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누구에게나 있다
2023.04.21 ~ 2023. 05. 28
공연장 - 대학로 자유극장
제작 - 주식회사 모먼트 메이커
배우 - 전박찬, 이기현, 김정민, 강해진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
4. 게스트
5. 새해가 되기 1시간 전
6. 마치며
<시티즌 오브 헬>은 2023년에 초연이나 해당 작품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미 <미드나잇 :앤틀러스>,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이란 뮤지컬 작품으로 먼저 접해서다. 그래서 <미드나잇>의 원작 작품인 <시티즌 오브 헬>이 무대에 올라온다 했을 때 많은 기대를 샀다.
다만, 이 글은 뮤지컬 <미드나잇>을 보지 않았으며 연극 <시티즌 오브 헬>만 관극 후 작성한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1937년, 소비에트 연방 소속의 아제르바이젠 의 바쿠에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부부는 새해를 맞이하기까지 1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새해라면 어쩌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와인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훈훈한 상황에도 묘하게 스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왜냐하면 부부가 잘 아는 사람이 체포됐기 때문이었다. 새해를 앞두고 있었으나 희망찬 분위기는 없는 그때, 누군가가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방문한 사람은 ‘게스트’라는 인물이었다. 게스트는 부부의 집을 휘젓고 다닌다. 공포에 지배당한 부부는 혼란에 빠지고 게스트는 두 사람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해댄다. 결국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아내가 게스트를 칼로 찔러 죽여버린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분명, 게스트를 죽였는데도 멀쩡하게 일어나 움직였다. 게스트는 또 집안을 휘저어놓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게스트는 사라지지만 희망은 찾아오지 않은 채 끝이 난다.
부부는 배우자 서로에게 비밀이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죄 없는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 정확하게는 당국에서 먼저 부인을 찾아가 압박했고, 따라서 부인은 거짓 고발을 했고 오늘, 남편이 재판장에서 그 거짓 고발에 증인으로 섰다. 덕분에 한 사람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끌려갔고 생사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같은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법정에서 지켜야 할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위증도 잘못이지만, 부부의 가장 큰 잘못은 잘못 없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다. 거짓말 한 번은 사소할지 모르나 그 사소함에 누군가가 죽었다.
사실 부부는 가해자이면서 방관자이다. 관객들은 <시티즌 오브 헬>는 살벌한 독재 체제 상태이고, 그래서 살벌한 감시와 인권 같은 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배경임을 알 수 있다. 가장이자 남편은 자신이 한 행동을 힘겹게, 절규하듯 거짓 증언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그래서 가해자이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짓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한 짓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게스트’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죽여도 죽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음을 들쑤셔놓는다. 동시에 부부의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슴속에 존재한다며,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 이상한 존재다.
이런 게스트의 등장으로 평화롭게 넘어갈 줄 알았던 새해의 마지막 날, 추악한 사실과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부부는 게스트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내보낼 수도, 죽여버릴 수도 없다. 그저 게스트의 흐름에 흔들릴 뿐이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게스트를 죽이기로 하지만 결국 그러질 못한다. 그러다 결국 아내가 게스트를 칼로 찔러 살해한다. 그때의 아내는 살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이하에 가깝다. 생존본능만 존재하는 짐승의 모습이 게스트로 인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정말로 사람들을 체포하는 경찰로 다시 집을 방문한다.
공연을 보면서 그가 살아있는 인간, 혹은 어떤 특정한 누군가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 ‘게스트’는 추상적이면서, 어떤 것을 나타내는 정의와 더 유사하다. 그러므로 ‘게스트’는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자, 사람들을 압박하는 독재 혹은 인간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생존본능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내보낼 수도,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부부의 두려움과 같은 감정, 생각이 게스트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사실 인간이란, 악마와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 혼란스럽고 절체절명의 상황은 새해를 맞이하기 1시간 전에 일어난다. 부부를 혼란과 공포로 몰아가던 존재가 떠나고 침묵이 찾아와 이제는 안심할 수 있을까 하던 찰나에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이 울린다. 그것은 밤 12시, 자정을 알리는 소리이자, 끔찍했던 하루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해를 맞이했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아니다. 보통 새해에 대해서는 기대를 품는다. 아쉬웠던 지난해를 보내고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한다. 하지만 간신히 공포를 쫓아낸 부부에게 그런 밝은 미래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달라진 게 없어서다. 살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몰아갔다는 사실을 밝혀도 그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독재도, 비인간적인 처사도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며 자정을 알리는 종이 부부에게 희망찬 미래는 없음을 예언한다.
하지만 나쁜 짓을 했다고 부부에게 돌을 던지기 쉽지 않다. 자신을, 가족을 위해 거짓말로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 동조하고 침묵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면 알 것이다.
과연 당신은, 당신의 가족과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불의에 저항할 수 있을까?
<시티즌 오브 헬>의 등장인물과 배경이 되는 곳에 희망은 없다. 왜냐하면 두렵더라도 맞서 싸워야만, 달라질 수 있는데 공포에 떨고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나 현실을 바꾸기 위한 행동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컬인 <미드나잇>과는 다르게 연극이기에 넘버는 따로 없지만, 텍스트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실력파 배우로 유명한 전박찬 배우 연기가 볼만했다.
제목처럼 시민들은 지옥에 사는 악마들처럼 점점 변해간다. <시티즌 오브 헬>은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진짜로 존재하는 국가가 배경이다. 그리고 스탈린, 독재 등 작품 배경이 가져오는 엄숙함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비록 암울한 미래만이 전부겠지만, 인간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악마는 누구나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