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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ug 14. 2023

결혼, 그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고

아무것도 모를 땐 이것만큼 행복해 보이는 게 없지만 알면 알수록 그 무게를 달리하는, 언젠가는 하고 싶지만 지금은 좀 미뤄두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결혼'입니다.


학생은 학교에 가려면 책가방을 메야하고,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려면 총을 들어야만 합니다.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당연히 들고 가야 하는 것. 과거 결혼은 이런 느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 출산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생애주기 모델은 개개인의 삶과 가치관보다 당장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이들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 2030 세대가 느끼는 결혼의 무게감은 경제력, 가치관 등 다양한 문제와 맞물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이제는 책가방이 없어도 태블릿 PC 하나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현대전은 총보다 다른 첨단 무기가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감당할 수 있다면 해서 나쁠 것 없는 것, 하지만 무겁다고 느껴지면 굳이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것에 투자하거나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잠시 미뤄둘 수 있는 개념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명언들도 한 몫 거드는 것 같습니다 ^^; (© 조수진)


자의로든 타의로든 결혼을 이전보다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결혼의 기회비용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기회비용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인 '명시적 비용'과, 무언가를 함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편익인 '묵시적 비용'으로 구성됩니다.


결혼의 명시적 비용으로는 요즘 핫한 프러포즈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결혼식에 앞선 고가의 장애물 : 과시용 4,500달러짜리 프러포즈'는 기사가 1면으로 나왔습니다. 많은 한국 커플들이 프러포즈를 위해 고급 호텔에 명품 장신구까지 수백만 원짜리 '허례허식'을 준비하고, 주변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하는 독특한 청혼 문화를 향유하며, 이러한 문화가 한국의 혼인률 및 출산율 감소를 부추긴다고 말입니다. 돈 문제를 떠나서 참으로 낯뜨거움과 동시에, 집값이니 예식장이니 하는 전통적인 문제를 단숨에 식상하게 만드는 기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https://www.wsj.com) 캡쳐


그래도 명시적 비용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금전적 문제이니 내가 능력만 된다면 문제 될 것 없다고 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저런 허례허식에 개의치 않는, 본인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좋겠습니다. 그러나 설령 보는 눈이 부족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빠진 이른바 '퐁퐁남'이 되었다 한들, 일생에 한 번이라는데 능력에 따라 그 정도 해주는 게 뭐 그리 문제가 될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보다 제게 있어 당장의 결혼이 어렵게 느껴지는 중요한 요인은 '결혼의 묵시적 비용'에 있습니다. 정략결혼 같은 특수 케이스가 아니라면 결혼은 당연히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알파메일과는 거리게 먼 저에게 현실 속 사랑은 늘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원만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관계의 시작과 지속을 위해서는 다른 데 쏟을 수도 있던 많은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투입해야 합니다. 또한 더치페이를 하더라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갑니다. 해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한국에서의 삶을 통째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죠.


그 순간 나의 시간과 에너지, 돈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결말이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의 저는 그로 인해 행복했으니까요.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사랑 모두를 다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균형을 맞추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늘 한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곤 했죠. 잘 보이려 노력할수록 내 삶과는 멀어지고, 내 삶에 집중하려니 관계가 소홀해지는 딜레마. 결혼을 하면 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힘겹게 맞추던 균형추를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넘겨야 하니까요.



비단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10대 시절은 입시를 위해, 20대 때는 취업과 생존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합니다. 30대에는 회사에서 승진해야 하니 퇴근 후 시간을 포기하라 합니다. 마음속 자아 같은 얘기를 꺼내면 철딱서니 없고 현실감각 떨어지는 공상가 취급받기 일쑤죠. 그래가지고 언제 집 사고 언제 결혼할래 같은 잔소리는 시키지 않아도 따라오는 서비스입니다. 결혼의 묵시적 비용을 마냥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필라는 고향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청년의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그와 함께 뜻밖의 여행을 떠나게 되죠. 필라는 청년을 통해 그동안 현실과 타협하고 현실에 순응하도록 하는 지혜가, 사실은 정말 원하는 것을 직면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두려움을 몰아내자 그간 외면해 왔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 청년의 신앙심을 매개로 슬픔과 고통,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위에 '진정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청년은 필라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는 구도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신앙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과 필라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크게 흔들립니다. 구도자의 길이 함께하기에 얼마나 험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필라는, 힘든 여정을 앞 청년의 길을 그가 일깨워준 진정한 사랑과 믿음으로 동행하고자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정작 청년은 필라에 대한 사랑과 구도자의 길이 양자택일의 문제라 생각하여 필라와의 평범한 사랑, 평범한 삶을 택하고 구도자의 길은 포기하려 합니다. 청년의 태도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빛을 잃었다고 느낀 필라는 크게 슬퍼하나, 결국 청년은 필라를 통해 선택과 포기가 아닌 제3의 길, 즉 진정한 사랑이 이끄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청년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청년', '그', 또는 '신부님' 등으로 지칭될 뿐이죠. 이렇게 고의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서사를 전개하는 데에는 무언가 의도가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필라의 진정한 사랑이 소꿉친구였던 청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말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아, 작가는 필라의 진정한 사랑을 매개로 우리에게 사랑이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원만히 이룰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랑 그 자체는 선택을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 마음속 슬픔, 고통,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편협한 양자택일의 골방으로 둔갑시켰을 뿐.


책 말미로 가면서 필라가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다 지쳐 어린 시절 어머니께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한 청년과 아가씨가 열렬히 사랑했단다. 그들은 약혼하기로 했어. 그러려면 선물을 주고받아야 했지. 그런데 청년은 가난했어. 그가 가진 것들 중에 유일하게 값나가는 것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였단다. 연인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생각하면서 청년은 시계를 팔기로 했지. 그리고 그녀에게 은으로 만든 빗을 사주기로 했어.

아가씨 역시 청년에게 약혼 선물을 해줄 돈이 한 푼도 없었지. 그녀는 시내의 제일 큰 상점에 가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지. 그 돈으로 그녀는 연인에게 줄 금으로 만든 시계줄을 샀단다. 그들이 약혼식 날 만났을 때, 아가씨는 청년에게 그가 팔아버린 시계를 위해 시계줄을 건넸고, 청년은 잘린 아가씨의 머리칼을 위해 빗을 건넸단다."

필라는, 아니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랑이 이런 이야기를 닮았다면 준비된 결혼, 준비된 사랑 같은 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해피 앤딩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꿈과 이상향을 갈구하는 마음은 영혼이 살아 숨 쉬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막연히 다가오는 결혼을 두려워하기 전에,  모두려움 위에 서서 적과 같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의 힘을 저도 조심스레 믿어보려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참고]

- 파울로 코엘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문학동네 (2003)

- 강지이, "신비주의 속에 담긴 사랑의 의미", 오마이뉴스 (2003.06.20.)

- 조이영, "[문학예술]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동아일보 (2003.05.09.)

- 한윤정, "사랑의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경향신문 (200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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