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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Mar 01. 2024

10번 아르키나, 운명의 수레바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대중은 내가 개미가 아닌 다른 소재로 소설을 쓰는 걸 허용할까? 앞으로도 계속 한 가지 소재만 다루길 바라면 어떡하지?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라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자전적 에세이에 실린 문장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미>를 집필했고 힘겹게 출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차기작을 출판하였지만 그것은 실패하고 개미의 3부작인 <개미혁명>을 집필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산다고 하듯 나의 목표 또한 "현 직업으로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직업이 싫어서가 아니라 태어났는데 이 일만 평생 하다가 전신에 노화가 온 상태로 은퇴를 하여 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더럭 겁이 난다. 요즘 은퇴하는 선생님들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정도면 됐다. 학과 학생 시절 포함 10년이면 꽤 충분했다. 이 정도면 됐으니 다음 삶의 길을 찾아보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생각만 대략 5년째 하고 있다. '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은 있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항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을 한다. 사실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 직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항상 갖고 있다. 일에 대한 애정은 보통의 임상병리사들보다는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마는 단지 이 일로 은퇴한 뒤에는 삶을 돌아봤을 때 그저 아쉬움만 가득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기들과 함께 몇 년 만에 지도교수님을 뵈러 학교를 방문했었다. 교수님께서 너무 소식이 없던 한 친구에게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셨고 친구는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정말 아무 일이 없었네요? 크고 작은 사건도 없었고, 제가 지향했던 물 흐르듯 조용히 흘러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내가 아는 지인 중에 가장 직업만족도가 높은 이 친구는 자신의 삶의 흐름에 이 직업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저 무사히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친구가 신기했다. "조용히"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나와는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진 친구이다. 난 성향이 별난 탓인지 참을성이 부족한 탓인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노력에 비해 자잘한 사건사고를 자주 겪는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니까 나의 개성이 적당히 들어갔고 그 개성 덕에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여행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여행 후기를 많이 썼다. 하지만 내가 봐도 나만 뿌듯할 뿐 쉽게 읽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전히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나는 얼마 전에 내가 집필한 책을 출판했다. 주제는 벗어나고 싶은 이 직업에 대한 내용이고 이야기를 나의 성장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타깃 독자는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을 했고 나의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지인들에게 읽어달라며 부탁까지 했다. 아쉬운 부분은 많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대학교시절을 포함하여 13년 가까이 몸담은 분야이고 예상하는 독자층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서인지 아쉬운 부분은 많지만 생각보다는 성공적으로 적을 수 있었다.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기에 출판사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출판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목적을 달성했지만 생각했던 주제가 아니었다. 결국은 '직업'이었다.

 이렇다 잣대는 없지만 내가 그래도 일반적인 종사자들보다는 열심히 일에 임했기 때문에 직업을 글로써 소개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결국은 언젠가 벗어나야지 하고 발버둥은 치지만 결국 깊이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 주제가 아니면 누구나 쉽게 혹은 재밌게 읽은 수 있는 글을 쓰질 못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매우 하찮고 조금 다른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매일이 고민이다. 직업이 환멸날 정도로 싫은 것이 아닌 오히려 재미있기 때문에 벗어나질 못한다.

 과연 나에게는 다른 소재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허락될까? 남은 밥벌이 삶이 한 가지 소재로만 유지되면 어떡하지? 


 10번 아르키나인 운명의 수레바퀴가 쉼 없이 돌기 때문일까. 우리는 삶의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 느닷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상승할 때만큼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삶에서 보장된 건 아무것도 없음을 가르쳐 준다.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꽤 귀여운 주제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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