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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필라테스 Jul 02. 2023

혹시 래퍼처럼 티칭하고 있나요?

여백 없는 티칭은 소음공해입니다.

강사 짬이 차기 시작했을 무렵 성장통처럼 지나가는 관문이 있습니다.

 

초보강사 때는 바디를 보는 안목이 없으니 당연히 나의 티칭에 확신이 없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의심하며 자신감이 바닥을 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회원의 피드백도 좋아지니 티칭에 재미가 붙습니다. 이때부터 마치  래퍼처럼 속사포큐잉을 쏟아내기 시작하죠. 내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바디에게 완벽함을 바라는 나의 욕심을 강요하게 됩니다.




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왔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수업에 한참 물이 올랐을 무렵 추가금액을 내고 원장레슨을 선택한 남자회원님이 있었습니다. 내시경을 주로 하는 내과 전문의였는데 하루 8시간 동안 한 손은 렌즈를 들고 한 발은 페달을 밟으며 일하는 환경이었죠.

척추가 회전된 채로 팔다리를 계속 사용하다 보니 자세가 망가졌고 늘 허리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본인 직업이 의사니까 해부학을 공부하며 본인이 아픈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가 스스로 타이트한 햄스트링이 원인이라 결론을 내고 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어요.


사실 저는 햄스트링보다 허리의 축과 골반의 무게중심을 바로잡고 척추뼈 사이 공간을 늘리는 "lower back opening"이 우선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확보되고 통증이 사라질 테니까요.

허리뼈와 추간판

하지만 회원님이 의견(햄스트링이 타이트하니 늘려야 한다)이 너무나도 확고하셔서 그 니즈부터 해결한 후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끌어가야지 마음먹게 되었어요. 햄스트링이 이완되는걸 본인이 느껴야 저와 라포형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수업 내내 허리를 짓누르며 움직이는 회원님을 보며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참견하며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도 모자라


"회원님 이렇게 허리를 짓누르지 마세요."

"등을 젖히지 마세요."

"숨을 참지 마세요."


같은 부정어를 마구마구 쏟아냈고 회원님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뇌는 자신이 수행할 수 없는 요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무력감을 느끼며 과업을 아예 포기해 버린다고 합니다. 제 과한 큐잉에 계속 노출되어 있던 회원님은 움직임을 포기하고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원장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언발란스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뉴런과 신경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어요. 그 당시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이 일은 티칭부심에 도취되어 있던 저에게 제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고마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요?





첫 번째
큐잉의 슈서 "큐 레이어"를 지켜야 합니다.
1. 동작이름 Name
2. 셋업 Set Up
3. 움직임 Execution
4. 파워하우스 Powerhouse
5. 리듬과 다이내믹 Rythm & Dynamic
6. 트랜지션 Transition


이 레이어는 한 동작을 가르칠 때 큐잉하는 순서입니다.

한 항목씩 살펴볼까요?


1. 동작이름 Name

동작의 이름을 가장 처음 말합니다. 이름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 레퍼토리의 순서를 저절로 외우게 되고 셋업 시간이 단축되어 시간을 경제적으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2. 셋업 Set Up

TMI를 남발하기보단 간단명료하게 말하고 바로 움직임으로 넘어가도록 해주세요.

너무 정확한 자세를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면 정적인 상태에서 지체되어 불필요한 경직이 생기게 됩니다. 풋웍(Foot Work)으로 예를 들면 "등 대고 누워 발볼 풋바위 필라테스 스탠스" 정도면 충분합니다.


3. 움직임 Execution

"손끝을 천장으로" 혹은 "꼬리뼈를 바닥으로"처럼 신체의 부위와 움직임의 방향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세요. 수업하는 공간의 특징을 사용하거나 기구로 방향을 설명해도 좋아요! "시계방향으로 팔을 뻗고" 혹은 "타워방향으로 정수리가 길어지게"처럼 말이죠. 

여기저기, 이쪽저쪽 같은 대명사를 사용하기보다 신체의 정확한 지점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명사를 사용하여 간단명료하게 설명합니다.


4. 파워하우스 Powerhouse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디테일입니다.

손끝을 천장으로 뻗는 동작을 할 때 [뒷목은 길게, 견갑골을 끌어내려 쇄골은 넓게 열고, 흉골을 몸 안으로 넣어 갈비뼈를 연결하며]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이 복합적인 행위를 한 번에 잘할 수 없으며 앞서 설명드렸듯이 뇌는 나의 수준 이상의 과업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을 때 포기 해버립니다.


그래서 움직임이 익숙해져야 그 위에 디테일을 얹을 수 있어요.

움직임: 손끝을 천장으로 뻗는다

디테일 1: 견갑골
디테일 2: 갈비뼈
디테일 3: 뒷목

1,2,3을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빵 하게 되면 저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동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과한 디테일을 강조하는 것은 소음공해일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릎을 구부리고 펴고 팔을 올리고 내리고 같은 큰 움직임이 선행하고 몸이 인지한 후에 자세한 큐잉을 더해주세요.


5. 리듬과 다이내믹 Rythm & Dynamic

"티져 업!" 과 "티져 어~~~ㅂ"은 다릅니다.

이처럼 모든 필라테스 동작에는 고유한 리듬과 다이내믹 즉, 박자와 강세가 있고 이는 템포(속도)와 다른 개념입니다. 힘을 강하게 사용하는 구간과 그렇게 않은 구간을 구별하고 힘의 강약을 조절해야 합니다.


6. 트랜지션 Transition

두 동작을 연결하는 트랜지션도 마찬가지로 간결 명료하게 큐잉하여 흐름을 살려 봅시다.


[버벌 큐잉에 관한 내용은 따로 피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에서는 간단하게 맥락만 이해합시다.]





두 번째
부정적인 언어사용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제가 사용했던 부정적인 큐잉을 긍정문으로 바꿔볼까요?

허리를 짓누르지 마세요. - 무게 중심을 골반에 두고
등을 젖히지 마세요. - 흉골을 몸 안으로 아래로 립커넥션
숨을 참지 마세요. - 마시고, 내쉬고


비교해 보니 어때요? 사실 수업할 때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하지만 움직임만 아이디얼로 향해가는 것이 아나라 티칭도 아이디얼을 향해갈 수 있도록 부정어 사용을 조금씩 줄여나가며 그 자리에 해결책이 포함된 긍정어로 대체해 봅시다. 저 어딘가에 있을 아이디얼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바로 필라테스의 묘미 아니겠어요?




세 번째
수업의 주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코렉션큐잉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보다 한 가지 주제를 잡고 수업을 끌어가시길 추천드립니다.

"스쿱(Scoop)"이나 "대조(Opposition)"같은 콘셉트도 좋고 골반이나 어깨 같은 신체 부위도 괜찮습니다.

필라테스 레퍼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그 부분을 일관 강조합니다. 스쿱의 타이밍이나 골반의 무게중심 대해 지속적으로 큐잉하다보면 그것이 회원의 신체에 각인되고 그런 움직임의 각인이 홀바디를 가능케 합니다.


일반적으로 강사들은 오디오가 비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과 날로 먹는 것 같은 민망함 때문이죠. 하지만 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큐잉을 했을 때 바디가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체크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거입니다. 


내 큐잉이 바디에게 전달이 되는지를 관찰하는 그 순간에는 여백이 있어도 괜찮아요.


움직임으로 소통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으로 돌아가
에피소드 속 회원님은
왜 신경계에 문제가 생겼을까요?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저의 니즈를 강요했거든요.

수업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자세나 동작에 대해 투머치로 정확성을 강조하고 부정어를 남발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죠.


게다가 한국어는 화자의 의도가 인토네이션이 되는 언어인데 제 텐션이 높아지며 강약의 완급조절 없이 "강강강강"의 목소리의 톤과 볼륨으로 회원님을 몰아붙였어요. 그러한 환경에서 회원님의 교감신경을 항진시켰고 신경계를 교란시켰습니다.

회원님이 언급하셨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무엇일까요?


자율 신경계의 하위 개념으로 내장기를 담당하고 호르몬과 맥박 땀을 제어하며 무의식을 지배합니다. 스스로 심장박동을 컨트롤한다거나 땀이 나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교감신경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우리의 몸은 전투태세에 들어가죠. 심장박동과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팔라지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동공이 확장됩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티칭 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부교감신경
교감신경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 몸은 이완상태가 됩니다. 심박수와 백박을 감소시키죠. 티칭 시험이 끝나고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있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자율신경계 시스템: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여러분은 어떤 신경이 우위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나요?


과유불급!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교감신경이 너무 우위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있다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지게 됩니다.


모두가 갈망하는 워라밸도 이 신경계의 안녕을 위해 나온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적당한 일과 충분한 휴식이 우리의 신경계를 조화롭게 합니다.




인간은 미성숙한 존재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움직임과 티칭 역시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계속해서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자 소명이 아닐까요? 아이디얼을 찾아가는 저의 필라테스의 여정에 함께 해주세요.


저 역시 여러분들의 필라테스 여정을 응원합니다!

 


PS. 이 글을 피크필라테스 레벨 2 15기 여러분께 드립니다. 늘 시간에 쫓겨 기술적인 피드백만 드리지만 저에게도 흑역사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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