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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Feb 25. 2024

단독행동형이 되고 싶은 피착취형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기업이 성장할수록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구성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빈둥거리고 무능력하지만 고임금을 받는 구성원으로 채우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첫 번째 부류가 위협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인력이 임금을 적게 받다 보면 언제 기존 체계를 전복하려 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능력해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두 번째 부류는 기존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되어 있다. 동료들과 상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느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기준의 명확함이 진단의 방향과 더 나아가 치료의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새로운 치료법과 검사법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지만 그 개발이 당장 임상에 적용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개발이 되고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적을 하며 기준을 좀 더 명확하게 잡으려 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건강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시작부터 더 명확한 기준을 잡고 시작하다 보니 변화가 필요하다면 수많은 근거를 토대로 제안을 하게 되고 그것이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령 Enterococcus faecalis가 원래는 Streptococcus faecalis였지만 바뀌는 데에는 생화학적 그리고 유전적 근거를 수없이 찾아내어 바뀌었다. 이 또한 많은 시간이 걸려 바뀌게 된 것이다. 

 아무튼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밑밥을 깐 이유는 하나다. 의료집단은 다른 사기업과 달리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집단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분명 더욱이 보수적인 직종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나라마다 의료시스템을 운영함에 있어 분위기는 다를 것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로 의료기관마다 운영하는 분위기가 다르다. 하지만 다름에도 불구하고 직종마다 업무 범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불법의료행위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고자 나라에서 정한 것이다. 그렇기에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정기간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뒤에 면허를 받게 된다. 면허로 인해 종사할 수 있는 업무범위는 생각보다 넓지만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하면 깊게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행위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학교에서 배운 만큼만 종사한다면 물론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임상병리사라면 병리사의 모든 일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명분으로 모든 부서를 다 근무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작은 병원도 아니라 기가 찰 노릇이다. 대한임상병리사협회에서는 이 부분에 있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이 이곳에서는 아무리 직원들이 '이건 아닙니다.'라고 목소리를 내어도 의미가 없다. 

반면에 무능력해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두 번째 부류는 기존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되어 있다. 동료들과 상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느낀다.

 업무에 있어서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분명 어떠한 부분에서만큼은 배울 점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업무 범위에 대한 경계를 하고 전문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있지 않을까? 무분별한 부서이동은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크고 작은 의료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미 자잘한 사고들은 일어나고 있다. 충분하지 않은 교육시간으로 일을 시키는 것도 머리가 마비될 것 같은데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직원을 탓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만 아니면 돼.' 혹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역동성과 창의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답게 일하고 싶고 실수 없이 차분하게 임하고 싶으며 다른 직종만큼의 혜택은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간호사는 힘들면 힘들다고 목소리를 내고 부조리함을 드러내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괴로울수록 숨깁니다."

"우리는 남 좋은 일은 다하고 우리는 힘들지."

 입사 후 4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주변 선배들과 동료에게 괴롭힘에 대한 힘듦을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들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나를 괴롭히는 상사에게 걸리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그 상사로 인해 힘들어 퇴사한 선배의 자리에 신입이 들어왔고 그 신입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절대 안 걸려야지."

 분명 그 사람으로 인해 여러 명이 퇴사를 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정말 퇴사를 걱정하던 시점에 부서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지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그 상사를 다시 만날 위기에 처했고 함께 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괴롭히기 시작했다. 용기 내어 장을 찾아갔지만 피해자인 나에게 "네가 먼저 그 괴롭혔던 선배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라."라고 말을 하셨다. 피해자가 후배이기에 선배인 가해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알겠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죽고 싶었고 매일을 울던 그때가 생각났었다. 함께 근무했던 간호사선생님의 도움으로 노조에 상담을 요청했었지만 결국 더 심한 괴롭힘만 돌아왔다. 새로운 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10일도 안된 시점에서 장은 나를 찾아와 "너는 너밖에 모르고 이기적이다. 니 일밖에 안 한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라고 말을 했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노조에서도 금지하는 업무 외의 시간, 그리고 휴가 때 출근하여 업무를 배워가며 적응하려 한 나에게 내 일 밖에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었던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나를 다독여주셨고 어떻게 그 지옥의 시간은 지나갔다. 하지만 그때 들은 말이 있다.

"선생님들이 모른 척 하래." 

 물론 나를 위해 목소리 내준 동료들도 있었지만 결국 피해자만 죄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직 이곳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과정이겠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노조가 있어도 의미가 없는 직종은 분명 존재한다. 물론 기관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노조가 아무리 나를 도와주려 애를 쓴다 하더라도 같은 영역에 있는 같은 이름을 쓰는 자가 이걸 막으면 무용지물이다. 서로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더 괴롭히는 곳도 있다.

 

 지속적으로 업무 범위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조용히 표출했고 대외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보세요. 혼자는 힘들지만 분명 바꿔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교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만 이곳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른 척 해"라고 말하는 곳이다. 내 의견을 표출하는 즉시 좌천될 수 있는 곳이다. 

"위에서 하라 하면 어쩔 수가 없어요. 하라 하면 해야 해요. 아무리 잘못됐다고 생각한들 바꿀 수 있어요? 없잖아요. 그냥 즐기면서 일하면 됩니다."

 첫 번째 부류가 위협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인력이 임금을 적게 받다 보면 언제 기존 체계를 전복하려 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능력해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두 번째 부류는 기존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되어 있다. 동료들과 상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느낀다.

 부조리함을 부조리하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협이 되는 사람이다. 


그 일은 내가 힘의 관계가 지배하거나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의 선배이기 때문에 후배에게는 나의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말해도 안 들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누군가의 후배이기 때문에 선배에게는 나의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 한들 건방져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이 쌓이면 은연중에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조화로움을 위해 약자는 가해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있고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가해자들을 격려하는 집단에서 나는 과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빨간 머리(약자)를 야단치고 금발머리(가해자)를 총애했으면 애초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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