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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pr 18. 2024

네가 피어야 비로소 봄

봄맞이꽃을 만나야 봄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어

이 꽃을 알고부터는 봄꽃 중에 제일 좋아하고 기다리는 꽃이 되었다. 아주 이른 봄도 늦은 봄도 아닌 봄이 절정인 4월에 들어서야 제대로 핀다. 이 꽃이 피면 완연히 봄기운이 돌아 풀꽃이 피고 나무의 연초록 새잎도 돋아나 한창이다. 봄맞이할 즈음에 꽃이 피어서 이름도 '봄맞이'다.

     

봄이 오면 봄맞이꽃을 보기 위해 양지바른 산기슭이나 들을 돌아본다. 무덤가는 남쪽을 향한 잔디밭이라 해가 잘 들고 큰 나무가 없어 키 작은 식물이 자라기 좋은 장소이므로 빠뜨리지 않고 가본다. 봄맞이는 ‘봄을 맞는 일’ 또는 ‘봄을 맞아서 베푸는 놀이’라는 사전상 의미가 있는데 내게는 이렇게 봄맞이꽃을 찾아다니는 일이 봄맞이다.

    

봄을 맞으며 돌아다니다 보면 할미꽃이나 큰개불알풀꽃은 피었으나 봄맞이는 잎은 여전히 붉은 상태고 꽃대는 몽글 올라오는 중이다. 조바심을 가라앉히고 느긋이 기다려야 한다. 조금 늦은 건 홀로 하는 일이 아니고 햇살도 기온도 수분도 바람도 새소리도 곤충도 모든 조건이 맞아야 꽃필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은 작고 여리다. 그렇다고 대충 피어난 적 없다. 자기가 피워낼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봄마다 혼신을 다해 꽃을 피운다. 봄맞이꽃이 그렇다. 그래서 기다려야 하고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던 꽃을 만나 행복해지면 비로소 봄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꽃잎은 5개로 깊게 갈라지고 다 모아봐야 매화 꽃잎 한 장 정도 크기에 그친다. 꽃 색깔은 흰색이며 간혹 붉은빛이 은근하게 퍼져있다. 꽃 중앙에는 작은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암술 1개와 수술 5개가 있다. 구멍 주위로 노란색이 있어 꿀이 여기에 있다고 곤충을 유인한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노란색 안을 찬찬히 살피면 수술이 먼저 보이고 암술은 겨우 보이도록 숨어있다.

     

뿌리에서 꽃줄기가 올라와 끝에서 4~10개로 갈라져 꽃이 핀다. 그런 꽃줄기 모습이 마치 우산살처럼 보인다. 꽃줄기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정도로 여리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을 들여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곤충의 마음만 아니라 내 마음도 흠뻑 빼앗기고 만다.

     

꽃 앞에 앉아 곤충을 기다려 본다. 봄볕이 어깨와 등에 따뜻하게 내려오는 느낌이 좋다. 바람결도 어느새 부드러워진다. 벌이 날아와 꽃 위에 발을 올려놓은 순간 실처럼 가는 꽃줄기가 휘청거리면서 하늘을 보던 꽃이 땅으로 곤두박질한다. 벌은 다시 날갯짓하며 태연한 척 꽃에 앉으려 시도해 보지만 번번이 낭떠러지다. 더 작은 곤충이 내려왔다. 몸 전체가 검다. 능숙하게 앉아 꿀을 딴다. 스마트폰을 들이대 사진을 찍어도 여유 부리는 걸 보니 한두 번 와본 경험이 아니다.

    

봄맞이는 한두해살이풀이다. 겨울을 날 때는 잎을 넓게 펼쳐 땅에 바짝 붙이고 잎 색깔은 붉은빛이 돈다. 동그란 잎이 동전처럼 구릿빛이라 ‘동전초’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광합성을 하려면 초록색이어야 하는데 왜 붉을까?

      

가을에 단풍을 붉게 물들게도 하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겨울에 생성되면서 봄맞이를 붉게 한다. 안토시아닌은 자외선을 흡수하기도 하고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곤충이 잎을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물질로 겨울에 어린 잎을 보호한다. 우리 피부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는 멜라닌 색소와 같은 이치다. 봄이 되면서 붉었던 잎은 점차 초록으로 변해가면서 충분한 광합성을 한다.

     

나름의 전략으로 겨울을 이겨낸 봄맞이는 치열했던 겨울처럼 온 힘을 다해 봄을 맞이하며 꽃을 피운다. 그렇게 내게 온 꽃이다.


<우산 형태의 꽃줄기><꽃에 앉은 곤충><붉은빛의 겨울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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