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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9. 2023

숫자가 머릿속에서 동동 떠다닐때

다이어트와 숫자 강박은 항상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내 몸과 정신을 고작 하나의 판때기에 맡긴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스워지는 것 같다. 체중계에 쓰인 숫자는 마치 나를 다이어트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하나의 리모컨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서서히도 아니다. 휙, 하고 곧바로 나를 운동하게 독촉하고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먹게 만든다.


처음부터 내 몸의 성적표에 전전긍긍한 것은 아니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체중계 위에 올라섰을 때 나타난 63kg이라는 숫자는 '그래, 내가 그동안 많이 먹고 안 움직이긴 했지?' 하고 수긍하게 했다. 탈 다이어트의 세계에 들어온 지금, '많이 먹고', '안 움직인' 사실은 살을 빼야 할 이유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 세계를 자각하지 못한 채, 미디어와 사회가 짜놓은 프레임-날씬하면 건강한 사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 들어가야 했는가? 하고 물어본다면 이유는 없다. 우리는 왜 타인에게 건강한 사람으로 비쳐야 하는가? 실제로 나는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이어트와 자존감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하며 이를 끊어내는 것이 목표이다.


다시 체중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일단 체중을 잰 뒤 바로 '식단'이라는 것을 차려 먹기 시작했다. 숫자 뒤에 또 나는 숫자를 쟀다.


칼로리

지금도 가끔 나를 거슬리게 만드는 존재이다. 어쩌면 체중보다도 끈질기게 다이어터들의 강박을 수면 위로 이끄는 위험한 숫자라고도 생각한다.



다이어트 이전, 나는 칼로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과자를 먹을 때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뒤에 쓰인 포장지는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중학교 '보건' 시간이나 '기술과 가정' 시간에 시험공부를 위해 개념을 외운 것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성의 평균 섭취 칼로리는 2,000kcal 어쩌고, 신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 어쩌고. 19살까지 칼로리란 나에게 그런 먼지 같은 존재였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후 아무런 생각 없이 구글 검색창에 '다이어트 식단'이라는 6글자를 쳤다. 검색 결과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에 1,000kcal 먹기', '하루 800kcal 식단'. 칼로리를 적게 먹을수록 살은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다이어터들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칼로리 계산 앱을 통해 매 끼니마다 칼로리를 재기 시작했고, 첫 2달 동안은 1,000kcal 아래로 먹었다. 점심은 양상추, 고구마, 닭가슴살로 300kcal 정도를 채웠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주로 먹었기에 최대한 적게 다이어트의 세계에서는 '일반식'이라고 불리는 밥, 반찬, 찌개 같은 온전한 식사를 먹었다. 살은 처음에는 쭉쭉 잘 빠졌다. 63kg에서 2달 만에 56kg 정도까지 빠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 살 많이 빠졌다고 말해줬을 때 마음속에서는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가득 찼었다. 숨을 쉴 때 의지를 가지고 숨을 쉬지 않듯이 나에게 칼로리를 계산하는 행위는 무의식적인 행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고깃집을 갈 때도 똑같았다.


'돼지고기를 내가 한 200g 정도 먹었으니깐 칼로리는... 밥은 반만 먹으면 150kcal 정도 될 거고...'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니, 얼마나 내가 그동안 스스로를 전쟁터에 내놨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삶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공부가 잘 안된다거나 인간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야금야금 나의 정신세계는 오직 '다이어트'와 '체중 줄이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하루가 '칼로리'라는 존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삶의 주체성을 숫자로부터 빼앗긴 삶은 결코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하다.

모든 음식을 음식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숫자로 보는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56kg 이후로 1주일에 1kg 정도 빠지던 살이 정체하기 시작했다. 살을 더 빼보자는 욕심에 다시 인터넷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정체기 극복법'을 두드리니 이번에도 끝없는 결과들이 나왔다. 그중에 나를 반갑게 한 단어가 보였다. '치팅'. 하루 동안 무엇이든 마음껏 배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날. 새로운 단어가 나를 설레게 했고, 이후 이것은 나에게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칼날이 되고야 만다. 치팅, 폭식과 절식의 쳇바퀴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치팅하고 식단에 돌아가니 처음에는 활력도 생기고, 살도 더디지만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치팅 날에는 열량이라는칼로리라는 숫자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지만, 체중이라는 족쇄는 여전히 달고 있었다. 오후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다 먹은 후 바로 체중계에 올라가 체중을 확인한다. 2kg 정도 늘어났으면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때까지 하루 열량을칼로리를 1,200kcal로 제한해서 식사했다. 숫자는 점점 머리를 힘들게 만든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나만의 한계선을 만들어 한계선을 넘어가면 자책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감은 이내 폭식으로 터져 치팅 날이 아닌데도 그동안 못 먹었던 치킨이나 도넛, 크림빵들을 흡입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숫자로 치환하게 되면, 강박에 이르기 쉬워지는 것 같다. 몸무게가 50kg이 넘으면 삶이 무너질 것 같고, 1,200kcal를 넘어서 먹으면 돼지가 될 것 같고, 하루 운동 500kcal를 못 태우면 요요가 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즉,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왜 스스로 형벌을 주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인가? 열쇠는 나한테, 그리고 당신한테 달려 있다. 몸무게를 재지 않고, 음식 칼로리를 재지 않으면 우리의 시야는 훨씬 넓어진다. 오늘의 풍경, 먹은 음식의 맛과 식감,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나의 취미생활에 집중하게 된다. 삶은 전쟁터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고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숫자에서 벗어나라. 그것이 탈다이어터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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