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작품에 몰입하며 일상의 무게를 잠시 잊고 있던 중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기분이 울적해졌다.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쓰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정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여전히 힘들지만 유난히 아득하게 느끼던 때 방영해 많은 위로를 받은 작품을 소개하고 이 글을 통해 또 한 번 위로받고자 한다.
꾸준히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풀어낼 내용이 머릿속에 명확히 정리되지 못해 브런치스토리에 적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영화 '너와 나'에 이어 드라마도 최신작을 다룰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작품은 홍보할 때부터 작품 초중반까지 줄곧 주인공 두 명이 혐오관계 (일명 혐관)에 놓여있었고 그것이 성인이 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아무리 봐도 학창 시절 추억에 가깝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다소 민망하기도 하고 '그땐 그랬지' 하며 웃을 수 있는 기억 말이다.
그렇기에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전형 중 일부로 보였다. 절대로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여자와 남자가 만나 결국에 사랑에 빠지는 오래된 공식은 아직도 여러 작품에서 널리 쓰인다.
중반 이후에는 정우의 의료 사고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며 자칫 느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전개에 긴장감을 더했다. 선배 민경민은 처음에는 평범한 주변인물 중 한 명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시청자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이면서 입체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코미디가 가미된 장면들은 좀 민망한 순간도 많았는데 박신혜, 박형식 두 배우 모두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냈기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2013년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각각 주연과 조연으로 함께 출연했던 두 사람이 주연으로 다시 만나 연인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시간이 그만큼 많이 흘렀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 사이에 많은 작품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 박형식 배우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측근으로 나오는 서브커플도 제 역할을 해냈다. 볼수록 두 배우의 연기와 인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대영 역의 윤박 배우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봤기에 반가웠다. 다소 눈치 없고 허술하지만 멋있는 부분도 있는 인물을 다채롭게 잘 표현했다. 홍란 역의 공성하 배우는 분명 익숙한 얼굴이지만 연기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걸크러쉬, 털털하면서도 솔직한(진실된) 모습으로 다른 인물들을 대하는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왔고 대영과는 다른 느낌으로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본방사수 할 때면 거의 매 회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 이런 표현을 하면 모순적이지만 몰입해서 보는 와중에도 문득 생각해 보면 와닿지 않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주요 인물들에게 번아웃, 의료소송, 한부모가정이라는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직, 그중에서도 의사이기에 현실이라면 다시 일어서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슬럼프가 왔다는 것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소 뻔한 장면과 대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힘이 들 땐 그런 것마저도 울림을 준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따뜻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웃음은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걸맞게 시청자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