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며 살아가는 마음에게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료교사와 밝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뭔가 기분 좋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불편함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회의 테이블, 늘 그 자리에 앉던 사람이 오늘은 애매한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주보는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 행동 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지? 혹시 나한테 서운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지만 마음은 벌써 그의 감정을 추측하고 있었다. ‘혹시 내가 뭘 실수했나? 말실수라도 했나?’ 갑자기 괜히 불안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참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따라왔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 앉는 위치 하나에도 마음이 출렁이는 나. 어쩌면 나는 감정의 파동을 읽어내는 안테나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세워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반응에 대해 아내는 차분히 말해주었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금세 흘려보내고 잊는다고. 누군가는 불편함을 알아채지만 외면하고 지나친다고. 반면에 나는 그런 미세한 감정을 즉시 감지하고, 그것이 혹시 나 때문일까 스스로 반성하는 유형이다. 그것은 분명한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소모하게도 한다.
사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학교 행사 일정이 나에게 공유되지 않았을 때 ‘무시당한 걸까?’ 하고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지만, 곧 스스로를 다잡는다. ‘나도 예전에 놓친 적이 있잖아.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을 전환하고, 필요한 말은 차분히 전한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만, 그 사이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를 향해 아내가 조용히 건넨 말이 있었다. "당신은 참 애쓰고 사는 사람이야." 그 말이 오늘따라 더 깊이 다가왔다. 맞다. 나는 애를 쓰며 산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분위기에, 상황에 너무 많이 반응하고, 그것이 마치 내 책임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나의 책임은 아니다. 그도, 나도, 우리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조금 놓아보려 한다. 내 안의 불안함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고 말해주려 한다. "그의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닐 수도 있어." 그 한마디가,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작은 출구가 되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