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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헛간지기 Jun 24. 2023

설마-감히!-도랐?-붕괴-무자비

'터뷸런스'가 이보다 심할까... 불륜을 알게 됐을 때 겪었던 감정들

감히 언급하기 죄송스럽지만

시한부 삶이나 암 선고를 받은 이들의 감정은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부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시리라.


그에 비견되는, 배우자의 불륜에 임했던 나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설마-감히!-도랐(돌았)?-붕괴-무자비


'설마'

에이, 설마

가끔 어긋나는 알리바이, 무심코 흘리는 낯선 사람의 이름, 호주머니에서 발견되는 카드 영수증, 외모에 대한 집착, 뭐 이런 거 때문에?

에이... 그래도 설마...

'설마'로 눈감아주고 한편으로는 동요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바보.


하지만 '설마'가 점차 확신으로 바뀌고 심증에 물증이 더해지면서 드는 감정은

'감히!'

감히 네가? 어떻게 감히?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니 주제에?  

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네가? 얻다 대고 감히? 언감생심!

아직은 반신반의... 하지만 서서히 나는 불안해지고...


빼박인 증거들, 결정적으로 본인의 자백, 사건을 축소하려고 안간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태도...

너 정말 "도랐?"

제정신 맞아?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안 들킬 줄 알았어?

들킬 줄은 몰랐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몰랐을까.


'붕괴'

신뢰는 무너지고 멘털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자괴감의 토네이도가 몰려와 나의 루틴은 허공으로 치솟아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리는 터질듯하지만 아무런 의욕 없이 좀비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차라리 누군가가 속시원히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가정의 붕괴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굳세게 버텨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무자비'

과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눈감아주며 통 큰 자비를 베풀었던 것을 정말 뼈저리게 후회한다.

유야무야 봉합될 수 있었던 것에는 또 다른 '설마'가 크게 기여를 했다.

설마.. 이 번이 처음이겠지.

과연? 수많은 입질 끝에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처럼 그간 어떤 일이 수면 아래 있었는지

어쩌면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진리는 여기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부부의 신의를 저버린 것은 그 여하를 막론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종이 쪼가리에 각서라도 쓰고 제삼자를 증인으로 세워서라도 완벽하게 매듭을 져야 한다.


우리 속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영어로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이라고 한다.

한 땀 꿰맬 것을 안 하면 나중에 아홉 번을 꿰매야 한다는 뜻.

한 땀을 무시했다간 어쩌면 꿰맬 수 없을만큼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


'무자비', 명심하시라, 절대 자비로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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