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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지 Dec 22. 2023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겨울방학

기말고사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아이는 기독교 수련회에 가고 낮시간을 큰아이와 둘이 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아이들은 12월 초에도 잠시 집에 왔었지만 둘이서 며칠 동안 낮시간을 지내는 일은 대학원을 진학한 후로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이들은 모두 큰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운전할 일이 없어졌고 그런 이유로 자동차보험을 잠시 중지해 놓아서 나는 아이들이 겨울에 집에 있는 동안은 온전히 아이들의 기사가 되었다.

큰아이는 차를 마실 주전자를 추천해 준다고 하고 엄마에게 어울릴 차를 골라준다고 한다.

사내아이지만 어찌 이리 나와 코드가 잘 맞는지 우리는 외모도 취향도 닮아있다.


어릴 적 무섭기만 하던 친정아버지는 딸 다섯 중에 유독 내가 이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호랑이 같고 무섭고 칭찬이 잘 없으셨던 아버지가 내게 하신 외모칭찬은  다른 자매나 어머니에게도 오랫동안  기억될 정도로 특별한 일이기도 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내 얼굴은 아버지와 너무나 닮아있다.

큰아이가 나를 닮고 취향이 비슷해서 예쁘고 기특한 건 같은 이유일까?

내가 보아도 아버지를 닮은 내 얼굴. 내가 보아도 나를 닮은 큰아이얼굴.

그렇게만 생각하다가 작은아이가 여권을 잃어버려 증명사진을 다시 찍던 날 현상된 사진을 보고 나를 닮은 이마며, 콧대며, 얼굴형까지 웃는 미소까지 나를 닮은 것을 보고는 놀라움에 웃음 지었었다.

나를 닮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린 날의 나를 만난다. 소중하게 귀하게 귀한 손님처럼 아이들을 대해주고 싶다. 이젠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고 가끔씩 집으로 방문하는 아주 귀한 VIP손님.


아이들이 어릴 적 자주 다녔던 서점으로 헌책을 사러 가자는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수영강습에 늦지 않게 번갈아 도서관에 내려주었던 그 도서관에 도착했다.

어릴 적엔 책을 빌려 읽고 반납을 하던 동네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도 큰 규모의 도서관.


한 귀퉁이 헌책코너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큰아이는 로스쿨 교수님이 추천하신 추리소설을 찾아본다고 하고 나는 요리나 인테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는다.

손을 뻗어 책을 꺼내던 어렸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이젠 의논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 나의 든든한 조력자로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 아들은 두 손 가득 헌책을 사들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나온다.

얼굴이 닮은 거면 내면도 나를 많이 닮은 걸 텐데...


그럼 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올초 친한 동생으로 부터받은  독서모임권유에 선뜻 내키지도읺고 부담감이 있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눠야 되니까 꼭 책을 읽어야만 했다.

한국책을 살 수 있는 유통경로도 없고 만만한 아마존에서 찾을 수 있는 책들을 여러권째 읽어가면서 아이들이 나를 닮은 게 맞다는 걸 깨닫고 웃음이 났다.

책을 좋아하는 나였다니..

글을 쓰는 내가 되어있다니...

아이들은 글쓰기를 즐기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나를 쏙 빼닮았다.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큰아이가  좋아하는 목욕을  준비해 주고 나는 내려와 차를 내린다.

가끔씩 차를 마시며 아이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미국의 경제나 정치에 대해 듣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다.

나는 따끈한 차를 내리며 어떤 귀한 손님보다 귀한 손님을 마주하는 시간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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