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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망태

2024.05.21. 화

     

부지런한 박스 줍는 할아버지는 새벽일 마쳤다.

가지런하게 쌓인 할 일 다한 고것들이 나란히 나란히 포개져 꽁꽁 묶였다.

누가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벌떡 일어날 것 같이 단호하다.

분명 할아버지 성격도 각이 잡히고 바짝 날이 서 있을 것이다.

비둘기들이 땅으로 내려와 집단으로 시위다.

그 사이 엄지만 한 박새도 하나.

온밤을 흔들리며 태웠을 욕망의 부스러기들을 쪼고 있다.

이놈들아! 조심해.

고것에 맛 들이면 새로서의 삶도 쪽 나는 것이여.


학교 앞 구름다리. 

자전거 한 대가 멀리서부터 속도를 높인다.

중간쯤에서 거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내려오지 않고, 다리에 힘을 모아 위로만 위로만.

결국 내려오는 머리카락도 별로 없는 할아버지.

오늘은 꼭 성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리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뭐라고?

인생을 걸고 자존심까지 걸고, 누더기가 되더라도.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부럽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덜렁거리는 남자 아닙니까?

곧 죽어도 목에 핏대 세우는 머슴아 말입니다.    

 

요양 중인 선생님이 완치되어 6월부터는 나오시게 되었단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참 잘 되었다와 또 어디로 가지가 함께 섞이는 묘한 비빔밥 맛.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바로 전화가 온다.

포천이란다.

너무 멀다고 했더니, 관사에서 생활하면 된단다.

아내와 상의하고 연락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검색을 해보니 하루에 차가 한번 들어가는 곳이다.

휴전선 근방쯤 되는 모양이다.

전교생이 206명이라니 적어도 두 학년을 가르쳐야 하겠지.

설렘도 조금 두려움은 많이.

아내는 펄쩍 뛴다.

본인이 따라갈 수는 없고, 혼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으리라.

본인 아니면 나는 굶어 죽는 줄 아니까.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렵게 찾아주셨는데, 저의 사정이 그곳으로 가기에 어려움이 있다.

되도록 빨리 연락을 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고.

혹시 섬이었다면 바로 예라고 했을 텐데.

혼자서 머릿속에서 휴전선을 그려보았다.

총알 줍는 아이들, 철 모를 차고 노는 아이들....

그래도 임영웅이 나온 학교여서 고민을 한 번 더했다.     


목이 간질간질.

지난 밤새 기침을 했었다고 했다.

축 처지는 몸이 심상치 않다.

식은땀도 끈적끈적 이마에 맺힌다.

뭐가 문제였을까?

일요일 자전거?

막걸리 두 병?

감기를 모르고 산 지가 60년이었는데.

어떻게 계절이 바뀌면 여지없이 달라붙는다.

참 쪼글쪼글해졌다, 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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