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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필 Jul 06. 2023

[N 드라마] 타이탄(Titan) 시즌 4 리뷰

원작이 허락하는 상상력의 변주, 청소년 히어로 쉘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넷플릭스를 틀면 북미 지역에 살지 않아도 내가 볼 수 있고, 보고 싶어할 것 같은 드라마와 영화는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 론칭으로 인해 마블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모두 내려갔죠. 미디어 정키에게는 슬픈 소식이었어요. “넷플릭스 코리아, 너 진짜 장사 안 할래? 너 그러다 자음이 다 날아가서 ‘ㅔㅡ ㅣ ㅡ’가 되면 어쩌려고 다 내려?” 그러거나 말거나, 자본주의의 세계는 냉혹했죠. ‘시청 중인’ 목록에서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마블(Marvel) 드라마와 영화는 독자적인 세계선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지난 이야기’조차 설명하는 법이 없어요. 영화는 “너 이거 봤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그 사건을 알 때, 관객이 느낄 소외감은 어떻고요. 프랜차이즈 히어로 무비와 드라마의 세계는 더 냉혹합니다. 어른의 사정으로 마블과 디씨 모두에게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가 따로 있어요. 하지만 판매율이 제일 잘 나오고, 투자 대비 이익이 잘 나오는 건 아무래도 영화겠죠? 영화를 담당하는 총괄이나 대표가 너희 드라마 그만 만들어, 혹은 너희 드라마가 이번에 영화 설명 좀 해야 겠는데, 하면 드라마는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들의 기반이 코믹스, 즉 종이 만화책임에도 불구하고……. 넋두리는 여기까지, 



 

한참 볼거리를 찾던 중에 타이탄(DC Titans)을 접했어요. 한국의 코믹스 원작 팬들은 드라마로 나온 타이탄즈의 캐릭터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제임스 건 휘하 DC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로 청소년 히어로 팀이나 청소년 히어로를 제대로 다룰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임스 건이 총괄 제작자라면 안 만드는 게 더 이득 같아요. (영화는 재밌게 만들지만, 제임스 건은 트위터에서 소아성애 관련 트윗을 업로드한 뒤, 디즈니에서 잘렸어요.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죠? DC가 소아성애 의혹이 있는 제임스 건을 총괄 제작자로 임명했습니다. 안 타는 쓰레기 주워다 대표 자리에 앉히기? 아이들도 보는 히어로 영화 제작자로 소아성애자 감독 앉히기? 할리우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있는 걸 잘 만들어라, 소리가 나오죠. 그것도 거의 몇 년을 기다린 시리즈의 파이널 시즌입니다. (안타깝게도 타이탄은 시즌 4가 마지막입니다.) 

 타이탄의 첫 번째 시즌을 보며 저는 혼란스러웠다가 이내 적응했습니다. 제가 배트맨을 좋아하고, 심지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까지 모두 다 봤지만, 배트맨이 아닌 그의 영원한 조수, 로빈이 나와. 심지어 그는 배트맨과 고담에서 독립해서 살아. 아마, 타이탄에 입문한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지 않을까요? 물론 코믹스 리더들은 나이트윙(Nightwing) 이야기네? 좋아, 하고 틀었겠지만요. 영화에서 드라마를 거쳐 코믹스까지 입수한 저로써는 드라마 타이탄의 단점들조차 흥미로웠습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더 잘 즐길 수 있으니까요. 타이탄의 첫 장면은 딕 그레이슨이 아니라 레이첼 로스(Rachel Roth, AKA Raven)입니다. ‘플라잉 그레이슨’의 공연을 보다 그레이슨 부부가 사망하고, 어린 딕 그레이슨이 오열하는 동시에 소녀는 잠에서 깹니다. (저는 그래서 타이탄이 이 소녀의 성장 서사라고 봤습니다. 물론, 성장 서사에는 스승이 필요하죠.) 레이첼의 어머니는 다정하게 달래지만, 레이첼의 방문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다가 떨어집니다. (뉴 틴 타이탄즈에서도 레이븐이 위험에 대해 경고합니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지극히 어둡습니다. 지극히 어둡고 파란 조명을 사용합니다. 극 초반의 딕 그레이슨Dick Grayson (브렌튼 스웨이츠 역)은 디트로이트에서 형사로 일하며, 파트너도 두지 않습니다. 배트맨의 영향도 크고,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습니다. 초반 장면에서 그는 과감하게 ‘Fuck Batman’이라고 말하며 그의 아이덴티티를 과시하고, (타이탄 드라마 자체가 레이븐의 서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아이 캔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딕 그레이슨은 코믹스에서도 ‘탄탄한 엉덩이’로 다뤄지니 상의 탈의는 기본이죠. 타이탄의 첫 번째 시즌은 주조인공들을 소개합니다. 딕 그레이슨, 레이첼 로스, 가필드 비스트보이 로건, 코리안더, 제이슨 토드, 옛 동료 도나 트로이와 행크 그리고 도브까지. 시즌 1을 시청하면 그래도 인물 소개는 기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 코믹스처럼요. 



“소녀의 운명을 바꾸는 일”



 드라마 <타이탄>을 보며 느낀 감상입니다. 외계에서 왔지만 기억을 잃었고, 통제되지 않는 힘을 가진 타마란 공주, 코리안더는 레이븐을 죽이러 지구에 왔습니다. 타마란과 지구, 모든 은하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요. 도나, 딕, 코리안더 모두 코리안더의 우주선에서 예언서를 읽게 됩니다. 지구의 악마도 아닌 외계의 악마 트라이곤(Trigon), 그리고 그의 딸인 레이첼 로스와 인간 어머니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하지만 예언의 해석에는 늘 정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델포이 신전의 무녀가 한 말을 고스란히 믿을 수 있었던 영웅들은 없잖아요. 다 지나가야 알죠. 혹은 직접 운명을 바꾸거나. 신들이 지배하는 시대면 몰라도,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는 조금 다릅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손바닥을 그어 운명을 바꾸려고 했던 것처럼, 어린 영웅들은 의지를 관철시킵니다. <타이탄>의 어린 영웅들은 가정이나 가족을 잃었습니다. 딕 그레이슨과 코리안더조차 대디이슈나 마미이슈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그렇지만 전통적인 가족이나 가정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딕 그레이슨은 컨트롤프릭인 동업자, 배트맨에게서 벗어나 타워에 살게 되고, 코리안더는 타마란 행성에 돌아가 공주의 의무를 지지 않고 타이탄즈 곁에 남습니다. 레이첼 로스는 악마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도나 트로이는 인간과 영웅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가필드 로건은 타이탄이라는 새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균열이 일 때마다 나섭니다. 호랑이로 변할 수 있는 소년은 처음부터 권위를 좋아하지 않았죠. 이 인물들의 여정을 볼 때마다 쾌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레이첼은 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메이플 시럽 한 병이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고생한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가족의 일부가 된 레이첼은 타이탄즈와 함께 머무르는 걸 즐기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평범한 삶을 체험하고 싶어합니다. 어리니까요.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일상이 없겠어요. DC의 영웅들은 히어로가 ‘전업’이 아니라 그냥 낮에는 일반인, 밤에는 히어로거나 일반인과 히어로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인물에 가깝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타이탄 시즌 4에서는 타이탄즈의 아치 에너미인 ‘피의 교회’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시즌 1과 2에서 레이첼의 친부, 트라이곤을 무찌르고, 시즌 3에서는 구세대 히어로 배트맨의 숙적인 스케어크로우를 상대하여 고담을 수호하죠. 고담에서 메트로폴리스로 향합니다. 모든 걸 다 해결했다고 생각한 영웅들은 이내 렉스 루터의 죽음과 관련된 진상을 조사하게 됩니다. 시즌 1과 시즌 2 1화와 시즌 4는 기와 결을 맡고 있어요. 시즌 4에서 CG의 엉성함이 눈에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즌 4에서 새로운 적이 아닌 오랜 적이 등장하고, 타이탄즈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과는 다른 적을 상대하는 만큼 드라마의 분위기는 더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비하적 유머를 잃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 서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합니다. ‘탐정 코믹스’의 적들이 아닌 만큼, ‘피의 교회’ (세바스찬 블러드, 메이헴 수녀)를 상대하는 새 시즌의 색채는 어두운 붉은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B급 호러 무비를 감상하는 느낌이 나요. 적의 규모가 더 커지고, 시즌 1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진상이 밝혀지는 만큼, 타이탄즈에 속한 히어로 모두에게 고민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즌 1의 스토리가 시즌 4의 새 등장인물로 이어집니다. 레이첼을 죽이려 했지만 레이첼이 아닌 트라이곤을 무찌르기로 선택한 타이탄즈, 트라이곤의 다른 자식인 세바스찬 블러드(Sebastian Blood)의 삶과 죽음, 그리고 세바스찬 본인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언제나 또다른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까요. 그가 악마의 자식이라고 해서, 멸망의 원인이라고 해서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시즌 4의 타이탄들은 그들만의 선택을 합니다. 예언이 말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즉흥적으로 하기로 한 선택으로요. 모든 가능성들을 믿고 매달리다 스스로를 내던집니다. 언젠가는 꼭 스크린에서도 타이탄즈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타이탄즈 시리즈는 한 편의 청소년 성장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기에 넷플릭스에서 오늘 뭐 볼까? 하시는 분들과 DC 코믹스의 팬 여러분들은 꼭 <DC Titans>를 시청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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