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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Oct 11. 2024

그리고 그 후,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되는 이야기

머릿속이나 마음에 글이 말랐다고 생각한 지 10개월이 넘게 지났다. 그간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나 영상 업로드 위주의 SNS에 푹 빠져있었기도 했고, 다른 취미(특히 달리기)에 몰두하느라 워낙 밖으로 나돌기도 한 탓이었다. 게다가 올 한해는 책을 역대급으로 못 읽고, 전시회도 역대급으로 못 간 해이기도 하다. 최근 3~4년간 연평균 50권 남짓의 책은 읽어왔는데, 올해는(아직 몇달이 남긴 했지만) 채 서른 권도 읽지 못했다. 다른 플랫폼에 독서 기록을 해오던 것이 끊긴 것도 그때문이다. 한 마디로 도파민에 푹 절어 산 2024년이었다.


한편으로 올해는 새로운 세계에 발들인 해이기도 하다. 달리기를 취미로 삼아온 지도 약 6년, 크루러닝이라는 형태를 통해 달리기가 혼자 하는 활동만이 아니라는 걸 안 지가 약 2년. 예전 글에서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다 좌절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 후, 정확히는 올 초봄에, 결국 풀코스 마라토너가 되었다. 물론 기록은 무척 처참하고, 함께 달려주신 페이스메이커가 아니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일이었지만. 아주 작고 가벼운, 그러나 일렁이는 성취감을 잠깐 가져보았다.


그 후에는 왜인지 수도권 바깥으로 혼자 많이 돌아다녔다. 달리기를 취미로 삼아 수도권, 특히 서울의 갖은 달리기 대회들을 다녀본 지가 6년째인데, 대부분 서울 권역에서 치러지는 대회들의 코스나 분위기가 워낙 비슷비슷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좀 물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유행이 끝나고 다시 오프라인 대회들이 성행하면서, 또 여러 매체에서 (희한하게도) 러닝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참가자 수 때문에 대부분의 대회가 번잡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수도권 밖 대회들에 덜컥 혼자 참가신청을 해봤다. 뚜벅이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거나, 대회 주최측에서 대절해준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대회장까지 갔다. 지역 대회들은 수도권 대회에 비해 규모가 작고 분위기가 비교적 정겹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수도권 대회들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고,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많다. 아이스박스 가득 두부김치와 편육을 준비해 팀 부스마다 차려두고, 대회가 끝난 뒤에 막걸리와 함께 드시며 흥겨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러너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 덕분에 단양이 산과 강으로 푸르게 둘러싸인 멋진 곳임을, 공주의 깐밤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제천의 금수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청평호가 얼마나 맑고 화사한지를 알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답고 다정한 지역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가 다 배울 것들이지 않은가.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 이렇게나 많고,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래서 가끔 막연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약하게 설레기도 한다. 아직 볼 것이, 할 일이 많구나, 나는.


9월 말에는 3일 정도, 전북의 장수라는 지역에 있었다. 장수트레일레이스라는 꽤 큰 규모의 트레일러닝 대회에 스태프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회 주최자인 김영록 대표는 나보다 썩 어려보이는 외모의, 자그마하지만 눈빛이 꽤 형형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태프들을 상대로 대회의 각종 지원 분야에 대한 교육을 하는 내내, 장수를 한국의 샤모니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거듭 했다. 얼핏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처럼 무모해 보이는, 그러나 상당한 열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함께 스태프로 간 친구 부부와, 3일간 각각 20km, 38km, 70km, 100km의 다양한 산악 코스를 달리는 선수들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는 일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선수들, 운영진들, 봉사자들, 사진 및 영상 작가들... 앞서 나는 다양한 지역 대회들의 참가자가 되면서 잠시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장수에선 그 기묘한 느낌이 극에 달했다. 100km 출전 선수들의 레이스 막바지를 지원하는 체크포인트에서 특히 그랬다.


아침 7시에 시작한 100km 레이스의 제한시간은 24시간이 훌쩍 넘는다. 한 마디로 밤을 새워 달린다는 뜻이다. 친구 부부와 나는 피니시를 5.6km 정도 남겨놓은 체크포인트에서, 새벽 늦게까지 달리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새벽별이 하얗게 점점이 빛나는 하늘 아래서, 체크포인트 부스에 켜진 조명과 멀리서 흔들리는 선수들의 헤드랜턴 불빛 말고는 어떤 빛도 없는 먹먹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피난민처럼 지친 선수들을 기다렸다.


웃프게도, 이따금 눈물을 삼키느라 혼났다. 어둠 속에서 혼자, 또는 두서넛이서, 터벅터벅 걷거달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차마 헤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선수는 졸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자리를 깔아주면 5분만 자고 일어나겠다고 했다. 우리는 알람을 맞춰놓고 5분간 조용히 기다렸다. 멀리서 짖는 들개 소리도 잦아들어 완벽한 고요였다. 그 여선수는 채 5분이 되기도 전에 부스스 몸을 일으켜 다시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체크포인트 주변이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멀어지는 선수의 등 뒤에 대고 조용조용 힘내시라고, 파이팅이라고 말해주는 것 말고는 뭘 더 할 수도 없었다.   


먹먹하고 막막하고, 한편으로 물결처럼 채워지는 숱한 감정들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올라온 후, 새삼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머리 위에 두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원래도 트레일러닝이라는 형태의 달리기에 조금씩 관심을 갖던 차였는데, 장수트레일레이스 이후에는 그 관심이 훨씬 커졌다. 내가 발 딛는 땅과 내가 머리 위에 둔 하늘을, 내가 바라보는 무수한 나뭇잎들을, 내 몸으로 좀 더 온전하게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언젠가, 사람들의 삶이, 또는 사람들이, 모두 이야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소설가가 된 이유, 소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야기가 삶이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매일같이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중이다.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울고 웃으며, 한줄 한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표지의 책들이 된다. 천 명의 삶이 모여 천 권의 책이 된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들이 반드시 매 순간 극적이고 스케일이 클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은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 순간 조금씩 변주되기 때문이다. 로드러닝에서 트레일러닝으로, 수도권 대회에서 지역 대회로 조금씩 변주되는 나의 달리기가 그렇듯, 고소한 핸드드립 커피에서 말린 꽃잎과 찻잎을 향긋하게 우리는 차로 입맛이 옮겨가듯. 나는 여전히 형편없는 기록과 형편없는 자세로 달리기를 하는 중이고, 어느 날은 서울의 잠수교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느 날은 대전의 엑스포공원에서 혼자 달린다.


이 모든, 끊임없이 변주되는 일상들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얼핏 사소하고 볼품없어보이는 이 이야기들, 그러나 내 숨이 붙어있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될 이 이야기들이, 실은,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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