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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운 총량의 법칙

by 비터스윗

15년 전쯤인가. 적당히 대충 그 언저리.

대형마트 행운권 추첨 이벤트에서 같은 성당 어느 자매님이 드럼 세탁기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난 평생 행운권 추첨으로 다리미 하나 타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며칠 후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 집 형제님(남편)이 세탁기 당첨된 것을 좋아하긴커녕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형제님이 펀드 매니저인가 그랬는데 이(딴) 걸로 운을 다 써버리면 어떡하냐고 그랬다는 거다. 직접 들은 바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자매님이 늘 기죽어 살았던 모습에 비춰보면 그럴듯한 소문이었다.


형제님은 Y대를 나왔고, 성당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는 데다가 그분 딸이 울 큰 애 짝꿍이어서 그분 가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얘기를 듣고 나니 어이가 없고 통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분이 생각하는 운은 뭘까? 투자로 초대박 터뜨리는 건가?

그 후에 그 가족도 이사를 갔고 나도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분이 진짜 대박을 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진짜 운은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걸까. 그러면 걸어가다 떨어진 지폐도 주우면 안 되겠네. 자동판매기 아래 떨어진 동전도 주우면 안 되겠네.


언젠가부터 ㅇㅇ 총량의 법칙이란 말들을 여기저기서 쓴다. 질량, 에너지 이런 단어가 들어가는 문구인데, 여기에 행복, 인생 이런 단어를 넣어서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누구나 같은 양을 경험하거나 소비하거나 누린다는 뜻으로 쓰는가 보다.

유년기에 고생을 하면 중 장년기 이후 행복이 도래할 것이라고 위로를 하거나 반대로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면 노년에 다소 고생을 할 수도 있다고 환기를 시키는, 평범한 사람들끼리의 가벼운 얘깃거리다.

결국 인생은 새옹지마. 지금 불행하다고, 시련을 겪는다 해도 침잠하지 말고 훗날을 생각하며 버티어 내라는 이야기리라.


요즘 운이란 게 무엇인지, 운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혼자 또 잡생각을 하다가

'그럼 난? 나의 운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하고 자문해 봤다.

물론 난 예전에는 운이 무척 좋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 형제님 말마따나 난 이미 내 운을 다 써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5개월째. 글 쓰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번 브런치북 소개글에 썼듯 "인생 선배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글도 써보고 "학자연하며 존경받을 만한 글" 도 비슷하게 써봤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읽어도 별 재미가 없다.

정돈되고 올곧은 척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찌해서인지 자꾸 글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적당히 아름답고 적당히 바람직하고 적당히 폭신폭신한 그러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밋밋한 글들.

그래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하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이미 늙어가는 중인 중년 여성, 백수, 심정적으로는 이미 독신, 출가한 두 자녀를 둔 엄마.

영화, 시, 올드 팝, 카푸치노, 두꺼운 모직 코트, 컨버스 운동화, 에코백을 좋아함.

여기 더해 내겐 조금 독특한 이력이 있다. 사실 그걸 메인 재료로 쓸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브런치북은 거울 치료의 일환이 될 것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온 건지 내가 나를 좀 들여다봐야겠다.

이런 이야기에 과연 독자들이 공감을 하실지 두렵지만 말이다. (반면 궁금하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남 업신여기지 않았고 배신하지 않았고 까불대면서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울컥하면서 순간순간 억울(?)하다는 감정도 올라온다.

미래가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고 현실이 꼴 보기 싫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예서 말 수는 없지.


내가 가진 '독특한 이력' 소개를 마지막으로 프롤로그를 끝낼까 한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모범생이었냐고? 아니다.

지는 걸 못 참는 아이였냐고? 전혀.

결코 비범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을 포기한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단지 시험에 최적화된 사람(늘 강조하는 부분)이어서 운 좋게 시험 한 번에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나의 평생 운을 다 썼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뭐 하는데?"

위에 썼다. 백수다. 뭐 대단한 데 다니다가 은퇴한 것도 아니다.

다니던 직장을 지난 연말 그만둔 후 실업급여도 끝났고 비상금도 떨어져 가는 중이다.

"에이, 또 감성팔이하려고 빌드업하는구나."

아니다. 난 유머와 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싶다. 독자 여러분들도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1화에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내 학벌의 8할은 어머니 덕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까지 쭉 이어진 엄마의 교육열은 거꾸로 타는 보일러 보다도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됐다.

지칠 줄 몰랐던 폭주 기관차 같았던 어머니 덕에 난 인생 최대의 스펙을 스무 살에 완성했다.

그리고 나의 효도는 서울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실상 완결됐다.

(개인 사정으로 2화는 9일 화요일에 발행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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