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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Nov 27. 2023

굳이 굳이 낭만 찾기

LA 여행 : 긴장 풀고 여행의 시작

 사실 관광 또는 휴양보다는 '조사'가 목적이었다. 막연한 생각으로 내년 1달간의 휴가 때 LA에 살아보는 것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에서 무작정 1달을 살 수 없기도 하고 예전에 유럽여행을 짧게나마 갔다 왔을 때 즐거웠으면서도 오묘하게 아쉬움이 남아있었기에 '미국 vs 유럽' 선택을 해야 했다. 물론 둘 다 가면 좋겠지만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안 되는 관계로 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꼭 이곳을 가야 해.'라는 목적은 없었다. 물론 가고 싶은 곳들이 있었지만 여유가 되면 한 곳씩 가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인타운의 메트로에서 발급한 일주일 무제한 메트로카드(20달러를 충전하고 사용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게 7일 무제한 이용권이었다.)를 들고 폴스미스 핑크웰로 향했다.

 역시나 긴장하면서 탑승한 버스의 앞자리에 선글라스를 낀 백인의 할머니가 앉으셨다. 우린 5 정거장 가량을 마주 보고 앉았다.(한국처럼 앞을 향한 좌석도 있지만 지하철처럼 옆방향으로 설치된 좌석도 있다.) 핑크웰을 가기 전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할 계획으로 목적지보다 2 정거장 앞에서 내리려고 준비하던 나는 마주 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할머니는 나를 보며 웃으셨고 오른손을 내 전신을 한번 쓰윽 훑으시더니 엄지를 내밀어주고 내리셨다. 그 상황이 당황스럽게 기분 좋기도 했고 하필 내가 내리려던 곳에서 내리시길래 같이 내렸더니 할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Pretty, Lovely. Your whole outfit."

 그러고 가려던 길을 가셨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거의 벗겨지기 직전인 바지를 입는 남자들, 배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는 여자들 그리고 언제 감았는지 모르는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나의 옷차림으로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외국인들이 봤을 때 한국은 개성이 없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의 대표적인 예가 나였다. 그런 내가 그저 회색의 슬랙스에 흰색 티셔츠, 그 위에 쥐색의 니트카디건을 걸친 눈에 띄지도 않는 세상 단정한 모습으로 있었는데 칭찬을 들으니 "결국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생각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과 내심 긴장이 풀린 상태로 스타벅스를 향해 걸었다. 

나에게 엄지 척을 하신 뒤 유유히 어딘가로 가시는 할머니. 이렇게 보니 우리 동네 할머니 같다.


 그렇게 걷고 있는 곳은 내가 상상했던 미국의 모습과 조금 더 가까웠다. 길거리에 사람이 돌아다녔고 여러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으며 생기가 느껴졌다. 

'그래 아무리 미국이 땅이 넓어 차가 없으면 안 된다 하더라도 가게가 없는 것은 조금 이해가 힘들었어.'

 강렬한 햇빛과 생기가 있는 동네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들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목적지인 핑크웰로 향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샌타모니카 비치로 가기 위해 또 다른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핑크웰에서 지도상의 위쪽으로 걸어야 했는데, 한 동네를 가로질러야 큰 길이 나왔고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그렇게 또 다른 동네를 걷기 시작했고 완벽하게 내가 상상했던 미국의 동네가 나타났다. 하얀 2층 주택들이 즐비해 있고 정말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보기에도 탄탄해 보였고 건강해 보였다. 계속 걸었다. 

 핑크웰이 있는 멜로즈거리를 기점으로 지도상의 아랫 지역, 즉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었는데 이 둘 다 사람이 사는 생기가 넘치는 곳이라 느껴졌지만 북쪽이 좀 더 내가 생각한 미국의 모습과 가까웠다. 내가 숙박하고 있는 잉글우드지역은 많이 남쪽인데 남쪽으로 갈수록 더욱이 열악했다.


 확실히 구역마다 삶의 질이 다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보수적이라는 미국은 아마 이 동네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 멋없이 입은 나에게도 잘 입었다고 칭찬해 주고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눈살 찌푸려지는 모습과 행동을 하지 않는 이곳을 보니 이제야 내가 정말 여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고 나의 조사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 정말로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니다. 외국인에게는 내 이름이 어렵게 들리나 보다. 이후로 이름을 물으면 항상 사원증 사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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