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지 않아.
고요함이 싫었다. 혼자 있을 때의 고요함은 내게 외로움이었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고요함은 내게 두려움이었다. 이러다 진짜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무서웠고, 나와의 고요함이 지겨워 떠나갈까 두려웠다.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은 이렇게나 크고 급한데, 마음을 어떻게 적절한 속도와 담백한 표현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몰랐다. 그 시간을 쓸데없고 시끄러운 말들로 채워보기도 하고, 감정 없는 껍데기뿐인 말들로 채워보기도 했다. 내 껍데기는 사람들이 보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했나 보다. 화려하고 밝은 모습에 이끌린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이어진 끈을 먼저 놓았다. 결국 남는 것은 없었다. 다시 내겐 혼자의 고요함이 반복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친구도 많고 약속도 많은 인싸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내 모습과 그 속의 관계들은 진짜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속이고, 행복한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불러주고, 나를 좋아하고, 나와 함께 있어준다. 사람들이 가득하고 비생산적인 이야기가 쏟아지는 장소. 나는 그런 곳이 좋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오늘이 마지막인 관계일지라도 괜찮다. 오늘 하루만큼은 혼자가 아니니까.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겁쟁이지만, 이런 겁쟁이는 혼자가 되기 십상이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내 모습을 숨겨야 한다.
“오늘은 취하는 날!” 사람들을 만날 땐 술을 곁에 둔다. 나는 사람들과 있는 시간에 찾아오는 빈 공간이 싫다. 나를 지루하게 생각하고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빨리 취하려 노력한다. 술과 함께라면 시끄러워질 용기가 생겨 어떤 시간이든 채울 자신이 생긴다. 생산적인 대화가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음날에 들리는 것은 하나. 만남에 대한 평가다. "역시 너랑 있으면 너무 재밌어." 그렇게 나의 임시적인 거처를 하나 더 만들어 놓는 일을 성공한다. 너무 힘들 때 잠시라도 찾을 수 있는 사람들.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언제나 술에 절어있다. 멋진 성인으로 자란 사람들의 앞에 술로 만든 재밌는 나를 만들어 놓으며 기대한다. 술에 절어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나를 한 번씩 바라봐주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잘못된 부분이 보여도 쉽사리 말하지 못한다. 귀찮거나 하기 싫은 요청이 생겨도 거절하지 못한다. 덕분에 나는 예스맨이 되기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듣기에 싫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부정적인 말을 듣는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 강한 표현을 하면서 나를 다그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당황스럽다. 그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의 의견이 더 옳을 거라 수용하고 만다. 그럼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느꼈다. 사람들은 어떤 요청에도 다 괜찮다고 수락하고, 자신의 의견을 크게 주장하지 않는 사람은 찾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착한 점을 칭찬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도 거기까지다. 내가 필요했던 일이 끝나면 솔직하게 툭툭 말하는 사람들을 찾는다. 나도 그런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더라. 그런 시간이 반복되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친구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날. 그럼 아무도 만나기가 싫어져 혼자를 선택한다.
사람들이 싫어져 버린 날에도 혼자 있는 것을 버티지 못한다. 결국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존재에게 도망쳐 버린다. 바로 부모님.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는 방에 혼자 있더라도 거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아직은 완벽한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이 든다. 마치 새끼오리가 다리를 다치면 어미오리의 둥지 속에만 있으려 하는 것처럼, 인간관계의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언제나 나를 반기는 부모님을 보며 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갖는다.
새끼오리는 언젠가 어미새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다른 새들과 다르게 계속 비행에 실패하며 새로운 둥지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야만 하는 다 커버린 오리다. 그리고 나의 부모는 내가 혼자의 힘으로 잘 산다고 생각하기에,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부모님 앞에서는 행복한 척을 한다. 나 잘 날고 있다고, 이제 엄마랑 아빠 없이도 잘 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제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하지 않아야 하니까.
부모님이 자취방까지 데려다주시는 길. 아직 홀로 날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아직 다른 곳으로 날아갈 준비가 다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내 망설임을 알지 못한다. 아무 말 없이 눈을 꾹 감는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 남겨지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꾹꾹 채워 넣는다. ‘우리’라는 안정감을 느끼다 다시 ‘나 하나’로 뒤바뀌는 순간. 내 마음은 지옥까지 떨어진다. 잘 가라는 행복한 말에도 내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지려 하는 눈물이 차오른다.
‘엄마아빠가 잘하고 있다고 하니까 괜찮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나타나겠지. 엄마아빠도 언젠가 나처럼 날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보살펴줄 수 있는 힘까지 가지게 되었으니까. 나도 그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