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천금 Dec 15. 2023

저 사랑받고 자랐는데요?

엄마가 이유일리가 없어요.


“정신적인 문제에 언제나 올바른 답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내담자님의 의존적인 성향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 같아요.”

“저 사랑받고 자랐는데요? 엄마가 이유일리가 없어요.”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통해 불안을 느껴요. 그리고 어머님이 내담자님께 너 때문에 살 수 있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행복을 전이시켰다고 하셨죠. 어머님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담자님께 의존했을 거예요. 아이가 엄마에게 의존하고 기대야 하는데, 반대로 엄마가 아이에게 의존하면 아이가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해요. 부모가 싸우는 모습과 어머니께서 내담자님께 의존하는 모습이 반복되어 일관성 없는 사랑이 되었고, 불안정 애착에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어머님이 내담자님께 행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거울이 되어 내담자님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만들어진 거죠.”

“저는 몰랐지만, 저는 제가 배운 사랑을 똑같이 행했다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상담사님은 내 사랑과 행동의 이유,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 모두 가족의 영향에서 찾았다. 사실 내가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그만둔 이유는 다름 아닌 남자친구의 거칠고 강한 행동 때문이었다. 가스라이팅을 하며 관계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고, 싸울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에 아빠 생각이 났었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 어린 시절에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관계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끊은 이유도 가족에서 찾을 수도 있어요. 과거 아버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번 관계의 마지막도 그 이유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죠. 물론 지금 내담자님께서 과거만큼 아버님을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아버님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다음 시간에는 내담자님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더 깊게 들어가 봅시다.”






다음 주에 언제 시간이 되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고, 집에 가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만남을 회피하고 싶었다. 집에 오니 상담을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잘 지내고 있는데 내 아픔을 가족들에게서 찾기가 싫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내 문제를 책임전가하는 것 같았달까. 어제까지만 해도 상담에 갈 생각에 즐거웠는데, 오늘은 괴로운 마음에 가까웠다. 


일주일 후에도 상담사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후부터 조금씩 더 괴로워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언제나 항상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내가 미워하는 내 모습을 만들어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냥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사람을 좋아하는 엄청난 사랑꾼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었을 테니까. 나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생기면 노력을 그만두고 상대에게 안주해버리고 싶었다. 


과거를 반추하는 반복이 지겨워 심리상담을 찾았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내 삶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 알았지만, 그분은 답을 알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답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덮어두던 과거의 문제를 끄집어낼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예쁜 말로 나를 감싸줬지만, 돈을 받고 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전문가는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더라. 내 발로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다시 상담사님께 의존할 수 있는 방법만 생각했다. 내겐 누군가가 주는 명쾌한 해답을 따라가는 삶이 가장 쉬웠으니까.






상담사님이 제시해 주는 방향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올바른 방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그 시작을 거부하고 있다. 혼자서도 잘 살고 싶다는 문제를 들고 갔으면서, 해결은 스스로 하기 싫다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과거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내가 내 삶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담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하겠지. 과거의 사진들을 보며, 내가 쓴 다이어리를 보며 내 과거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의존형 인간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