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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뮤연뮤 Aug 09. 2023

5. 뮤지컬 <실비아, 살다> 리뷰

이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소리

포스터 - 공연제작소 작작

2023/02/11~2023/04/16

대학로 TOM 2관

제작 : 공연제작소 작작

주다온, 박란주, 이수정, 이지숙, 고은영, 주다온, 문지수, 김세환, 이규현, 김수정, 전성혜, 이민규, 장두환, 고유니, 고쥬니     


1. 들어가며

2. 줄거리

3. 삶의 감사함을 다지기 위한 의식 행위로써의 자살

4. 빅토리아

5. 이름 없이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하여

6. 나오며     


1. 들어가며

세상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이름을 가진다. 그리고 이름을 선물하는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름을 짓는다. 왜냐하면 이름을 선사하는 사람이 깊은 애정으로 짓기 때문이다. 이름은 ‘나’를 나타내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기초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질 때 깊은 슬픔을 느낀다. 오늘은 그 이름이 사라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실비아, 살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yeonmyu_0113

2. 줄거리

이야기는 실비아가 긴 긴 기차 여행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실비아는 어린 시절 화목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다. 특히 아버지와 유대 관계가 깊었다. 땅벌 연구가인 아버지는 실비아가 쓴 시를 읽고 관심 가져주었다. 그러나 실비아가 8세 때 사랑하는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다. ‘실비아 플러스’라는 사람에게 큰 시련과 변화를 일으키는 큰 사건이었다.     


10살이 되기도 전에 시를 발표할 정도로 재능 있던 실비아는 어느새 자라서 성인이 되어 대학교에 진학한다.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미래의 남편인 테드 휴스와 만나고 둘은 결혼한다. 결혼 후, 학업과 강의, 창작 생활을 이어가던 둘은 갈등을 겪는다. 강단에 서는 일은 창작에 몰두하기 힘들어서다.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은 이미 예견된 바였다.     


시간이 흘러 공부도 마쳤고 창작 활동도 이어 왔고 아이도 태어난다. 그럭저럭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오던 중,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다 문득 실비아는 깨닫는다. 이제는 재능 있는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의 어머니인 ‘휴즈 부인’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에게 소속된 부속품이나 다름없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보다 집안일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한 상태였다.     


그런데 더 큰 불행이 실비아를 덮친다. 남편이 동료 시인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편인 테드는 집까지 나가버린다. 실비아는 졸지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두 명을 감당해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온 덕분에 고단한 인생에 빛이 드나 싶었으나 오랜만에 돌아온 남편은 불륜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한다. 테드는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후벼 팠다.     


그리고 상황은 더더욱 나빠져 실비아는 이제 방을 따뜻하게 데울 돈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동시에 그녀 인생에 중요한 의식을 준비한다. 바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죽음 의식이었다. 철저한 계획으로 이번에도 죽지 않고 살 거라 믿는다. 이런 그녀에게 빅토리아가 나선다.     


계속 실비아 주변을 맴돌며, 남편의 불륜도 알려줬던 빅토리아는 그녀에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빅토리아는 사실 실비아의 미래였다.     


빅토리아와 헤어지고 실비아는 다시 여행 가는 기차로 돌아온다. 처음에 탔던 기차는 사실 여행 같은 긴 인생이었다. 소녀와 실비아는 종착역 아홉 번째 기차역까지 같이 가보기로 약속하며 여행을 떠난다.     


3. 삶의 감사함을 다지기 위한 의식 행위로써의 죽음

실비아는 주기적으로 의식을 가진다. 심지어 그 의식은 아주 독특한데 바로 자살 시도다.     

M13. 10년에 한 번씩 _실비아     
(실비아)
10년에 한 번씩 죽음을 택하죠
나를 해방시킬 죽음을     
10년에 한 번씩 나를 확인받죠
나로 살게 하는 확인을                                                                               - <실비아, 살다>
알바레즈   실비아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도, 거기에는 어떠한 흥분도 동정을 구하는 호소도 없었어. 마치 자살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하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어. 
                                                                                                             - <실비아, 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을 일부러 자처하는데 이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죽음의 순간을 잠깐 겪어 사실은 살고 싶은 생의 의지를 확인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정말로 자신이 죽을지 살지 운명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비아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 상황에 부닥쳤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미도 있다. 이런 실비아가 치르는 의식은 갑각류의 탈피(脫皮)와 유사하다. 게와 가재 같은 갑각류는 이론상으로 죽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는데 탈피를 통해서다. 탈피는 성장과 상처 회복을 위해서인데 이 과정에서 죽기도 한다. 실비아가 말한 자신을 해방시키고, 나로 살게 하는 확인이란 이유이다. 산다는 건, 죽을 만큼 치열하다.     


4.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극 중 내내 실비아의 곁을 지킨다. 대학에 입학해 어색한 순간에 먼저 친구가 되고, 남편의 불륜을 귀띔해주고, 무엇보다 마지막 죽음을 시도할 때도 실비아를 위로하고 막은 존재도 빅토리아였다.     

사실 빅토리아는 실비아 플라스가 생전에 사용한 다른 필명이다. 그러니 빅토리아는 실비아라는 인물의 다른 인격체이면서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의지를 다지는 다짐이었다.     


M18. 글은 나의 대체물 Reprise
빅토리아  난 이제 가야 해. 내 과거는, 오늘이 마지막이었거든. 하지만, 네가 바꿀 수 있어. 내 과거가 오늘이 마지막이 되지 않게 만들어줘 꼭. 그러면 내가, 꼭 다시 찾아올게. 다시 와서 네 친구가 되어줄게.                                                                                                         - <실비아, 살다>

빅토리아는 동시에 실비아이기도 해, 실비아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빅토리아는 실비아에게 공통점을 느끼고 대입한 관객을 응원하는 역할로 작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5. 이름 없이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하여

실비아를 힘들게 하는 건 생활고, 남편의 배신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녀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실비아 플라스’라는 온전한 이름을 앗아간 현실이다.     

(빅토리아)
엄만 항상 아빠 뒤에 서 있었죠
엄마의 이름이 아닌 것들로 불렸죠
작고 힘 없는 내게 말했죠
예쁜 내 딸아 그렇게 살아 그래야 한단다
하지만 나는 달라 굳게 새겨보아도
자유로울 순 없어 내 삶은                                                                            - <실비아, 살다>

결혼해 남편을 내조하는 게 여성으로서 최우선이 되는 현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그것이 당연한 사회 풍조는 실비아가 실비아로서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리고 이 굴레는 실비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부터 그랬듯이, 긴 시간 동안 반복되어 실비아에게 내려온 것이었다.     


어머니, 아내가 된다는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사자가 원치 않는 삶을 강요하는 삶이 폭력적이란 의미다. 실비아는 가족을 아낀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로 사는 삶 못지않게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삶도 중요한 인물이다.     

이미지 - 공연제작소 작작


6. 마치며

실비아 플라스는 실제로는 마지막 자살 시도 때 사망하지만, <실비아, 살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관객들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밀어 넣고 자살을 시도할 때 다른 실비아인 빅토리아가 만류한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래서 팩션(Faction) 작품이다.     

이미지 - 공연제작소 작작

<실비아, 살다>는 실비아 플라스만을 위로하는 작품이 아니다. 실비아뿐만이 아니라 타의로 인해 온전히 자신을 의미하는 이름을 빼앗기고 포기해야만 했던 이름 없는 모두를 위로하는 작품이다.    

 

빅토리아는 실비아에게 말한다. 그리고 너도 살아달라고. 마지막 장면에서 실비아는 어떤 소녀에게 줄 목도리를 뜬다. 그 어떤 소녀가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실비아, 살다>도 추운 나날을 지내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줄 것이다.



++ https://www.instagram.com/p/CuWkdXjJrF9/?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 <실비아, 살다> 대본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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