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토미 Aug 10. 2023

거짓말쟁이 학부모를 자수하게 하는 현명한 방법


2016년 9월 1일,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으로 발령이 났다.


고경력의 베테랑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하시고,  자리를 맡게 된 20대의 젊은 선생님.

학급 학생들보다 고작 11살 많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교일을 배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6학년 담임을 맡으면 해야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바로 '중입배정'이다.



강원도의 작은 도시에서 자란 나는 '중입배정'이라는 업무가 왜 그리 중요한지 처음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고향은 [여자중학교 2개, 남자중학교 2개. 남녀공학 없음.]의 상황이라 중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었고 만약 인원이 한쪽으로 몰릴 경우에는 랜덤으로 배정이 되었다.



'그냥 뺑뺑이 돌려서 학교 가는 거 아닌가..?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하지..?'



그렇다. 나는 그때까지 서울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강남의 주요 학군 근처 초등학교는 6학년으로 갈수록 한 학급 학생이 40명에 육박하는 과밀학급이 되어 간다는 사실도, 학군 좋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근처 초등학교는 역피라미드 형태의 학생수 구조를 보인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나에게 중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이라는  또한 낯설 수밖에 없었다.



* 위장전입: 실제로 이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원하는 중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전입신고를 거짓으로 하는 것.



이러한 이유로 근처에 유명 학군이 있는 초등학교의 경우, 6학년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의 거주지를 필수적으 확인한다. 의심이 될 때는 직접 가정방문을 하여 실거주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는 부장님의 말씀은 내게 컬쳐쇼크였다.



나... 같은 대한민국에서 자란 거 맞지?

이게 바로 서울과 지방의 차이인가?



친절한 부장님의 설명 덕에 상황 파악을 한 나는 그 날 이후로 열심히 학생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보며 혹시나 우리 반에 위장전입 학생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목동과 멀지 않았기에 위장전입에 대한 우려가 있어 더욱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그러다,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현도(가명)의 등본을  바로 얼마 전 새로운 장소로의 전입신고가 되어 있는 것이었.

 



교실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굳이 그 아이와 일대일로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알게 되는 정보가 많다.

현도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편인 남학생이었는데, 평소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친한 친구들과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였다.

그리고 현도가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정보에 따르면 이 아이는 학교에서 거리가 꽤 있는 곳에 거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등본에 적힌 내용은 달랐다.

아이가 학교에서 불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건물 1층에 살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그런데 당시 내가 더욱 이상하다고 느낀 점은 단순한 전입신고 때문이 아니었다. 위장전입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학군 좋은 중학교에 배정받기 위함인데, 그런 이유라면 학교 근처가 아닌 목동 쪽으로 전입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에 있는 중학교는 좋은 학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개가 절로 갸우뚱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초짜 선생님은 그저 의아했다.

하지만 일단 의심이 들었다면 확인을 해야 하기에 현도 어머님께 바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중입배정 관련해서 현도 등본을 살펴보다 보니 얼마 전에 학교 근처로 전입신고가 되어 있더라구요. 전입신고하신 기간이 최근이라 확인 차 연락드렸어요. 이사 하신 것 맞을까요?"


"네, 맞아요. 이사했어요."


"아, 네. 그러면 이사 완료하시고 그 집에서 지내면서 등하교하는 것 맞죠? 이게 전입신고만 되어 있고 실거주를 하지 않으시는 거면 문제가 되어서요"


"살고 있어요 선생님."



너무나 단호한 어머님의 말투에 24살 담임은 더이상 캐물을 수가 없었다. 더 캐물었다가는 안 좋은 말만 들을 것 같다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

'알겠다, 확인 감사하다'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었으나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실이 밝혀졌다.



날은 신기할 정도로 버스 운이 좋아 평소보다 무려 20분 일찍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하는데 현도가 교실에 들어왔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은 8시 40분부터라 그 전에 오면 도서실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교실에 내가 있는 것을 보고는 도서실이 아닌 교실로 왔다며 현도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수 있겠다 싶어 아이에게 자연스레 물었다.



"현도야, 그런데 왜 이렇게 학교를 일찍 오는 거야? 선생님이 보니까 현도 거의 매일 이렇게 빨리 등교하는 거 같던데~ 학교 근처 살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사실 아이의 대답에 내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 네..네.. 그냥요."



아이는 누가 들어도 수상할 정도로 말끝을 흐렸다. 요즘 아이들 영악하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다보면 대부분이 순수하고 아이답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때는 어떻게든 티가 난다. 현도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 어머님께 들은 게 있는 건지, 무언가 숨기려고는 하지만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해 얼버무리는 모습.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현도야. 사실은.. 선생님이 방금 출근하면서 교문 앞에서 현도를 봤거든~ 현도가 차에서 내리던데? 집이 근처면 걸어와도 되는데 계속 차 타고 오는 거 같더라구. 집이 학교에서 먼 거 아니야? 멀어서 힘들지 않아?"


아이는 내 말에 약간 당황했는지 나를 쳐다봤고,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아.. 괜찮아요. 엄마가 차로 매일 데려다주셔서 힘들진 않아요."



잡았다 요놈.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너 이사 안갔구나.



"그래? 어머님 대단하시다. 매일 데려다주는 거 되게 힘든건데~ 차로 한 20분 걸리나?"


"아, 아니요. 한 15분 정도 걸려요."


"학교 근처로 이사하는 건 어때? 어머님한테 이사하자고 말씀드려봐~"


"네. 근데 이사 못한대요."


"그렇구나..^^"




그 날은 오후에 아이들이 하교하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오후 2시 반, 아이들이 하교를 했고 나는 곧바로 현도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전입신고 관련해서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연락 드렸어요. 이사해서 실거주하시는 거 맞을까요?"


"..하.. 선생님,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거기 지난 번에 이사해서 계속 살고 있어요. 의심하시는 건가요?"



역시나 단호하고 이제는 짜증까지 섞인 말투.

어머님, 의심이 아니라 확신입니다만.



"아, 네 어머님, 그러시군요. 음.. 사실 제가 오늘 아침에 현도랑 이야기를 좀 했어요. 제가 출근을 일찍 했는데 현도가 얼마 안돼서 교실로 오더라구요. 너무 일찍 등교했길래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하니까 집이 학교에서 멀어서 매일 어머님께서 차로 15분 거리를 데려다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찍 출발하다보니 등교도 이르게 하는 거라고요. 제가 학교 근처로 이사하지 않았냐고 하니, 그런 일 없다고 하고요."


"......."



방금 전까지 짜증내던 어머님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수화기 저편에서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제가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와 너무 달라서 의아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머님, 잘 아시다시피 우리 현도가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아이잖아요. 저는 담임하면서 현도가 거짓말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알기론 현도가 거짓말 하는 아이가 아닌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나의 말을 듣고 어머님은 한동안 "...어.. 음.. 하.." 만을 반복했다.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것인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본인의 거짓말을 고백할 것인가.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 그게... 아이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같은 중학교로 가고 싶다고 계~속 조르는 거예요. 근데 지금 집은 그쪽 학군이 아니라서 이 상태로 중입배정 받으면 친구들 하나도 없는 학교로 가야 해서... 그래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진실은 밝혀졌다.

물론 진작부터 심증은 있었으나 어머님의 입에서 직접 진실을 듣기란 쉽지 않았다.

늘 당당하고 단호하던 그녀에게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 또한 꽤 어려운 일이었다.



몇 초 전까지 짜증을 내며 당당히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분명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신 자식을 담임교사에게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 더 싫었나보다. 그녀가 거짓말은 하되 그 정도의 양심과 모성은 있는 사람이라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그 후, 그녀는 본래의 집으로 다시 전입신고를 했고 아이는 본인의 거주지에 맞는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중학교 진학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특별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잘 지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요즘 교권추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이런 이야기가 이제서야 수면 위로 드러난 것,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를 몰랐다는 것에 놀란다는 사실이다.

교실이 붕괴되고, 교사의 권위가 사라지고,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민원 창구로 며 함부로 행동하는 모습은 내가 첫 발령을 받은 2016년도에도 이미 만연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법적인 절차, 관리자 및 교육 관계 부서의 변화 등 많은 것들이 변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모두의 인식이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기 위해 하면 안되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거짓말을 행하고 심지어 아이에게 거짓을 말하게끔 하는 학부모.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교사에게 보이는 적반하장의 태도.



이러한 것들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어떠한 법적 제재도 큰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두가 그저 상식적으로만 행동해도

교육 현장은, 이 사회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쟁이 학부모에게 자수를 받아낸 날,

나는 기쁨과 뿌듯함에 한껏 취해 있었다.

얼마나 무지한가.

이런 일이 팽배함에 속상하고 슬펐어야 하는데,

어린 나는 그저 뿌듯했다.



8년차 교사가 된 지금,

그 날을 떠올리며

속상함과 착잡함을 느껴 다행이다.


앞으로 좋아질 교육 현장을 바라고 또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초등학교 소수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