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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 into Action Nov 11. 2023

귀한 만남을 찾아 떠나는 여행

또다시 무모한 결정, 그리고 또다른 인생의 챕터

서울 회현역 주변 작은 원룸을 정리하며 지난 7년을 돌이켜 본다. 


미국에서 싱글맘이라는 씩씩한 이름을 달고 아들, 딸을 에 데리고 18년을 살다가 둘 다 대학을 간다고 집을 떠났다. 잠잘 시간을 줄여 매일을 살아 내던 내 인생에 텅 빈 시간이 찾아왔다. Empty Nest(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대학을 멀리로 가고 텅 빈 공간을 "빈 둥지"라고 표현한다. )에서 잘 적응을 하는 가 싶었는데 어느 가을날 덩그러니 혼자 빨래를 개다가 한국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17년 1월 나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전엔 내 나라였지만 이젠 독수리 여권을 가진 대한민국 동포의 자격으로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서 나의 한국 생활은 시작되었다. 




한국은 18년 전 내가 떠날 때의 한국과는 정말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건축 대학원에 다니던 1998년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학위수여 후 외국에 나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18년 후  한국인들은 본국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게 높아져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늘었고 외국인 거주자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인 가족이 없이 아주 자유로운 몸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니 젊은이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또 내 앞에 우연히 던져진 일들을 정말 재미나게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태권도 방송의 리포터로 세계 각국의 태권도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했고 논현동에서 원테이블 스테이크 하우스도 운영을 해 보았다. 


프랑스어 클럽의 인연으로 주한 프랑스 대사관 바스티유날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내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난 우연한 기회에 바티칸 대사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문화 어드바이저역할을 하면서 난 한국 주재 대사관이 어떤 곳인지 또 대사님들의 활동에 관해 배울 기회가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아티아 대사관이 서울에 새로이 개설되면서 난 초대 대사님을 도와 4년 동안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정치, 문화 비즈니스 연계를 위해 주된 업무를 맡게 되었다. 


2020-2022년 코로나 기간 중 자가격리를 8번이나 해가며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크로아티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동안 한국- 크로아티아-미국을 오가며 특별하고 재미난 삶의 경험을 하였다. 그 사이 아들이 결혼을 하고 2020년 2월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코로나가 막 넘어오려던 그때 손주가 태어났다. 어렵사리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며 삶의 거리를 핑계로 손주를 맘속에만 두고 살았었는데 어느 날 이제 막 네 살이 되어가는 손주가 더 크기 전에 좀 더 가까이 지낼 마음이 없느냐고 아들이 선뜻 제안을 해 왔다. 전화기 반대쪽에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에 나는  못 이기는 척 함께 하고 싶다고 얼른 승낙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7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이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생활용품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온 2017년 이후 지난 7년간 이 세상은 많은 아픔이 있었고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지금은 20년 전보다 경험도 더 많고 경제적으로도 어쩜 그때보다 더 안정적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다시 미국으로 간다는데 맘이 무겁다. 영어도 못하던 내가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어린아이들 둘을 데리고 전세금 빼서 미국을 갈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지금 돌아보니 그저 아찔할 뿐이다.  23년 전 젊은 나의 용기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지난 23년간 엄마, 아빠의 역할도 하고 이민자의 역할도 하면서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내가 한국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나의 삶의 가장 중앙에는 항상 아들, 딸이 있었고 나의 역할의 중심은 언제나 교육이 우선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쌓아온 사회적 경험과 삶의 연륜을 손자와 나누기 위해 난 다시 미국행을 너무나 쉽게 결정했다. 


오십이 넘는 나이에 나라를 바꾸는 나의 또 한 번의 무모한 결정에 얼마나 길고 어려운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어려움 속에 항상 귀한 만남이 있었고 소설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난 또다시 나의 인생 이야깃거리를 찾아 나그넷길을 떠나는 것이다. 처음 미국행에는 아이들이 어려 내게 주어진 책임도 많아서 과거를 돌아볼 시간도 고국을 그리워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국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 하지만 손주와 나눌 매일매일 대화가 그 어떤 어려움도 또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따뜻하게 나를 감쌀 담요역할을 해 줄 것이다. 세살박이와의 대화 너무나 기다려진다. 


재영야, 기다려, 할미가 갈게~ 


#교육 #미국 #할머니 #무모한결정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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