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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ao Kim Jun 01. 2024

에스파-Armageddon

정교한 밸런스가 돋보이는 정과 반의 아마겟돈, 그래서 오히려 아쉽기도

'Aamageddon'은 지구 종말에 펼쳐지는 선과 악의 대결을 뜻한다. 사실 에스파, 나아가 SM이 만들어 낸 멀티유니버스 세계관의 정의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그래서 에스파의 기념비적인 1집 앨범의 제목이자 동명의 타이틀 곡인 '아마겟돈'이 이들의 세계관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다만 선과 악의 밸런스처럼 이 앨범은 정확히 반으로 나눠진 밸런스를 자랑함은 분명하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특별한 인트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공개돼 큰 인기를 끈 'Supernova'가 1집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을 장식했다. 에스파의 이름을 각인시켜주었던 'Next Level'의 명성에 감히 도전장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었다. 뉴진스의 등장으로 인해 현재 K-POP 걸그룹의 음악은 가장 트렌디한 비트를 바탕으로 레트로 감성을 더한 이지 리스닝 스타일이 유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꿋꿋이 SMP라는 특유의 스타일과 SMCU라는 특유의 세계관을 고수해 오던 에스파가 돌고 돌아 다시 한번 정상을 꽤찬 것이다. 나는 솔로에 양자역학에 빠진 출연자가 나오고, 물리학자를 다룬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우주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친이과적인 세상이 아닌가. 대놓고 멀티버스를 노래하며 '쇳소리'로 표현되는 전자음을 덕지덕지 빠른 비트에 녹여낸 난해함이 오히려 힙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1집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이기에 앨범 전체의 색깔과 분위기를 대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슈퍼노바의 기세를 이어 더블 타이틀곡인 'Armageddon'이 뒤를 잇는다. 이글거리는 베이스 리프와 힙합 드럼 비트가 만들어 내는 그루브는 'Next Level'의 그것과 비슷하다. 후렴구에서 대놓고 느껴지는 아랍풍의 편곡과 멜로디는 'Drama'를 연상케 한다. 'Next Level'과 'Drama'의 신선한 조합이랄까.

'Armageddon'에서의 힙합 무드는 'Set the Tone'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층 더 강해진 비트와 랩이 귀에 때려 박히는 재미가 있다. 'Mine'에서 톤은 유지하되 완급 조절을 한번 해준 뒤 'Licorice'에서 변화를 준다. 이번엔 톤을 유지하되 매너가 변했다. 1번부터 4번 트랙까지 신스 베이스로 빚어낸 강렬함이 여기서부터 일렉트릭 기타로 대체된다. 똑같이 디스트를 잔뜩 먹인 사운드가 메인이지만 질감 자체가 달라졌다. 이에 따라 보컬과 랩도 한층 더 아날로그틱 해져 담백하다.

'BAHAMA'부터는 톤까지 바뀐다. 앨범 발매시기가 초여름임을 겨냥한 듯 산뜻하고 청량한 썸머송이 앨범의 분위기를 한 순간에 전복시킨다. 작년 발매한 'SPICY'가 f(x)의 'Hot Summer'의 공식을 차용했다면, 이 곡은 소녀시대의 'Lion Heart'의 공식을 받아들였다. 쏟아지는 태양으로 아스팔트를 달구기보다, 출렁이는 파도로 모래사장을 적신다. 브리지에서 에스파 특유의 전자음과 랩이 한번 쏟아지긴 하지만 그마저 밀물 때 해변을 깊게 강타했다 이내 물러가는 파도다.

채팅의 설렘과 즐거움을 노래한 'Long Chat(#♥)'과 내면의 두려움과 성장을 노래한 'Prologue'는 가사의 내용만큼이나 소녀스러운 감성을 전한다. 듣기 편안한 미디엄 템포에, 멤버들의 보컬이 돋보이는 달콤한 멜로디가 보아, 소녀시대, 레드 벨벳 같은 SM 선배들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파가 가요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SMP여전사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SM의 걸그룹'이긴 하니까...

'Live My Life'는 놀랍게도 팝 펑크를 차용했다. 경쾌한 밴드 세션의 편곡에 가사마저도 '나 다움'을 호소하는 것이 영락없는 팝 펑크다. 심지어 뮤비조차 다중우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에스파가 밴드라는 콘셉트다. 21세기초 에이브릴 라빈, Sum41 등의 뮤지션을 필두로 흥했던 팝 펑크는 2020년에 접어들면서 다시 주목받는 장르가 됐다. 비록 지금은 그 인기가 다시 사그라든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에스파의 정규 앨범이 원래는 작년에 나올 예정이었으나, 어른들의 사정으로 이제야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대미는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가 어우러진 발라드 곡 '목소리(Melody)'가 장식한다. 제목처럼 멤버들의 보컬과 감성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이다. 

(한 앨범 안에서도 변화 무쌍한 모습. 팔색조 매력 그 잡채)

수록곡 하나하나 뜯어보면 훌륭하다. 뭐 하나 버릴 트랙이 없다. 알차다. 에스파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 지를, 그래서 에스파가 가진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잘 담아냈다. 다중 우주를 주제로 각 우주에 존재하는 '나'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콘셉트를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했다. 

안타까운 것은 곡에서 곡으로 이어지는 호흡은 자연스러우나 정신 차리고 보면 외딴곳에 와있는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앨범이 반으로 쪼게 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1~5번 트랙까지는 '에스파'하면 떠올려지는 묵직한 베이스와 날카로운 전자음, 타이트한 비트로 강렬함을 선사하는 전형적인 SMP 스타일이다. 6~10번 트랙은 멜로디와 보컬이 강조돼 듣기 좋은, 즉 대중 친화적인 곡들이다. 한 앨범에서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메탈 밴드도 발라드 곡 수록하고, 발라드 가수도 댄스 음악을 선보인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을 구성하고 완급 조절을 위해 쓰일 때 특별해지고 빛을 발하게 된다

정확히 50대 50 비율로 나뉜 이번 앨범은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하나의 앨범이라기보다 2개의 EP를 합친 것 같다. 사실 에스파가 지금까지 발매한 미니 앨범을 보면 모두 비슷한 구성이긴 하다. 지극히 에스파스러운 타이틀 곡과 그와 비슷한 톤 앤 매너를 가진 곡, 그리고 대중적인 곡과 발라드 곡 등이 골고루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하던 정규 1집 앨범이다. 에스파가 얼마나 표현력이 좋은지를 자랑하기보다, 이번 앨범으로 무엇을 더 강조해서 표현할지 명확히 했더라면 더 의미 있는 앨범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족

(*1. 근데 이미 나오자마자 국내고 해외고 차트를 다 씹어 먹고 있다. 아주 훌륭한 앨범인 것이다. 까놓고 뭐 앨범이 별거냐. 좋은 노래들 있으면 된 거지 뭐...)

(*2. 그리고 진짜 노래 하나하나 너무 좋다. 중독성 오진다.)

(*3.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BAHAMA'를 추천하고 싶다. 여름 노래 명가 SM답게 고막에 바다를 선물한다.)


사진 출처: SM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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