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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미 Oct 27. 2023

포카치아로 마음을 전해요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밀양강변을 걸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가끔 모여 동네와 마을을 살펴보고 가꾸는 ‘가꿈’ 봉사단의 다섯 번째 활동은 평소 제빵을 취미로 두고 있는 다람의 재능을 빌려 제빵 활동을 계획했습니다.


복지관에 있는 오븐과 제빵 도구들을 미리 살펴보고 단원들에게 활동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기획 회의에서 다들 기대가 많았던 활동이었습니다. 제빵활동은 ‘가꿈’ 뿐만 아니라 이전에 함께했던 복지관에서 조직했던 봉사 동아리, 학교나 부녀회 같은 다른 단체에서도 인기가 많은 활동입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대부분 빵을 만드는 사람이 빵을 받는 사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는 활동보다 내가 내 이웃, 가족, 친척, 친구, 주변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제빵 활동에서 만든 빵을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전달하기도 하지만, 내가 평소에 고마운 마음이 있는 이웃에게 전달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함께 만들 빵은 ‘포카치아’로 이탈리아 전통 식사용 빵입니다. 포카치아는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른 짭짤한 빵으로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공정은 간단하지만 발효하는 시간이 제법 걸려 토요일 이른 아침 복지관 식당에 모였습니다. 이번 활동에는 기획자인 다람과 하니, 소영, 송현, 혜진, 이수 그리고 게스트 단원으로 이수의 언니인 이현까지 일곱 명이 함께했습니다.



밀가루에 소금, 설탕, 이스트를 계량하고 따뜻한 물을 넣어 반죽했습니다. 끈적끈적하고 말랑말랑한 반죽을 만지니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수제비 해주셨을 때 만져보고는 처음 밀가루 만져보는 것 같아.”


“생각보다 어려운데.”


각자 반죽이 담긴 커다란 그릇을 품에 안고 끈적이는 밀가루와 씨름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며 활동하는 다람도, 포카치아를 처음 만들어보는 단원도 새롭고 즐거운 활동이었습니다.


반죽을 하는 중간 중간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의 발효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뒷정리를 하고도 남는 시간에는 복지관 작은 도서관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이수와 이수의 웨딩 사진을 직접 찍어줬던 이현의 이야기, 새로운 직장을 구한 혜진의 이야기, 지난 달 가꿈 활동에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소영의 근황 이야기 등등 읽던 책을 덮었다 들었다 하며 긴 발효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마지막 발가 끝나고 오븐에 각자 정성스럽게 만든 포카치아 반죽을 넣었습니다. 이현이 집에서 가져온 말린 토마토와 바질 페스토가 더해져 더 풍성한 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발효 시간은 길었지만 오븐에 굽는 시간은 15분 내외로 금방 끝났습니다.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퍼졌습니다. 키가 큰 다람이 3층짜리 데크 오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집에서 자주 빵을 구워봤지만 누군가에게 알려주면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 반죽을 살펴봐준 다람이 참 고마웠습니다.


긴 발효 시간으로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갓 나온 빵의 끄트머리를 서로 나눠먹었습니다. 그 날 갓 나온 포카치아의 바삭하고 짭짤한 맛은 아마 오래토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나눠줄 빵과 이웃에게 나눠줄 빵, 단원들이 점심 식사로 먹을 빵을 나누었습니다. 뜨거운 빵이 식혀지는 동안 이웃에게 전할 빵에 편지를 썼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할머니, 하니입니다. 포카치아라는 빵을 굽게 되어 전해드려요. 샌드위치 해 드시면 더 맛있어요! 바로 드시지 않을 거면 냉동해뒀다가 드세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추석에 봬요!’


‘내가 구웠다. 포카치아! 맛있게 먹어. 맛 없어도 맛있는 척 해!’


‘엄마아빠께, 처음으로 만들어본 빵이라 엄마아빠께 맛보여주고 싶었어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코치님, 포카치아라는 빵을 구웠는데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소스에 찍어 먹거나 샌드위치 만들어 드세요! 항상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회도 파이팅이예요!’



평소 고마웠던 사람, 할머니, 부모님, 친구, 운동 코치님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만든 사람도 즐겁고, 직접 만든 빵과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받은 이웃에게도 따뜻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준비했던 치즈와 양상추, 토마토를 겻들이고 이현이 집에서 가져온 소스와 잼들로 풍성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모두 배가 고팠는지 샌드위치를 푸짐하게 만들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문화센터는 어떤 기술을 익히거나 지식을 습득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겁니다. 복지관은 같은 관심으로 모여 활동하며 지식을 얻거나 기술을 배우는 가운데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 뜻이 있습니다. 복지관은 이웃 동아리 활동으로 비슷한 관심이 있는 이들을 맺어줍니다. 함께 그 주제를 이루고 누리게 거듭니다. 그 가운데 우정이 싹트고 인정이 자랍니다. 문화센터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니 어떤 주제든 남을 가르칠 수준이 되는 이에게 알맞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복지관 이웃 동아리 활동은 비용이 없거나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 하는 것으로 이웃을 섬깁니다. 그 속에서 자존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보상이라면 둘레 사람의 인정, 칭찬, 감사입니다. 이것이 어울려 사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비용이 드는 일도 있습니다. 이때는 지혜롭게 나눠 감당합니다. ‘재능’이라 하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거창해 보입니다. 부담스럽습니다. 재능으로 돕는다고 하면 이웃과 함께하는 일에 쉽게 나서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웃과 무언가 함께하려면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 사이에서 나누거나 거드는 일을 ‘기부’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오가는 정을 ‘기부했다’, ‘기부 받았다’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고 싶습니다. 자연스러운 사람살이를 바랍니다. 「복지관 지역복지 공부노트」 (‘이웃 동아리 활동과 문화센터의 차이’, 김세진, 구슬꿰는실, 2020)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전문 강사를 초빙하고 시설 좋은 곳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화분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 우산 만들기 등등 여러 만들기 활동에서는 주민이 주인이 되지 않고 만드는 활동과 강사님이 주인이 됩니다. 그런 활동은 이웃동아리 활동보다는 문화센터의 활동에 더 가깝습니다. ‘가꿈’ 동아리에서는 단원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로 주어진 시설을 활용해 소박하지만 주민이 주인이 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활동에 들어간 복지관 예산은 5만 원 남짓이며 5월부터 가꿈 동아리에 사용한 예산을 다 포함해도 10만 원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독거노인, 밑반찬 대상자, 결식아동 받는 대상이 있는 활동보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으로 내 이웃과 가족, 친구, 친척 등 주변 사람을 살피고 생각할 수 있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만든 빵을 받은 이웃의 하루가 따뜻해지고 그 마음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이웃 간의 정이 생동하길 소망합니다.


하니 – 내가 포카치아를 만들다니! 다람과 혜미, 가꿈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제빵을 했다. 반죽을 할 때는 다른 친구들의 것보다 잘 부풀지 않아서 실망과 걱정을 했지만 굽고 나니 충분히 예쁘고 맛있게 나와 뿌듯했다. 발효를 시키는 동안 기분 좋은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시간을 들여 만들다보니 애착이 생겨 점점 반죽과 빵이 귀여워보였다. 파는 빵에도 뒤지지 않는 것 같아 나눌 때도 행복하고 뿌듯했다. 함께하지 못한 멤버 형우와도 나눌 수 있어서 기뻤고, 우리 가족들도 너무 맛있다며 앞으로도 집에서 포카치아를 구워 먹자고 하셨다. 다음에 집에서 빵을 구워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소영 – 평소에 제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다람과 혜미 덕분에 처음으로 제빵도 해보고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 집에서 재료를 챙겨와 준 이현 덕분에 포카치아의 풍미가 더 좋아져서 고마웠다. 포카치아가 오븐을 막 나왔을 때 가꿈 친구들과 끝 부분을 나눠 먹었던게 제일 맛있어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갓 구운 포카치아로 샌드위치는 못 만들어 먹어 아쉬웠지만 복지관 프로그램과 부모님, 친구에게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이번 기회에 빵을 만드는 행복과 나누는 행복을 많이 느껴서 학원도 알아봤다! 근데 폐업해서 아쉬웠다. 다람이 알려준 레시피로 집에서 다시 만들어봐야겠다. 이번 활동도 너무 좋았어!


이현 – 평소 만들어보고 싶었던 포카치아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나누기 위해 구워 보아서 즐겁고 행복했어. 다람이의 쉽고 간단한 레시피 너무 좋았어! 또 대형 오븐에서 고온에 빠르게 구워진 갓 나온 빵은 진짜 집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다 같이 잘라먹던 꼬다리(?)가 또 생각나네.


이수 – 살면서 베이킹에 대해 관심을 단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나에게 정말 충격(?)을 안겨준 활동이었다. 내가 제빵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니. 살면서 ‘이건 나랑 안 맞아.’, ‘나는 이런 거 못해.’라는 생각에 갇혀 많은 즐거움을 놓치고 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만큼 만드는 기쁨도 비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드디어 경험으로 알게 되어 기쁘다. 예쁘게 부풀어 오른 귀여운 밀가루 덩어리를 만지면서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이 빵을 먹은 사람도 나의 행복을 가져갔길 바란다. 다음에 또 시간과 마음을 담아 빵을 만들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번 활동을 성공리에 이끌어준 다람씨과 혜미 그리고 이현이에게 감사를!


송현 – 내가 빵을 만들다니? 근데 성공까지 하다니? 다람의 재능과 이현이 덕에 맛있게 만들어진 빵 만큼 얻은 것이 많은 하루였다. 만드는 내내 너무 즐거웠고 공들여 만들며 넣은 정 만큼 받은 사람들도 다들 맛있게 먹어주어 행복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혜진 – 각자 관심사가 다른 친구들이 행복을 나눈다는 목적으로 모여 자신의 세계를 나누고 서로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것 같다. 제빵이 멋있어보였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란 마음에 막상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친구들 덕분에 제빵을 하게 되었고 운이 좋아 결과물도 잘 나온 덕에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게 되었다. 만드는 동안 빵에만 집중하게 되고 몽글몽글한 반죽의 촉감과 밀가루 냄새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 것 같다. 노고의 성과가 바로바로 나와 성취감이 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행복이 느껴졌다. 내 빵을 먹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람 – 혼자서만 쫌쫌따리 빵을 만들어보다가 함께 만들다니. 긴 발효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친구들이 지루해 하지 않을지, 빵이 잘 만들어질지,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걱정할 것도 없이 빵은 완성이 잘 되었다. 맛도 제법 있었다. 혼자 만들 때보다 함께 하니 즐거웠고 지인들에게 선물해주는 기쁨도 느꼈다.


5월에 우민이네 카페에 모여 활동을 계획했고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습니다. 어느새 다음 달에 마지막 활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혜진과 하니가 내년에도 가꿈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책모임과 그림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송현도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가꿈 활동에는 참여하고 있습니다. 10월 마지막 활동이 끝나면 11월에 다 함께 모여 활동했던 날을 돌아보고 서로에게 감사와 칭찬이 오고 가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활동을 계획하고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걱정했을 다람과 집에서 다른 재료를 내어준 이현이 고맙습니다. 덕분에 동아리 단원들이 새로운 경험과 따뜻한 추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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