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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Oct 13. 2023

시를 그리는 소년 2

나무인간 62

* 2023 서울시립 난지창작스튜디오 도록에 실릴 텍스트의 본문 중 일부입니다.

시를 그리는 소년

시를 그리는 소년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畫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외계(外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 지성/ 2012    


 화가는 두 가지 전제에서 태어난다. 하나는 양팔이 없이 태어났다는 장애 혹은 불구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바람(wish)을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라는 것, 그 형태를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그리기 때문에 이해받기 또한 어렵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예술가의 초상은 아마도 낭만주의 시대와 모더니즘 시대의 저주받은 예술가의 초상을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불구와 그의 사회적 소외와 그의 구도적 자세는 모두 전형적인 예술가의 초상과 일치한다. 

 그의 시가 이런 예술가의 면모와 전혀 다른 위치로 진입하는 것은, 그가 그리려고 하는 것이 끝내 무엇인지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신을 향한 몸부림 때문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것이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김경주/ 외계 中)일 때 그것은 두 가지 시적 맥락을 동시에 함유하였다. 우선 하나는 그가 그리는 것은 결국 실재하지 않는 것, 그릴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고, 따라서 그의 예술 행위는 추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또 하나는 그림의 대상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를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를 그린다. 그것은 한때 살아 있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꽃이고 벽지이며 짓이겨 아무것도 아닌 고깃덩어리 바로 자신이다. 이미 없는 신체도 사체도 아닌 존재. 오랜 신화적 존재로서 낭만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정적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비로써 그의 정체성은 진부한 초상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옮겨진다.

 한성우의 시는 불가능성에 대한 추구이다.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림은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에 대한 그림라는 것, 그림은 시와 같이 결국 부재하는 언어에 대한 언어라는 것, 이 지점에서 한성우의 그림은 낭만적 포즈를 뛰어넘어 부재하는 언어에 대한 시적 퍼포먼스 차원에 도달한다. 보통 예술가가 어떤 대상에 대해 합목적적인 특성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대개 목적 있는 합목적성이며, 이는 우리가 그 대상에 특정한 욕구가 실현되어 있다고 판단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합목적성으로부터 욕구를 배제하고자 한 것이다. 감성적 경험의 주체는 자신의 반성을 직접적 목적이나 지정된 욕구를 향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명확한 개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드러나는 합목적성이란 전체의 특성이다. 바로 곁에 있는 서로 낯선 개별적인 부분들이 합성으로 현시되는 것이 아니다. 한성우의 전체는 그 안에서 모든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고 그럼으로써 또한 각각 다른 부분을 반영하면서 현존하는 하나의 형상을 향한다. 그렇게 그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형상(목적 없는 모든 합목적성)들이 캔버스 밖으로 이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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