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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 아저씨 Jul 25. 2023

#02지오디가 부릅니다. 니가 있어야 할 곳

뇌졸중 환자가 된다는 것,  

신경외과 담당의사와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났더니 갑자기 바로 MRI를 찍으라고 하였다. MRI를 찍고 나서 다시 대면한 의사는 뇌경색이라며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뇌경색이 뭔지 잘 몰라서 뭐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구나만 눈치로 알고, 알겠다고 했을 뿐이다. 와이프에게 뇌경색이라고 입원해야 한다고 카톡으로 알리고 입원 수속 절차를 간단히 처리하고 나서 바로 병실을 배정받았다. 링거바늘을 팔에 꼳은채 배정받은 베드에 누워서 좀 있으면서부터 차츰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심각한 병에 걸렸구나. 그리고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분들이 전부 60대 이상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 들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대부분 혼자 정상적인 거동을 못하시는 분 들이었다. 나또한 침대에 펜스를 올려 떨어지지 않게 조치를 하고, 혼자 화장실도 갈수 없도록 분류되었다. 추후 생각해보니 내가 혈압 때문에 다니던 병원기록이 있고, 고혈압에 혈당 수치 높고, 말할 때 무언가 표정이 일그러짐이 있다던가 하는 걸로 담당인 신경과 의사였다 보니, 바로 뇌졸중 의심을 하고 MRI를 찍은게 아닌 가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하체에 채워져 있는 귀저기였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중년 남자가 귀저기를 다시 차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을 지언데, 난 뭐고 지금 여기에 왜 나는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뇌를 다친다는 건 그런 것 이었다. 내가 분명 고장난 건 맞는데, 일단 외형상 별로 고장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난감한 부분은 어디가 고장 난건지 확인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혼자 걷지도 못하는 노인분들 사이에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건가 의아해 하며, 맨날 밥먹고 누워만 있는 것이 답답해 병원복도 로비라도 좀 걸어볼 요량으로 침대를 나와 보려 하고서야 약간 깨달았다. 내 몸의 조절이 잘 안되는구나를. 일단 균형을 잘 못잡아 휘청거리며 걷는 것이 세상 어렵게 느껴지는 신생아 같았다. 47세에 느끼는 삶의 장벽과 내 하체에 둘러진 귀저기란 나를 이토록 절망하도록 만드는구나. 아무리 봐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았는데, 니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야 하며, 지오디가 앞에서 노래를 하며 나를 놀리는 것에 굴복하고 인정을 하게 되는 하루 하루가 흘러간다. 

  매일 아침이 되면 간호사가 찾아와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되시죠?, 여기가 어디죠?, 이것좀 읽어보세요.” 라며 묻고 시킨다. 뭐 이런 얼토당토 않은 것을 물어보나 하며 가볍게 되받아 쳤지만, 나중이 되고서야 알았다. 뇌를 공격 받게 되면, 언어기능이나 기억력에 데미지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다행히 나는 그 2가지 부문에서는 상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입원 중 거의 매일 오전마다 갖가지 종류의 검사를 받으러 다녔다. 혼자 거동 하면 안되는 분류군이라 알바이신지 하는 분들이 시간이 되면 오셔서, 휠첼어에 나를 태우고, MRI, CT 심장 측정기 등 잘 알지도 못하는 검사를 매일 받으며 병원 곧곧을 돌아다녔다. 나 중에서야 깨닫게 된 것인데, 뇌경색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심장부터 몸의 모든 혈관들을 검사하고, 문제점들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한번씩 왕진이라고 하나 용어를 모르겠는데, 환자들을 돌며 이야기를 하고 체크를 하는 담장의사선생님을 통해 그런 검사들의 결과를 들어 보니 일단 나는 정확히 드드러지는 혈관의 문제가 없고 심장쪽에서도 문제가 없는 걸로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다. 정확한 주요 혈관에 막힌 곳이 있다던가 하는 문제가 관찰이 되면, 시술을 통해 혈관을 뚫어주거나 막히지 않게 조치하는 행위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유전적 요인에 기인한 미세혈관성 뇌경색인 거 같다고 한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뇌출혈 환자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랑 워낙 친하지 않고 왕래가 없어 나에게 이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사실을 생각하거나 예측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좋든 싫든 이렇게 유전자라는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이 따위 유전을 주는가 하는 미움이 다시 한번 치솟을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왜 이곳에 있나 라는 의문점으로 괴로운 것보다는 비난하고 원망할 구멍을 찾았다는 건 약간의 위로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야간에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옆에 구비해 준 소변통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소변통으로 소변을 받으려 했지만, 누워서, 그것도 몸의 움직임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채 깔끔하게 잘 실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상당양의 소변을 침대 시트에 흘리고, 그것이 챙피하고, 미안하기도 해, 그냥 묵묵히 누워 있기를 몇차례했더니, 특별 병실이라 상주 하시던 담당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시트와 옷을 갈아주시며,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 아파서 오신거잖아요. 본인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고 하면 얘기하세요.”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 순간은 그것이 참으로 따뜻한 위로가 되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몸이 아프다는건 그런 것 같다. 나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며, 그래서 주변의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한 것. 그래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도움요청을 하는 것이 어려운 성향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그러한 상황이 남들보다 훨씬 더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그냥 삶에서 최대한 아프지 않기를 추천 드리며, 그게 맘대로 되겠는가 하시겠지만, 그런 노력이라도 하시기 바란다. 그 좌절감과 무력감은 절대 겪어보라고 추천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로 이전에 결혼을 해서 얼마나 다행이던가. 물론 내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생각할 때 말이다  와이프는 이게 뭔가, 결혼 한 다음해에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막막함이 들었을 것이고, 내가 똥 밟은 건가 하는 기분까지도 들 수 있었을 것 같다. 의사가 좀만 더 일찍 오셨으면, 뇌 괴사가 많이 진행이 안 되었을텐데 라는 말도 했지만, 혼 자 살 때의 나는 병원에 갈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한 예로 30 중반에 혼자 살 때,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밤새 구토를 하며, 아픈 아랫배를 주먹으로 치며 고통을 밤새 참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병원도 걸어갈 수가 없어서 택시를 불러 혼자 병원 응급실을 간적이 있었다.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의사를 붙잡고 진통제 같은 것좀 놔주면 안되냐고 사정했을 정도였다. 급성맹장염이라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파 죽게는데도 수술 동의서 및 접수 등 뭐 할게 참 많았다.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주사를 맞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 지며 이제 살 것 같다 하며, 기억이 사라졌다. 나중에 의사가 급성맹장염이 심해져 복막염으로 번져, 맹장이 터지기 직전에 와서 무척 위험했었다며, 어떻게 그 때까지 참았냐는 말을 했다. 이쯤 되면 미련함의 말로를 삶으로 체감할 수 있는 증거가 되시겠습니까? 미련함의 말로는 고독사 정도로 귀결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성향이 있으신 분들은 몇 개월 몇 년이 걸려도 꼭 탈출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40대 뇌졸중 환자는 뇌졸중이 뭔지도 잘 모른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가득한 병실에서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건가?’라는 답을 찾지 못한채 이주일 정도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같이 주요 혈관문제나 이런 원인이 없는 경우는  병원에서 할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피를 연하게 하는 약을 투여하고 당뇨식 같은 건강 식단을 먹으며 지속적으로 체크하느 것 이외에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퇴원을 시키는 것 같았다. 그 이후는 결국 환자 개인의 몱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무작정 계속 병원과 의사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깨닫지 못한채, 두려움을 않고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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