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가장 위대한 원리인 사랑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위펭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마크 네포 흐름출판 2012
싸늘해졌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던 모양입니다. 나가보니 땅이 젖었습니다. 지나는 이들은 긴 소매 옷을 입었고 겉옷을 입었습니다.
어제 동네의 아는 이와 함께 봉제산을 걸었습니다. 맨발로 걸었지요. 가까운 곳에 아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 좋습니다. 언제건 시간만 맞으면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단을 오르고 소나무 사이 흙길을 지나고 이윽고 능선을 걸어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높이 105m. 고도가 높지 않기에 정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그래도 정상은 정상입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정자 옆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긴 장대로 감을 따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까치산도 있고 우장산도 있지만 봉제산은 그 산들과는 다릅니다. 우장산이 숲이 무성하고 나무들이 커서 잘 가꾼 공원 느낌이라면 까치산은 지나치게 속화한, 산의 느낌이 사라진 그저 공원의 느낌이지요. 봉제산은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산이라고 해야겠지요. 숲이 울창한 건 동일하지만 아주 큰 나무는 없습니다. 붉은 흙이 드러난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길이 있고 평평하지 않으며 숲 이리저리 길이 있으되 인적이 희미합니다. 잣나무, 소나무는 물론, 도토리나무가 있고 살구나무가 있고 감나무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곳저곳을 흘렀습니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지요.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간들의 의의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깨달음에 다다랐습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의 이면을 말해주고 있더군요. 더 큰 이유, 그 시간의 의도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에는 제목 자체에 지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명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명상의 목적은 지혜지요. 삶에 대한 지혜를 얻는 일, 혹은 깨우치는 일입니다. 한편 명상의 대상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느낌, 생각, 감정, 몸, 마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겪는 일이지요. 지혜는 특이한 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명상 또한 특이한 자세로 앉아서 하는 고된 수행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알아차림 할 수 있으니까요.
화곡동 디기탈리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삶을 위한 벌이를 하되, 여여하게 살아갑니다. 다소 변화는 있지만 우리의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지요.
사건은 우리에게 배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그 쉬운 말이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건을 겪으면서 고통을 겪기 때문이지요. 감정이 생각이 휘몰아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몰입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겁니다. 몰입에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몰입은 집중하게 하고 깊이 있게 들어가도록 합니다. 단점은 그 일에 온통 매몰되어 더 큰 시각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세상이 끝나는 듯한 슬픔을 겪게 합니다. 그 일은 우리가 왜 세상에 왔는지 삶의 목적을 생각하도록 한다는 더 큰 시각을 가지도록 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 생각이 왜 드는지 깨닫는 여유를 주지 않지요. 결국에는 그 사건이 우리 일상의 하나가 되고 어느 순간 문득문득 깨달음을 주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결국에는 진리니 영혼이니 삶의 목적이니 하는 것들에 이르렀지요. 수업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확장하는 이야기. 산길을 걸으면서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주제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우리 일상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일상은 온통 그런 일들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사소한 일은 큰일의 밑바탕입니다. 사소한 일은 삶의 근거입니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걷거나 읽거나 자는 그 모든 일들이 나를 발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천천히 밥을 씹으면 밥알의 맛을 진하게 느끼듯 그리하여 공복을 채우는 것이 몸의 공복뿐 아니라 감각의 허기를 채워 많이 먹지 않아도 풍성하듯 삶 또한 그러할 겁니다. 커피콩을 갈아 뜨거운 물을 부어내려 마시면 그 순간들이 아주 그윽해집니다. 많이 마시지 않아도 그 풍미를 깊이 느낄 수 있지요. 팔을 천천히 올려 정수리 위에서 맞잡으면 온몸에 기의 흐름이 원활해지듯.
우리는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기공 팔단금을 시작했지요. 자연에서 하는 기공은 실내의 기공과 다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표정이 밝아집니다. 자신은 못 느낄지라도 관찰하는 이는 알지요. 무의도 명상 여행에서 기공을 하는 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바뀌어갔다는 것이지요. 팔단금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여럿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는 것을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지식에서부터 기공, 그리고 만다라까지. 지식은 문학 공부로 얻은 것들이었고 기공은 몇 년에 걸친 수련으로 얻은 것들이었으며 만다라는 명상 공부에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닌 제 안에 쌓인 것들이었습니다. 제 생각과 느낌을 거쳐 숙성한 것들이었습니다.
아는 것을 전달할 때의 기쁨이 저로 하여금 정성을 다하게 했지요. 마음을 들였고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들의 받아들임이 깨달음이 변화가 정말로 기뻤던 겁니다. 제가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일 때 그토록 기뻤듯,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듯. 그ㄱ런 느낌을 맛보게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것이 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생은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이기에. 그것이 삶의 비밀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