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훈 Jun 25. 2023

30대, 여전히 생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생일을 맞이하는 마음에 대하여

얼마 전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6월 28일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 통일법'을 적용해도 이젠 영락없 30대인지라 한 살 한 살의 무게가 날이 갈수록 남다릅니다. 하지만 다른 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 날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기다려지고,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반주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걸로 보아 다행히 제 마음은 제 나이보다 조금 천천히 늙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날만큼은 단지 태어난 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 됩니다. 평소 관심 받는 걸 낯간지러워하는 저도 생일만큼은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안부 인사에 감사와 행복을 느낍니다. 이날만큼평소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은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생일은 우리 모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중요하다고 여겨온 이벤트 중 하나였으니까요.


주목받는 건 부끄럽지만 생일 축하는 받고 싶은 저를 위해.. 참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간 많은 생일날을 보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초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지금은 초등학생 코딩이 대세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SW교육이 화두였습니다. 그때 용케 자격증을 따면서 한글 프로그램 다루는 스킬을 좀 익혔는데, 생일파티에 친구들을 좀 초대해보겠다고 한글에 표를 넣어 직접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림까지 야무지게 넣어서 말이죠.


이렇게 화려하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초대장을 만들어서 하나씩 돌렸습니다 (왜 그랬지...)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옆자리 짝궁에게도 한 장, 뒷자리 친구에게도 한 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도 한 장씩 쭉 돌렸는데 다들 신기해하더라구요. 그 해가 전학 온 첫 해라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거실에 친구들을 그득하게 들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선물도 받고, 용돈 두둑히 받아 PC방도 데려가고 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초딩 생파 국룰이었죠) 이게 벌써 20년도 더 된 추억이네요.


그 이후로도 생일은 '당연히 축하받아 마땅한 날'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기대만큼 축하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소 아쉽게 느꼈던 생일도 있었습니다. 그지만 생일이 어떤 날인지에 대한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죠. 왜냐, 크든 작든 태어난 날은 언제나 축하받는 날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별 생각없이 SNS가 제시하는 알고리즘따라가우연히 굿네이버스 계정을 통해 배우 정유미씨의 생일 소식을 접했습니다. 짧막한 소식에는 정유미씨가 '축하받아 마땅한' 생일을 맞아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하고 재능기부 봉사활동까지 하며 이른바 '역조공'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좋아요'를 안 누를 수가 없다


세상에, 자신의 생일날에 누군가에게 베풀 생각을 하다니... 살면서 '생일 = 축하받는 날'이란 공식을 조금도 의심해본 적 없던 제게 이 게시글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어떤 선물을 받을까만 생각해봤지 어떤 나눔을 실천할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계기로 그동안 관습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생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떤 이유가 있어 태어난 게 아닙니다. 종종 우리가 왜 사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간은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생일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복에 겨운 축하를 받습니다. 그냥 태어난 날일 뿐인데 말이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누가 나를 축하해줄까' 하는 얄팍한 마음에 메신저를 쉽사리 손에서 놓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다 하루가 지났는데 내가 축하해줬던 사람이 내 생일을 지나치면 내심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날조차 스스로의 행복 결정권을 타인의 반응에 넘겨주는 수동적인 방식의 생, 그리고 태어난 날을 맞이하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걸 나누면서 그 의미를 더하는 능동적인 생일. 둘 중 무엇이 더 생일을 행복하게 보내는 마음가짐인지, 선택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생일 축하를 참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요즘입니다. 휴대폰 없던 어린 시절에는 친구 생일을 기억하겠다고 작은 수첩에 한명 한명 날짜를 기록해두곤 했었습니다. 이제는 카카오톡 어플만 열면 '다가오는 생일', '오늘 생일', 혹시나 깜빡하고 지나쳤을까봐 '지나간 생일'까지, 내가 알고 싶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지인들의 생일 알아서 하나하나 다 알려줍니다. '선물하기' 탭에 들어가서 적당한 선물을 고른 후 적당한 메세지 한 두 문장 넣어 카톡을 보내면 그럴듯한 생일 축하가 완성됩니다. 심지어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찜해두고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혹시 기부도 '선물하기' 만큼 간편하다는 걸 알고 계셨는지요.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해피빈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면 생각보다 손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일을 맞아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계신 국가유공자 분들소박하게나마 소정의 금액을 전달해보았습니다. 당장은 미약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작은 행동을 작으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하면 머지않아 저도 생일을 맞아 '무엇을 받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베풀 수 있을까'로 설렐 수 있는, 좀 더 멋있는 으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의 중심을 잡는 3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