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미 Oct 13. 2023

그 해 여름, 단장면 표충사 계곡에서(2)

다 함께 모이는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활동을 기획하고 사전 답사까지 다녀온 혜진이 독감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혜진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잘 세워준 덕분에 혜진이 없어도 활동을 취소하지 않고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8월 활동에는 하니와 다람, 소영과 이수 4명이 함께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복지관에 모여 소풍 가는 듯이 다 함께 표충사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얘들아 출발 잘 했어? 갑자기 감기 기운이 있어서 혹시나 코로나나 독감 일까봐 못 가게 되었어.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활동에 기대 많이 했었는데 많이 아쉽고 미안해! 다들 즐겁게 잘 다녀와!” 


“혜진아, 안 그래도 방금 소식 들었어. 열심히 준비했는데 많이 아쉽겠다. 몸 관리 잘 하고 다음 활동 때 만나!”


미안하고 아쉬워하는 혜진에게 이수가 위로해주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5월 첫 기획회의를 할 때보다 더 많이 친해지고 관계가 깊어진 것 같았습니다. 10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수, 회사에 인사이동으로 정신없는 소영과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와 오늘 활동을 연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지니 시원한 계곡과 높고 풀은 산들이 보였습니다.  계곡에는 아침시간인데도 피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관광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챙겨 계곡 돌길을 따라 강 상류로 이동했습니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쓰레기들이 계곡 풀숲과 돌 사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계곡을 중간에 두고 둘, 셋으로 나눠 함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한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쓰레기 찾기에 집중했습니다. 




가벼웠던 쓰레기봉투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계곡 풀 숲 깊은 곳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려다 어린 고라니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사람이 거의 없던 이른 아침에 물을 마시러 계곡에 내려왔다가 점점 사람들이 많아져 풀 속에 숨어있었나 봅니다. 고라니가 있던 바로 앞까지 다가갔었는데도 얼마나 숨죽이며 가만히 있었던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고라니를 만난 우리도, 우리를 만난 고라니도 서로 놀랐습니다. 놀란 고라니가 피서객들이 놀고 있는 계곡을 빠르게 가로질러 더 깊은 숲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물가에 놀고 있던 사람이 놀라 넘어지기도 하고 다칠까봐 얼른 아이를 안아 올린 부모님도 보였습니다. 


반려동물과 계곡에 놀러갔던 사람을 비난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도 놀고 있는데 흐르는 계곡물에 동물의 오물이나 털이 있어서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계곡은 사람들만의 피서지가 아닙니다.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사는 야생 동물들의 귀한 쉼터이기도 합니다. 어린 고라니가 사람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고라니를 바로 옆에서 본 이수가 걱정하며 쓰레기를 마저 주웠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쓰레기가 많았습니다. 과자봉지, 깨진 유리병, 플라스틱 병, 찢어진 비닐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계곡 한 가운데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쳤던 통발과 그물이 녹슬어있기도 했습니다. 장갑을 끼고 온 힘으로 잡아당겨도 무거운 돌 밑에 깔려있어 꺼내기 힘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쓰레기 진짜 많다.”


“맞아. 자세히 보니까 너무 많아.”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등에 짊어지고 계곡을 걸었습니다. 


“더운데 물 한 잔 마셔요.”


“귀한 일 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여기 쓰레기 제가 주워줄게요.”


피서객들 사이로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는 우리를 보고 응원해주는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내어주신 분도 계시고, 고맙다 인사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수의 슬리퍼 끈이 떨어졌는데 옆에서 보시곤 고쳐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줍는데, 나중에 쓰레기 잘 가져가시겠지?”


“그래도 잘 한다고 얘기해주시니까 기분 좋다.”   



     


한 시간 정도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 하나와 작은 쓰레기봉투 세 개가 가득 찼습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관광지에서 두부 요리로 유명한 식당 앞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며 이수가 싸온 단호박을 나눠먹었습니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맑은 계곡을 그냥 떠나기 아쉬워 물놀이를 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열심히 자연을 돌봤으니 충분히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이수와 소영은 다리 밑 그늘 좋은 곳에 누워 낮잠을 누렸고, 하니와 다람과 셋이서 튜브 하나에 의지해 시원한 물에 떠다녔습니다. 오전까지 흐린 날씨가 계속 되었는데 물놀이를 시작하니 해가 쨍쨍해지고 맑아졌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튜브 하나를 둘러쌓고 셋이서 물에 동동 떠다니며 웃고 즐거웠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8월 활동이 끝나고 하니, 다람, 소영, 이수에게 짧은 소감을 부탁했습니다. 소감을 읽으니 점점 함께 하는 활동이 좋아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니 – 이번 가꿈 활동은 정말 즐겁고 뿌듯했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 자체도 좋은 일인데,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음! 적어도 우리와 만난 분들은 쓰레기를 좀 더 신경 써서 치웠을 것 같아서 두 배로 뿌듯하다. 그리고 밀양 사람이지만 표충사 계곡은 처음 들어가 봤는데, 물이 너무 깨끗하고 시원하고 좋았음! 오랜만에 물놀이하니까 정말 재밌더라! 이런 기회를 만들고 답사까지 해가면서 준비해 준 혜미, 혜진 너무 고마워. 


다람 – 길을 걷거나 할 때 보이는 쓰레기를 보면서 항상 주워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줍게 되었다. 혼자서는 못 했을 것 같은데 가꿈 친구들이랑 함께여서 할 수 `있었다. 계곡을 청소하는 분들이 있어서 매일 쓰레기를 줍지만 늘 쓰레기가 나오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다짐한다. 덜 쓰고 오래 쓰고 잘 버리자!


소영 – 계곡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았고 종류도 다양했다. 다들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 살짝 회의감도 들긴 했지만 그래도 고생한다, 시원한 물 한잔 건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힘내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쓰레기를 잘 챙겨 가시겠지만, 우리의 활동으로 인해 그 날 계곡에 오셨던 모든 분들이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여서 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계곡에 가서 좋았다. 이번 달도 뿌듯했다! 


이수 – 예전부터 막연히 ‘와~ 좋은 활동이네.’라고 생각만 해 보았던 플로깅을 처음 해보았다. 가꿈을 통해서 이렇게 먼 계획으로만 미뤄 왔던 일을 해보게 되어 기쁘다.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아 놀랐지만 이리저리 쓰레기 찾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지구를 위해 작게나마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비록 마음먹고 실천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짧은 시간의 봉사활동이 어쩌면 또 나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움직임을 만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가꿈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동네의 관광지 환경을 살펴보고 이웃과 함께 자연을 누리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먼 곳에 가지 않아도 동네를 살펴보면 어울리고 누리기 좋은 곳이 많습니다. 쓰레기를 줍거나 생태를 살펴보며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시간도 즐거웠습니다. 마을과 동네를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해 여름, 단장면 표충사 계곡에서(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