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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미 Aug 11. 2023

'와,랑마켓', 어린이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가치쓰제이(복지관에 입사하고 처음 진행했던 주민모임이자 주민 협동조합. 지역에서 유일한 제로웨이스트 가게이자 비건 카페를 운영하고 있음)에서 열리는 쓰레기 없는 장터  ‘와,랑마켓’에서 가꿈 봉사단을 초대했습니다. 마침 가꿈 기획회의에서도 지역 행사에 부스로 참여해 어린이 이웃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에 행사에 온 어린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사하는 날에 단원들도 모두 참여가 가능해 즐겁게 준비해 보기로 했습니다. 


“종이접기. 진짜 잘 날아가는 종이비행기 접기 어때? 비행기도 꾸미면 좋을 것 같아.” 


어떤 부스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송현이 아이디어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도 좋지만, 무엇보다 단원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활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현의 아이디어에 다람과 이수가 재밌을 것 같다며 ‘진짜 잘 나는’ 종이비행기 접기에 열정을 보였습니다. 

종이비행기 접기와 이전 기획회의에서 나왔던 그림책 읽기까지 더해 인원을 나눠 두 가지 활동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가꿈의 적극적인 준비에 가치쓰제이에서는 디자인 회사로 쓰고 있는 2층 ‘빛나는 가게’ 공간을 모두 내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소박한 동네 행사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종이를 접고 책을 읽는 풍경을 생각만 해도 정겹습니다. 



“연습 중이야! 내가 제일 멋진 비행기를 접어야지!” 


다람이 이면지로 적은 접은 여러 개의 종이비행기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우와 벌써 연습을 하다니. 나도 행사 때 쓸 그림책 얼른 골라야겠다.”        


그림책 읽기 활동을 맡게 된 소영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각자 어린이 시절에 읽었던 그림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집에 있는 그림책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면지를 재활용한 종이비행기, 내가 가지고 있던 그림책, 색연필 한 자루도 가지고 있던 것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예산 없이 소박하게 진행하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송현아, 동화책 읽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부탁해!” 


“오늘 도서관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활동하는데, 해보고 알려줄게!” 


그림책 활동을 맡은 송현과 소영이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부스에 초대한 어린이 손님이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어느덧 행사가 일주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송현과 소영이 그림책을 고르고 읽는 연습을 한다는 소식에 혜진과 함께 우민이네 가게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단원들이 고마웠습니다. 


“송현이 진짜 그림책 잘 읽더라. 역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달라.”


카페에 모이기 전에 송현과 소영이 미리 만나 그림책을 고르고 연습을 했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천천히 읽어야겠더라. 그리고 글이 끝나고 난 뒤에 그림을 잠깐 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그림책 활동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자연스럽게 일상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우민이 맛있게 만든 크로플과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나왔습니다. 맛있는 디저트 앞에서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회사 다니기 싫다. 또 출근이라니.”


“모두 다 마음속에 사직서 하나는 품고 살지.”


“우민이네 양파 밭에서 일할 때는 회사 그만두지 말고 열심히 다녀야지, 생각했는데 그 마음 딱 일주일 가더라.”


세 시쯤에 만나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차가운 커피 잔에 맺힌 물방울이 테이블에 흘러내렸습니다. 서로 비슷한 일을 하는 소영과 혜진이 서로 공감하기도 했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힘들었던 기억과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등받이와 가까웠던 몸이 점점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가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좁혀지는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7월 8일, ‘와,랑마켓’ 행사 날이 다가왔습니다. 가치쓰제이에서 가꿈에게 2층 공간을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행사 하루 전날 빛나는 가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하니와 함께 2층의 거실 공간에는 긴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종이비행기 접기 활동을 준비했고, 책상이 있던 방에는 그림책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물건을 치우고 노란색 부드러운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지난 4월에 복지관 행사에서 썼었던 자투리 천을 활용한 가랜드를 가져와 거실 천장을 가로지르게 설치했습니다. 버려지는 그림책을 재활용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그림을 붙여 어린이 손님을 환대하고 가랜드에도 종이 모빌을 달아 따뜻하고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다 꾸며진 공간에 올라온 어른들이 “꼭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 주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조금 더 행복한 나, 조금 더 다정한 우리. 청소년 봉사단 ‘가꿈’이 준비한 어린이 세계로 초대합니다. 1. 세상에서 제일 멋진 종이비행기 2. 마음을 키우는 그림책을 읽어드려요> 1층에서 지나가는 어린이와 가족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간판을 설치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 아침에 가치쓰제이에서 며칠을 걸려 만든 ‘와,랑마켓’ 천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가치쓰제이 마당에는 ‘쓸모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복지관 클린하이킹 봉사단이 마을에서 에코백과 텀블러, 종이 쇼핑백을 순환할 수 있는 부스와 딱정벌레를 관찰할 수 있는 부스가 텐트로 설치되었습니다. 1층 가치쓰제이에는 복지관 재활용 가게인 나눔공간이 여름 물놀이 용품과 여름 의류를 판매하고 업사이클링 가게인 ‘구이농’에서 천막으로 만든 가방, 자투리 천으로 만든 옷을 판매했습니다. 다랑농업협동조합에서 생산한 토종 벼와 농산물, 튤립 백 만들기 활동, 로컬 푸드를 활용한 비건 음식, 주변 농부들이 생산한 작물을 조금씩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는 ‘제철한줌’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단원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어린이 이웃을 기다리고 있었고, 저는 1층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에게 2층 행사 내용을 안내했습니다. 두 살 남짓 어린아이를 안고, 네 살 여자아이와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2층 어린이 세계에 오셨습니다. 네 살 여자아이와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종이비행기 활동을, 어린아이와 어머니는 그림책 활동 공간에 오셨습니다. 한 명, 두 명 어린이가 올라오더니 2층 공간이 어린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활동을 하는 어린이도 있었고, 부모님은 1층 행사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 얼굴을 그린 거야? 고마워!”


큰 행사장의 북적이는 부스가 아니라 소박하게 진행하는 행사다 보니 얼른 활동을 끝내기보다는 아이들이 오래 머물며 단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느긋하게 그림을 그리며 종이비행기를 꾸몄습니다. 비행기를 다 접고 나면 남은 종이에 다른 종이접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자아이들이 단원들의 얼굴을 그려 선물로 주거나 종이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어 서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비싸고 번듯한 준비물 없어도 소박하지만 더 풍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쉴 새 없이 쫑알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활동하는 소영에게 힘들지 않으니 물으니 재미있다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기운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미소야, 우리 이번엔 이렇게 접어볼까요?”


혜진은 비행기에 아이들 이름을 적어 이름을 잊지 않고 부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니 더 친근해진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접고도 한참 동안 2층에 머물며 어울렸습니다. 


“자, 이제 나가보자!” 


한껏 상기된 얼굴인 남자아이들 몇 명과 우민, 다람, 하니가 각자 종이비행기를 손에 들고 1층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가치쓰제이 골목길에서 저마다 힘껏 종이비행기를 날렸습니다. 우민의 종이비행기가 몇 번이고 가장 멀리 날았습니다. 


“아! 아깝다!”


계속 져서 풀이 죽을법한데도 아이들은 오히려 더 힘을 내 종이비행기를 다시 접고 또 날렸습니다. 2층과 1층을 계속 오르내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우민아, 좀 봐주지.”


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지는 않을까, 우민에게 슬쩍 얘기했습니다.  


“진심으로 해야 더 재밌지.”


종이비행기에 진심인 어른과 아이들이 어울려 골목길 하늘에 몇 번이나 정성스럽게 접은 종이비행기를 쏘아 올렸습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민의 종이비행기보다 자기가 날린 비행기가 더 멀리 날아갔을 때 장마철 비가 그치고 구름 뒤에 숨었던 해가 나온 것처럼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대단하다! 오늘 종이접기 왕이야.”


“어떻게 접었는지 알려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종이비행기를 또 접었습니다. 왁자지껄한 종이비행기 활동을 사진으로 남기며 그림책 활동을 하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포근한 돗자리가 깔려있어 어린아이들이 편안한 자세로 뒹굴며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복지관 작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송현이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온마음을 다해 열심히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도 송현의 옆에 꼭 붙어서 책이 다 끝날 때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조용한가 싶더니 곧 그림책 공간도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다람과 하니, 송현과 여자 아이 두 명이 작은 그림책을 나눠 읽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한 줄씩 읽기도 하고 한 장씩 읽기도 하며 웃었습니다. 정겹고  즐거운 풍경이었습니다. 



활동이 끝난 후 단원들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실천 기록을 보여주고 난 후라서 그런지 단원들의 소감도 더 진지해졌습니다. 


우민 – 아이들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무언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가꿈 덕분에 아이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 동화책 읽어주기를 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책 읽은 것이 꽤나 부끄럽다는 것도 알았고, 활동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지 몰라 난처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어린 날에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모든 활동들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소영 – 평소에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오랜만에 아이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 이름이 헷갈리기도 하고 혹여나 내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특별한 일 없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뿌듯했다. 대학시절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서 좋았다. 좋은 일도 하고, 좋은 에너지도 많이 얻어서 행복했다! 


다람 –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봉사활동 모임의 일원으로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편한 이모(?)쯤으로 다가가려고 했는데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서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행사를 통해 종이접기 고수 어린이를 만났고, 종이비행기에 진심인 어린이를 만났다. 가꿈 친구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동화책을 한 줄씩 또는 한 장씩 돌아가면서 읽었고, 아이들과 함께해서 내가 더 즐거움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혜진 – 나누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은 활동이었다. 확실히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어른들과 함께하는 것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작고 여린 마음들이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게 될까 조심스러웠고,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나도 일일 선생님 역할에 적응하게 되면서 여유를 가지며 아이들의 속도를 기다리는 법을 체득했고, 마음을 연 아이가 눈을 마주치며 웃는 모습을 보니 한동안 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 잡념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웃었고, 고작 하루 본 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애정을 준 아이들과 함께하며 행복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송현 –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더니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내 작은 노력으로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이런 유대감이 오랜만이라 마음속이 간질간질했다. 이런 마음 또한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않고 잘 간직해야겠다. 


하니 - ‘봉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종이비행기 접기도, 그림책 읽기도 오랜만에 하는 활동이라 나부터 즐겁게 할 수 있어 좋았다.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데 가꿈 친구들이 있어서 많은 의지가 되고 아주 즐거웠다. 가꿈 덕분에 평소라면 만날 일 없었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하루를 건강하게 불태웠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을 정도로 우리가 즐거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 것 같아 뿌듯했다. 행사를 한 장소는 내가 근무하는 곳이라 아주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이 장소가 생동감이 넘쳤던 것은 처음인 것 같아 새롭고 즐거웠다! 


‘와,랑마켓’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종이 접기와 그림책 활동을 하며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어린이의 행복한 기운을 잔뜩 받았습니다. 낮은 자세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단원들에게서 어린이를 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비싸고 좋은 만들기 키트, 최신 유행의 만화 캐릭터가 있는 활동이 아니더라도 이면지 종이와 집에 있던 그림책으로도 즐겁고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오히려 키트 만들기 활동 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무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초대해 준 가치쓰제이 선생님들과 즐거운 에너지를 전파한 가꿈 단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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