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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May 21. 2024

삶이 무거울 때는 뒤를 보자.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별 거 아니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하기 어려운 혹독한 현실 속에서

영화 속 주인공도 악역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고 녹다운되기 일보 직전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반전을 일으킨다.

회심의 한 방

주인공은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다.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나?


우리에게도 

이쯤이면 이제 상대가 방심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쯤이면 이제 편하게 숨 돌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해피엔딩을 바란 건 아니었어도,

잠시 그 정도의 여유는 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경의 양과 쉼은

예상했던 각본과 많이 달랐다.

어쩌면 

우리가 출연한 이 각본은,

일일드라마가 아닌 대하드라마를 그려내려는 게 아닐까?


롤러코스터도 약간의 스릴, 짧은 안도, 다시 엄청나게 극적이지만 짧은 스릴, 긴 안도로 이어지는데

아이와 내가 탄 롤러코스터는

스릴에 비해 안도의 시기가 너무 야박하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이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6년 내내 일반학교에서 사랑과 양보도 받았지만, 이방인을 보는 듯한 뜨거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졸업을 하며

어쩌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또래 아이들과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아쉬움과 막막함이 있었지만,

피해를 주면 안 되고, 조금 더 그들 같이(?)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거라는 홀가분함이 있었다.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너답게,

우리는 그렇게 더 솔직하고 당당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기대감은, 한 달 반짝.

첫 달은 긴장해서였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예상했던 핑크빛이 다가왔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보란 듯이 학교에서 밑바닥을 쳤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형태로, 

이곳이 얼마나 자신에게 힘들고 낯선 곳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가장 혐오스럽고, 불편한 상황을 기꺼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정심을 찾았다.


도대체 아이를 힘들 게 하는 건 무엇일까?

알아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고.

물어보려 했지만 아이는 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가 가장 좋아했던 기억들만 대답했다.

여행. 롯데월드. 제주도. 해운대. 리조트.... 


답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문제를 나는 추적하고 추리해야 했다.

아이가 버틴 날은 조금씩 희망을 쌓았고,

아이가 힘든 날은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아이의 상황은 나에게 불안을 주었고,

그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나는 잔뜩 예민해졌다.

예민함은 가장 가까운 남편과 가족들을 찌르고 나서야 조금 무뎌졌다.


내가 가장 좌절하는 상황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다.


그냥 바람이 부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시간에 맡기고 운명에 맡기는 것들은 

어쩌면 가장 심각해져서 어찌할 수 없을 때에 하는 자기 위안일 것이다.


나는 그대로 시간과 운명에 맡길 수 없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었고,

악화된 아이의 문제행동은 두면 둘수록 단단해졌다.

빨리, 제대로 막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들이었다.


오늘 밤,

아이는 기분 좋게 저녁을 보내고는 곤히 잠에 들었다.

무슨 꿈을 꿀까?

그리고 내일은 무슨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까?

곤히 자는 모습이 더 안쓰럽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할 때,

위도, 아래도 아닌 뒤를 돌아본다.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들.

수많은 노력들과 버텨왔던 시간들.

고마운 사람들.

아팠던 상처들.

모든 것들이 뒤에 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언젠가 이번의 위기도 그렇게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많은 고비들을 그러했듯이 우리는 또 한 번 넘길 것이다.

그렇게 되뇌면서,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려다 삼키지 못하고 탁 걸렸다.


솔직히, 

우리는 여전히 힘들다.

대신 걸어줄 수 없는 너의 길. 그 길 따라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참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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