 향이 난다. 김과 함께 올라오는 향이라 놓치기 쉬워 냄비 뚜껑을 열면서 콧방울을 한번 벌름거리게 된다. 향은 시네올(cineol)이라는 정유 성분으로 휘발성이라 쉽게 사라진다.

    

쑥은 잘 씻기지 않는다. 쑥잎에 촘촘히 난 털 때문에 물이 잘 묻지 않아서다. 쑥 이외에도 대부분 식물의 잎에는 다양한 형태의 털이 있고 여러 기능이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려면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 잎에 있는 작은 구멍인 기공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이때 열린 기공으로 잎 속의 물이 증발하게 되며 이를 증산작용이라 한다. 건조한 상황에서는 증산작용으로 인한 물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털이 많으면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여 수분 증발을 막는다. 기공은 일반적으로 잎 뒷면에 있는데 쑥은 앞면보다 뒷면에 털이 더 많다.

    

또한 털은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데도 도움이 된다. 햇빛을 반사하여 체내의 기온상승을 막고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색깔도 가급적 흰색이다. 빽빽한 털은 보온 효과가 있어서 추위를 견디게도 한다. 쑥을 캐다 보면 복슬복슬한 털을 감싼 쑥 줄기 안에서 곤충알을 발견하곤 한다. 알은 쑥에서 추위를 견디고 또 알에서 깨어나면 애벌레는 쑥을 먹고 자랄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식물도 곤충 같은 동물이 잎을 마음대로 먹도록 손 놓고 당하지 않는다. 털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거나 기어다니기에 방해 요인이 된다. 또한 독이 있어서 먹으면 소화를 저해한다거나 몸을 마비시켜서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한다.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털의 기능이 맞는지 아닌지 또 다른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오랜 기간 생존하고 번성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식물이 털을 버리지 않았으니 식물을 보호하고 여러 이점이 있는 건 분명하다.

<쑥대 안에 낳은 곤충알, 흰털이 빽빽한 떡쑥과 할미꽃>

함께 쑥을 캐던 아내가 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다. 대부분 국화과 식물이 곤충을 이용하여 꽃가루받이하는 충매화로 꽃이 화려한 데 비해 쑥은 바람을 이용하여 꽃가루받이하므로 꽃이 화려하지 않다. 그리고 쑥을 캐는 시기에만 관심 두기에 꽃을 보기 쉽지 않다.

    

쑥을 캐는 어린 시기가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쑥쑥 자라서 무릎높이까지 큰다. 그 시기엔 쑥은 캐지 않고 뜯는다. 그 후로도 허리 높이까지 더 자라서 가을에 수수한 꽃이 핀다.

     

방금 쑥을 캐던 곳에 마른 잎과 빈 깍지를 달고 있는 말라비틀어진 쑥대를 가리키며 이게 쑥이라고 했더니, 아내는 쑥이 이렇게 크게 자라는지 몰랐다며 놀랐다. 쑥이 우거진 쑥대밭에 가면 캘 쑥이 많아 놀라고 마른 쑥대가 무성해서 더 놀랄 테다.


윤두서, 채애도(採艾圖)-쑥 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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