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말 한마디

by 새벽

여학생이 추천받은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던 그때, 서점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비에 젖은 검은 코트를 살짝 털며, 그는 윤주를 향해 다가왔다.

“윤주 씨.”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윤주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에요. 무슨 일로?”

남자는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윤주에게 건넸다.


“이걸 전하고 싶었어요. 당신에게 힘이 되었으면 해서.”

윤주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낡은 책갈피와 함께 한 장의 쪽지가 있었다.


“힘들 때, 마음을 붙잡아 줄 한마디가 있다면 그 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잃지 마세요, 그 빛을.”

윤주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그 사이, 여학생은 에세이 코너에서 책장을 넘기다 한 문장에 시선을 멈추었다.

“가장 어두운 밤도 끝나고, 결국 새벽은 온다.”

그 문장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는지, 여학생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사실, 요즘 너무 외로웠어요.”

여학생이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게 처음이라… 이게 좀 낯설기도 하고요.”

윤주는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런 감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과정이에요. 마음이 아플 때 혼자 견디는 건 정말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여기, 이 공간이 당신에게 작은 쉼터가 된다면 다행이에요.”


“네, 여기 와서 조금은 편해졌어요.”

여학생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아이는 윤주에게 밝게 인사하며 말했다.

“언니, 오늘도 책 읽어요?”

윤주는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오늘도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있단다.”


서점 안의 공기는 어느새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비가 멈추고, 노을빛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여학생은 책을 덮으며 윤주에게 말했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윤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든 돌아오세요. 여기선 당신이 혼자가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 안에는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씩 풀어내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윤주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말 한마디를 찾길.’

비 내리는 오후, 조용한 서점 안에서 시작된 작은 기적은 그렇게 천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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