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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그램 Sep 02. 2023

오롯이 나.

첫 혼캠의 기쁨에 대하여

오늘은 태어나 처음으로, 아마 처음일 것이다.


혼자 캠핑을 왔다. 그동안 수많은 것들을 혼자 해오긴 했지만 캠핑은 처음이라서 준비하는 날과 시간 동안, 캠핑장에 오기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엔 혼자 살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부모님이라는 감옥 또는 굴레에 둘러싸여 어디에 있어도 오롯이 나인 적이 없었다. 불안이든, 걱정이든 간에 딱히 좋은 느낌으로는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아이들이라는 의무로 나의 인생은 그렇게 시간에 기대어 흘러갔다. 집에 있어도 나 혼자 일 수 없고 혼자 외출을 해도 스마트폰을 통해 나는 분리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도 누군가를 보필하며,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며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여행을 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해 준비한 시간이다.  


1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부족하지도 넉넉하지도 않고 딱 알맞은 양, 오직 나의 입맛에 맞춘 메뉴다. 먹다 지겨워지면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아까워할 필요도 없이 정리하면 그만이다.


의자도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남에게 더 편한 의자를 양보할 필요도 없다. 머리까지 기대어 쉴 수 있는 의자 하나만 있으면 된다. 다리를 올릴만한 작은 의자를 하나 더 준비할까 했지만 그냥 좀 불편하고 말지 이런 맘이다. 글을 쓰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선풍기도 한대면 족하다. 모두의 캠핑에는 1인 1개의 선풍기가 지급되어야 하니 짐이 3배 4배. 하지만 혼자니까 선풍기 중에서도 가장 큰 선풍기를 오롯이 나 하나만을 위해 배터리 걱정도 없이 맘껏 틀어본다.


아이스박스에 내가 며칠 전에 직접 담근 열무김치가 적당하게 담겨있다. 물도 2리터. 아직 뜯지도 않았다. 목마름을 해소하는 데는 맥주가 최고니까.


기본적인 장비들이라 혼자 오더라도 여전히 무겁고 크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내가 이 장비들을 스스로 설치할 수 있는 근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쉘터를 설치하고 테이블을 놓고 나만을 위한 의자를 놓고 선풍기도 자리를 잡았다.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방향으로 세팅을 마쳤다.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하나 꺼냈다. 실은 배가 많이 고팠는데 그것보다 이 순간엔 맥주가 필요하다. 등에서는 땀이 나고 늦여름이 나를 붙잡고 있으니 역시 맥주가 가장 적합한 순간이다. 목구멍을 타고 가슴으로 흩어지는 맥주와 이산화탄소 공기방울 그대로 느껴진다. 여기가 혹시 천국인가요?


혼자 왔지만 이 행복의 순간을 나 혼자 누리기 아까워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시원한 가을바람은 아직 요원하지만 충분히 마음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에 부는 이 시원한 바람은 혼자 이곳에 왔다는 뿌듯함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지금껏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일들을 현실에 옮겨 실행하기까지는 항상 부침이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내가, 한 가정의 일원인 내가 이 공간을 떠나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옳은 것인가,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무너뜨리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의 처음은 항상 이런 질문으로부터 망설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실행에 옮기고 나니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불편한 마음보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동안 살아온 나의 일상에서 잠시 분리된 이 느낌이 낯설지 않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몇 번의 시도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처음이 오늘이라는 것이다.


캠핑 와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그 해보고 싶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이게 나의 행복이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나의 마음과 생각, 이 경험을 활자로 담아낼 수 있어 참 좋다. 삼겹살 굽는 소리, 모닥불을 피우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안에서 나는 글을 쓴다. 풀벌레 소리도, 바람 소리도, 파도소리도 참 좋다. 자그맣게 재생시켜 놓은 음악까지 완벽한 순간이다.


떡볶이와 맥주 덕분에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 맥주를 다 마셔버려서 무알콜 맥주를 마시던지, 아니면 아껴둔 별빛청하를 까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롯이 나 혼자 컨트롤할 수 있다. 술을 마실지, 드라마를 볼지, 영화를 볼지, 라면을 먹을지 말지 오직 나만의 위한 모든 선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기쁨이다.


방전된 내 삶에 오늘을 충전해야지.

그리고 이런 시간을 나를 위해 좀 더 선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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