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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점검

2024.05.22. 수

     

아카시아 향보다는 좀 묽은 것이 콧속으로 밀고 들어온다.

막무가내다.

담장의 붉은 장미.

코를 내밀어 킁킁거려 보지만 아니다.

엷은 풋내밖에.

엄지만 한 긴 줄기에 잔가지 몇.

밥알보다 작은 흰 꽃이 몇 개씩 달라붙어 있다.

군대에서 원 없이 베었던 싸리나무 같기도 한 것이 

온통 담을 기웃거리고 있다.

얼굴로는 승부가 안 되니 냄새로 죽이겠다는 심보.

그래, 뭐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지.

벌 몇 마리가 흰 꽃에 올라타 있다.

자식들 해가 중천인데.   

  

교문으로 들어서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싶으니 좀 서운하기도 하다.

꼭 내 심정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다소곳이 인사하는 폼들 하고는.

건너편의 교감 선생님.

교복을 입지 않은 아이들을 세워놓고 훈계하고 계신다.

이름을 적고, 내일 바르게 입고 교무실로 오라고.

교복이나 신발에 관대한 교장 선생님이 8월에 퇴임이니 문화가 많이 바뀌겠다 싶다.

일장일단이 있으니,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규칙을 지키는 자세도 필요하겠다.

이렇듯 정점에 있는 분이 누구냐에 따라 의도치 않게 삶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는가.

 

유독 진도가 늦은 6반.

수행평가 방법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는 바로 진도를 뽑는다.

이번 달로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말 따먹겠다고 달려들 몇 놈.

혹시나 김이 확 빠져버리면 뻘쭘해지니.

바쁘게 달리기도 해야 하지만, 나중에 툭 던져놓고 가야지.

그래봐야 강물에 돌 하나 떨어지는 일이겠지.

금방 표시도 없어질 테지만.

슬퍼진다.

새로 바른 시멘트에 모르고 지나간 발자국이라도 꽉 찍혔으면 하는 헛된 망상.  

   

자주 휴대폰을 본다.

3주짜리라도 꾸준히 왔던 부탁 전화가 갑자기 뚝.

포천이 아른거린다.

미련이 남았나?

못 먹어 본 막걸리 맛이 궁금한 것처럼. 

느긋해지자.   

  

보드게임반, 방송 댄스반 학생부 기록을 작성한다.

할리갈리 게임에 순발력을 발휘하여서가,

빠른 수리력으로 영혼까지 털어버린 승부욕을 발휘하여로.

음악에 맞춰 우아한 동작으로 표현하여서가,

곡의 리듬을 끌고 가는 춤 선이 우아하고 세련되었다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군살이 붙는다.

담백하게 사실만을 써야겠다 다짐하지만, 손이 머리가 제 맘대로 가는 것을. 

다시 한번 점검을 해봐야겠다.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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