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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Nov 07. 2024

고객이 남긴 글

내게 더 위안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책방에는 특별한 공책과 게시판이 있다. 햇살이 들어오는 넑찍한 공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곳에 머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소회를 쓰는 공책이다. 공책이 아니라도 쪽지에 써서 옆에 있는 게시판에 꽂아두기도 한다. 남긴 글은 얇은 공책 한 권을 다 채우지 못했고 게시판을 다 메울 정도도 아니다. 그래도 책에 있는 어느 구절보다 지금의 내겐 가장 소중한 글이다.


책방 문을 닫거나 근무를 교대하기 전에 공책에 새로운 글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어느 결에 생겼다. 새 글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난 글이라도 다시 보며 여기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글의 내용은 책방이 편안하고 조용해서 책 읽기에 좋다거나 일기 같은 말을 남기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은 글도 있다. 책방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편히 쉬었다'는 말도 상당하다. 어떤 내용이든 내가 일하는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글을 남길 만큼 여유를 가졌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그날 책방에 다녀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책방이 위치한 곳은 사람이 왕래가 잦은 아파트 단지나 학원 근처 상가가 아니고 소규모 공공기관들이 입주한 건물이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많지 않고 무슨 기관이 어디 있는지 묻는 사람도 더러 있고 남는 시간을 보내려고 오기도 한다. 책방 안쪽에 마련된 책 읽는 공간에서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 다녀가면 혹시 무슨 글을 남겼나 가보기도 하는데 한 번도 바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글은 언제인지 모르는 사이에 남겨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부터 손님도 줄고 남긴 글도 줄었다. 글을 남길 만큼 책방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했나, 고객의 구미에 맞는 책을 갖추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바심이 난다. 또 얼마 전부터 지자체에서 지원하던 희망도서 예산이 소진되어 도서 신청이 더 이상 안 되는 것도 방문객이 줄어든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복지예산 규모가 축소되고 도서 관련 예산도 함께 줄었다. 경제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나라 살림도 빠듯해 내년도에도 도서 예산이 늘어나는 건 난망이다. 출판산업의 전망이 더 어두워져 아쉬움이 크고 당장 책방 손님이 줄어 안타깝다.


어떤 이도 희망도서에 대한 생각을 쪽지로 남겼다. 덕분에 한 권이라도 더 읽었고 본인이 선택한 책을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어서 더 신중하게 책을 고르게 된다는 고마움과 국민의 기본적 소양과 문화적 역량을 위해 쓰이는 예산이 먼저 삭감되는 처사에 아쉬움을 함께 털어놓았다.


쪽지 몇 개를 더 간추려 본다. "책에 끼워진 손 글씨 서평과 잔잔한 음악이 있는 분위기가 좋다."는 쪽지에는 호의적인 평가에 고마우면서도 서평이 책 선택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더 조심스럽다. "사서로 계시는 어르신의 포근한 미소에 편히 숨 쉬다 간다."는 말은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 여럿이라 누구에게 한 말인지 확인할 수 없는데도 마치 내게만 들리는 마술 같은 말이다. "숨겨진 공간을 발견한 것 같다."며 혼자만 즐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알아낸 듯한 기분을 전하기도 한다.

면접 보러 왔다가 글을 남긴 이는 바람대로 이미 합격해서 잘 근무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다음엔 사랑하는 이들과 와야겠다고 말한 이는 오겠다는 약속을 지켰을지 그리고 누구와 다녀갔을지 궁금하며, “종종 발걸음 하겠다.”라고 약속한 이가 또 있는데 그때 느꼈던 따뜻한 기운을 또다시 실감하고 갔기를 바란다.

길을 잃은 이, 기대에 어긋난 순간을 겪은 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이도 책방에 다녀갔다. 위로되었을까. 그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책방 창문 너머 들어온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오후였기를 기대해 본다. 책방에몇 개 음악이 반복 재생되고 있는데 그때만큼은 어깨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노래였을까. 우연히 열어본 책 속에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글귀를 발견했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또 어떤 이는, 책장 넘기는 "사각"소리에 행복을 얻고 근심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받고 싶었던 따뜻함을 선물로 받았다는 글을 남겼고, 모든 것이 고맙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한자로 쪽지를 . 그러고 보면 이 책방은 내게는 일터였고 여기에 들어온 이들에는 책을 읽고 사고파는 것을 너머 쉼터였다. 책방으로만 생각하지 않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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