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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뮤연뮤 Jul 25. 2024

22. 연극 <햄릿> 리뷰

  영웅적 비극 햄릿

<햄릿>                                                                   <햄릿>

2024.06.09. ~2024.09.01                                                 2024.07.05. ~2024.07.29

신시컴퍼니                                                             국립극단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명동예술극장

강필석, 이승주,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김별, 김수현, 김용준, 김유민, 김정화,

전수경, 손숙, 이항나, 김재건, 정동환,                          노기용, 류원준, 성여진, 신정원, 안창헌,

길용우, 김성녀, 길해연, 손봉숙,                                 이봉련, 이승헌, 허이레   

남명렬, 박지일, 정경순, 박윤희, 

정환, 김명기, 양승리, 이충주, 

이호철, 루나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햄릿> 과 <햄릿>

4. 수긍의 과정, 햄릿

5. 나오며     


1. 들어가며

@yeonmyu_0113

셰익스피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세대를 아우르고 국경에 제한이 없다. 그런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을 고르라 하면 아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대사로 유명한 <햄릿>일 것이다.     


<햄릿>은 수없이 무대로 올려졌던 작품이고 현대에도 올려지는 작품이다. 마침 이번에 <햄릿>이 연달아 올라온 만큼 <햄릿>을 골랐다. <햄릿>은 누구나 다 아는 작품이지만, <오셀로>, <맥베스>와 같은 작품에 비하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상대적으로 알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래서 이번에 <햄릿>에 대해 고찰하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2. 스토리 라인

햄릿은 아버지인 선왕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죽었으나 곧바로 삼촌 클로디어스와 어머니 거트루드의 결혼, 물려받았어야 할 왕좌는 삼촌에게 빼앗겨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던 햄릿은 듣게 되는데 바로 선왕의 귀신이 목격됐다는 소문을 듣는다. 사실을 확인하려던 햄릿은 정말로 선왕의 귀신을 발견, 그에게서 자신은 암살당했으며 범인은 삼촌 클로디어스라는 말을 듣는다. 햄릿은 복수하기로 한다.     


이 일은 섬세한 햄릿을 더 신경질적으로 만들었고 모두 그가 미친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사랑을 고백했던 오필리아도 믿지 않을 정도로 햄릿은 모두를 의심한다.     


햄릿은 복수하기 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 방법으로 암살 장면을 담은 연극을 클로디어스에게 보여주기로 한다. 그래서 배우들을 불러 연극을 올린다. 클로디어스는 연극을 보다가 나가버린다.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암살했다는 확신을 얻는다.     


이 일로 어머니 거트루드와 다투는데 햄릿은 어머니에게 선왕을 암살한 사람이 클로디어스임을 밝힌다. 하지만 이것을 몰래 듣고 있던 폴로니우스를 실수로 햄릿이 죽이게 된다. 이 일로 햄릿은 죄인이 된다.    

 

클로디우스는 햄릿을 타국으로 보내려 하고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에 그만 미치고 만다. 햄릿은 죽음을 향해가는 타국의 배에 실리나 해적을 만나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사형하라는 편지를 발견, 자신을 감시하는 옛 친구를 넘기고 다시 왕국으로 돌아온다.     


반면 레어티즈는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하여 클로디어스를 찾아와 범인을 내놓으라며 발광한다. 왕실은 돌아온 햄릿의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다며 레어티즈를 달랜다. 무덤가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햄릿은 숨지 않고 모두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햄릿의 죄 때문에 레어티즈와 햄릿 검술 시합을 연다. 이때 클로디어스는 몰래 독약을 준비해 두었다. 팽팽한 시합에 클로디어스는 술을 권하는데 이를 거트루드가 마시게 된다. 햄릿도 레어티즈 검에 발린 독이 몸에 퍼진 상태였다. 결국 햄릿, 레어티즈, 거트루드 세 사람 모두 독이 몸에 퍼진다.     


모든 게 클로디어스가 꾸민 짓임을 깨닫고 햄릿은 직접 클로디어스를 죽인다. 그리고 죽어가며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 모든 것을 기억해달라고, 현재가 자신들에게 저지른 짓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모두가 죽고 햄릿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타국의 왕자 포틴브라스가 그들의 나라를 지배하게 된다.

@yeonmyu_0113

          

3. <햄릿>과 <햄릿>

다른 곳에서 제작한 <햄릿>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에 비교할 수 있었고, 차이점도 있었다.     

신시컴퍼니 쪽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햄릿>을 따랐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내 죄의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인류 최초의 무서운 저주를 받은 카인의 형제 살인죄.” 등 과 같은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유약하고 수동적인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민하는 삼촌 클로디어스까지 비유와 은유가 넘쳐나는 대사와 우리가 흔히 아는 <햄릿>이었다.     


반면 국립극단 <햄릿>은 햄릿‘왕자’가 아니라 햄릿‘공주’라는 파격적인 설정이다. 해군 장교였던 햄릿 공주와 햄릿을 왕으로 올리기 위해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거트루드, 왕 클로디어스를 위해 모략을 계획하는 오즈릭,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 이 모두가 여성이 연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들처럼 야심이 있고, 행동한다. 

    

햄릿이 공주가 된 덕분에 성별이 바꿀 줄 몰랐던 오필리아는 남성이 연기한다. 햄릿-오필리아의 성별 변환은 둘 사이의 신분 차이가 더 잘 다가왔다(햄릿이 왕위를 위해 타국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부장적인 대사가 빠졌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가 빠졌고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어딨으며 자식은 부모의 것이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둥 현대 사회를 대사에 많이 반영했다. 이외에도 폴로니우스가 왕실에 절대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점도 다르다.     


또한 정말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살해했는지 알 수 없다. 그리 말하는 유령의 말을 햄릿이 들었다. 클로디어스가 죄를 고백하는 장면도 없고 선왕이 인질로 자신을 대신 보내려 했다는 대사나, 포틴브라스가 암살범이라는 대사 등을 통해 관객을 더더욱 진실을 알 수 없다.     


더불어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었다. “약한 자의 자리는 악한 자에게 빼앗기지.”, “우리한테 힘이 있었으면 왕관은 네 머리 위에 올라갔을 거니까.” 개연성을 챙기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입하면 더 무거운 대사다.     


결론적으로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원작주의, 국립극단의 <햄릿>은 가부장제를 덜어낸, 각색을 거친 <햄릿>이었다.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장점이 다른 것이다. 두 제작사 모두 어둡고 단조롭고 누군가 죽을 때마다 찾아오는 비처럼 물로 죽음의 이미지를 노렸다. 또한 무대도 보통 왕실이라면, 화려할텐데 오히려 햄릿과 햄릿의 국가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을 암시하듯 삭막하기만 하다.     

“착한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악한 공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각색 과정을 거친 국립극단에서 올린 <햄릿>에 추가된 대사인데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햄릿의 특성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사이기 때문이다.     


햄릿이란 인물이 사망할 때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는 걸 본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모두를 배려하고, 정도에 대해 고민하니 분노에 휩쓸려 복수하기보다 갈등에 힘들어했으리라 생각한다.          


4. 수긍의 과정, 햄릿

작품 <햄릿>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이신 선왕이 사망하면서 햄릿의 세계는 바뀌었다. 그리고 천국에 갔다면 볼 수 없을 아버지의 유령이 그의 앞에 나타나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해 줄 것을 바란다.     


그리고 ‘우유부단’으로 알려진 햄릿은 복수할지 말지를 고뇌하며 “to be or not to be”, 우리가 흔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알고 있는 말로 존재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죽음이 <햄릿>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어머니는 “마음속의 가시가 찌르도록” 놔둔 채 클로디어스에게 죽음으로 복수해야 하는 햄릿은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오필리어가 죽는 둥 죽음이 계속된다. 그러다 무덤가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을 보며 햄릿은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그가 고뇌를 멈추고 파도처럼 다가와 몸을 적시는 운명을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레어티즈가 더 실력이 우월한데도 결투를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필리어와 폴로니우스의 죽음에 대해 사죄한다. 그리고 햄릿 또한 죽음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아마 햄릿이 고뇌했던 이유는 자신도 몰랐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걸로 생각된다. 만약 햄릿이 복수한다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며 목숨을 걸어야 한다.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     


햄릿이 달라지는 지점은 무덤가 장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덕분에 햄릿은 자유로워졌다. 이 과정은 내심 죽음에 불만이 있었던 아킬레우스가 영웅 헤라클레스의 죽음에,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유사하다. 수긍한 것이다. 그렇기에 삼촌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할 수 있었고, 자신을 향한 분노도, 죽음도 두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또 햄릿은 고민이 많은 인물이다. 클로디어스 말처럼 아직은 젊기에, 경험이 부족하여서 그럴 수 있다. 만약 경험 많은 클로디어스라면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젊기에 방황하고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실수를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만약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재혼한 삼촌이 있다면 햄릿처럼 복수를 불태울 것이다. 거기에 왕위라는 사회적 무게도 덮쳐온다. 오레스테스처럼 의무와 의무 사이에 예민한 젊은이가 끼여있다. 더군다나 햄릿이 상대해야 하는 건 노련한 기득권이다.     


햄릿과 오레스테스가 받은 의무는 자신들이 쌓은 게 아니라 윗세대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 의무를 행할지 행하지 않을 것인지 그들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의무를 행한다.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며, 의무를 행하면 손에 피를 묻히게 된다. 도망쳐봤자 낙원은 없다.     


<햄릿>의 내용은 고뇌 자체, 그리고 그 고뇌를 어떻게 풀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를 통해 햄릿이 그저 한 인간이라는 점을 의도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극중극 구성은 작가가 의도한 형태로 보인다. 흔히 <햄릿>이 극중극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는 삼촌 클로디어스의 결백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저지른 암살법을 그대로 공연으로 올린다. 하지만 <햄릿>이 그것만으로 극중극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햄릿이 처한 상태 그 자체가 부조리한 상황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리도 잽싸게. 그 더러운 근친상간의 이부자리로 달려간단 말이냐!”     

어머니가 삼촌과 결혼한 부조리의 끝인 상황이다. 기존에 살았던 정도(正道)의 상황을 이미 벗어났다. 힘의 논리를 내세워 기존에 알던 정도와 법도는 무너졌고, 근친상간이란 이성적 존재라면 할 수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의미 없고, 서로에게 닿지 않는 말들만 오간다. 햄릿이 호소한다 해도 들어줄 리 없는 상황이다.   

“온 세상은 무대와 같고 모든 사람은 배우에 불과하다. 한 인간은 퇴장하고 입장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수많은 배역을 맡는다.”     

인생이 햄릿이 처한 상황처럼 부조리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배우에 불과한 사람처럼, 운명 앞에서 작은 존재다. 하지만 햄릿은 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러한 햄릿의 태도를 받아들이길 원했을지 모른다. 운명은 원래 이성으로만 이해 가능한 영역이 아니며 부조리하기도 하고 세상이 그렇다.     

“나의 대사는 끝났다. 남은 것은 침묵뿐.”     

이제 햄릿에게 남은 대사는 없다. 그토록 노력해도, 노력의 결과는 죽음으로 돌아왔다. 부당한 결과다.     

“호레이쇼, 현재가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줘.”     

그리고 그 역할을 호레이쇼에게 넘긴다. 사건들을 가까이 본 호레이쇼라면 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5. 나오며

<햄릿>은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를 암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해 복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복수와 우유부단한 햄릿의 성격만을 전부라 넘긴다면 <햄릿>이라는 작품을 제대로 음미했다 하기 어렵다.     


소위 ‘우유부단’한 햄릿을 왜 주인공으로 내세웠는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리스 신화들의 인간들처럼 운명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럴수록 불행만 겹쳐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햄릿이 ‘인간’에 대해 고찰하고 그것을 말하고 있음이 아닐까라고 결론 내렸다.     


햄릿은 불합리한 운명에 휘둘리며 파멸에 이른다. 결국 패배하지만, 올바름을 추구하고 목숨을 보전하려 하지 않으니 당장 자기에게만 충실한 이들은 햄릿을 감당해낼 수 없고 햄릿은 패배하나 위엄과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또 국립극단 햄릿은 공정함을 요구, 그 일환으로 재판을 원한다. 죽음으로 왕위를 차지한,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 아니라 ‘공정’이 지켜지길 원한 눈치였다. 요즘같이 특히 공정한 과정을 원하는 사회에서 햄릿의 요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춤 각색으로 다가왔다. 가부장제를 없앤 거나, 시대의 흐름에 맞춤 각색은 원작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햄릿>이 훨씬 더 깊고 심오한 이야기인 점을 염두하고 본다면 작품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yeonmyu_0113

*해당 글은 C-STRAW에 게재된 글입니다.

STRAW - 연극 <햄릿> 리뷰 (c-straw.com)


인터파크

연극 〈햄릿〉 (interpark.com)

국립극단 〈햄릿〉 - 인터파크 (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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