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는 여전히 마스크를 꼭 써야 했던 시절이지만 지역 간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시기였다. 작년 이맘때 사진을 들춰보니 친정엄마, 삼 남매와 함께 대전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던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대전을 다녀온 목적은 ‘영화 관람’이다. 우리 집에서 자그마치 왕복 5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에 있는 영화관으로 말이다.
그날의 사연은 이러했다.
코로나 시국 때 외출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영화관은 더더욱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마스크 착용 필수에 음식도 섭취할 수 없고 좌석을 띄엄띄엄 앉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우습고 새삼스럽다. 여하튼 온 가족이 영화를 참 좋아하는 편인데 거의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코로나 시국이 잠잠해질 무렵 슬슬 여행도 가보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를 4D, 돌비 시네마, 아이맥스 같은 특별관에서 보는 것이 우리의 작은 도전이었다.
티모시 샬라메와 젠데이아가 주연한 ‘듄’은 은 전주에 있는 CGV 아이맥스에서 봤고 쥐라기공원 3은 광주에 있는 4D 전용관에서 관람했다. 솔직히 2배 이상의 영화관람비용과 먼 거리가 부담스러웠지만 가족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생활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때 마침 탑건 매버릭이 개봉을 앞둔 시기였는데 웅장한 제트기 사운드를 제대로 만끽하면서 영화를 즐기기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돌비시네마 특별관을 알게 됐다.
그래! 이번엔 돌비시네마관이다!
예매를 도전했는데 역시나 가까운 곳에는 이런 특별관이 없다.(아, 지방 사는 설움이여...) 지역명을 하나씩 눌러가며 돌비사운드 특별관을 찾았다. 썩 괜찮은 자리이면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태라 예매율이 정말 대단했다. 그만큼 나의 선택지는 좁아지고 우리 집에서 더 멀어졌다.
여러 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대전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에 위치해 있는 메가박스 돌비시네마관이었다. 음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으며 목이 아프지 않고 화면의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5 좌석을 예매했다. 이제 갈 일만 남았다. 남편 없이 혼자 운전을 해야 하니 나름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래, 가보자.
영화 한 편 보겠다고 왕복 5시간 거리를 운전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삼 남매를 태우고 엄마를 모시러 가서 고속도로 위로 올라탔다. 영화 보겠다고 우리가 지금 대전을 가다니! 하며 우리끼리 신났다.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서 더 즐겁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휴게소에서 쉬었다 갈 것까지 계산을 하니 최소 4시간 전에 출발해야 했다. (왕복 5시간 거리지만 실제로는 왕복 8시간 이상 걸렸다.)
4시간이 걸려 대전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원하는 메뉴들이 죄다 품절이었다. '와~ 역시 대도시는 다르구나'라며 시골쥐 티를 팍팍 냈다. 어쩔 수 없이 구매 가능한 메뉴들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그런 다음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을 온전하게 즐기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먼 거리를 달려왔기에 우리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비장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영화 관람에 임했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이써니의 2세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사운드와 극적인 장면들 속에서 순식간에 2시간 반이 흘렀다. 괜히 돌비사운드가 아니구나! 강력한 사운드가 온몸으로 느껴지니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더 실감 나게 느껴졌다. 금속의 부딪힘, 공기를 가르는 제트기의 엔진음, 배우의 섬세한 표정까지. 그 어떤 영화관보다 강력했다.
탑건매버릭을 돌비사운드 특별관에서 관람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한껏 더 상기된 표정의 아이들과 엄마를 보니 오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영화의 첫 장면과 그 엄청났던 사운드가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갈 길이 먼 우리는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서 서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일단 영화에 대한 감상은 차 안에서 하자며 말이다.
아이들도 엄마도 영화 보러 이렇게 먼 곳까지 왔다는 것에 무척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특히, 엄마는 우리 딸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탑건매버릭에 완전히 반한 듯했고 가는 동안 친구들에게 열심히 경험을 공유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역시 잘한 선택이었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했다.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가벼웠다. 늦지 않게 사고 없이 잘 도착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덕분인지 돌아오는 길은 대전에 갈 때보다 더 오래 걸렸다. 긴장감이 풀려 도로 위에서 쉬었다 가다를 반복하다 보니 예상한 시간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했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니 5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내 몸은 완전히 넉다운이었지만 우리끼리 멋진 일을 해낸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은 한가득이었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영화 특별관들이 많이 남아있다. 창밖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용관, 아시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용산 아이맥스 영화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영화관 등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나씩 경험해 볼 예정이다.
분명히 나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이런 도전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와 경험의 틀을 깨기 위함이며 이런 과정을 내 아이들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내가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장애물을 뛰어넘어 시도해 보는 것. 예전의 나였다면 머니까 못가, 나 혼자 운전하면 힘들어서 안돼 라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결정을 계속 반복했다면 내 인생의 반경이 무척 좁아졌을 것이다. 그런 부모와 자란 아이들 또한 이런 도전과 성취의 경험이 없어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 않았던 걸 도전하는 과정이 무조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작은 어려움들을 딛고 결국 해내고 나면 뿌듯함과 성취감이 선물처럼 내 인생의 경험치로 쌓인다. 그 경험치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나 자신은 물론 나의 아이들에게도 미약하더라도 조금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적은 가능성을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삶의 반경을 넓혀 다채로운 삶을 살길 바란다.
예전엔 '왜 산을 올라가? 어차피 내려올 건데'라며 나는 바다가 좋다고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성취감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등산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데 충분히 동의한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 뭐 하러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 라며 비관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 시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어차피 한번 사는 거 후회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그러다 한 번씩 달콤한 성취를 만들어보자는 맘으로 살아간다.
고작 영화 하나 보겠다고 멀리 간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상영관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는 것. 나에게는 틀을 깨는 도전과 성취, 그런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