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이 서서히 서점 안으로 스며들었다. 창가의 조명이 켜지며 은은한 불빛이 책 등 위를 부드럽게 감쌌다. 서가는 마치 오래된 기억을 간직한 듯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윤주는 아이에게 짧은 그림책을 건네며 책장 뒤편 작은 소파로 안내했다. 아이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잠시 고개를 숙여 윤주에게 작게 인사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아이가 여기 오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저도요. 아이가 책을 좋아해 줘서 기뻐요.”
윤주는 조용히 웃으며 다시 계산대 뒤로 돌아갔다. 고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책을 고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앉아 책을 펼쳤다. 누군가는 시집을,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를, 또 누군가는 오래된 소설책을.
그때, 한 남자가 서가 뒤편에서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윤주가 꺼낸 책갈피와 비슷한 모양의 낡은 종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눈빛엔 어떤 결심이 서려 있었다.
“혹시… 이 글귀, 윤주 씨가 쓴 건가요?”
윤주는 종이를 바라보곤 잠시 눈을 깜빡였다.
“아… 그건, 예전에 남겨둔 메모 중 하나예요. 어떻게 찾으셨어요?”
“이 책 속에 끼워져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지금 제 마음을 딱 짚어주는 말이더라고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사실 저, 이 도시에서 뭔가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중이에요. 그런데… 막상 발을 떼려니 좀 무서워지더라고요.”
윤주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은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증거 같아요. 그 감정이 꼭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가요…”
남자는 웃으며 책갈피를 조심스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이 말도 기억해도 될까요? ‘잃지 마세요, 그 빛을.’”
윤주는 따뜻하게 웃었다.
“물론이죠. 그건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했던 말이니까요.”
어느덧 서점 안엔 노란 불빛과 조용한 기척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말없이 책을 읽고, 아이는 윤주의 옆에서 조용히 그림을 색칠하고 있었다.
그 순간, 윤주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공간이, 잊히는 게 아니라 기억되는 장소가 되기를.”
밖에서는 빗물이 자취를 감추고, 노을이 저편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점은,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품은 채, 그렇게 조용히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