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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마 May 24. 2024

몇 푼의 생활비라도…

나의 당근 알바 지원기


“당근”

오랜만에 당근 톡이 왔다.

보낸 이는 당근알바.

두근두근.

[알바 지원 결과 안내] 아쉽게도….


당근의 눈부신 발전을 경험하다


맨 처음 당근이 생겼을 때 너무 신세계였다.

아니 동네 사람들끼리 이런 나눔이 가능해? 가깝고 싸고 좋은 중고물품을? 이런 좋은 앱이!!

아이를 키우며 많은 거래를 했다. 금방 입고 작아질 옷가지와 모자, 장난감까지.

당근으로 키웠다고 하면 오버겠지만 특히 육아에 있어 당근의 지분은 매우 컸다.

당근이 제법 알려지며 tv에 연예인들의 경험담이 나올 무렵 다양한 사람이 드나드는 플랫폼으로 폭풍 성장했다.

각종 이상한 사람을 만난 당근썰이 많이 돌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던지 다들 좋은 사람들만 만났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나가며 당근을 할 일이 뜸해졌고 오랫동안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러다 3개월의 백수 생활에 중고물품이라도 팔아볼까 싶어 오랜만에 당근에 들어갔다.

‘헉…우와!‘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한 당근에서는 놀랍게도! 알바 자리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동네 사장님들이 구인하는 당근 알바라니.


대기업답게 쿠팡 알바가 제일 많이 검색이 되고 뒤로 가면 소소한 동네 가게에서 구하는 알바 자리들이 있었다.

‘앗싸 이거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낮시간 동안 소소한 생활비라도 벌어야 했다. 퇴사하기 전 나의 꿈은 내 브랜드 문구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꿈은 멀고 꿈같은 쿠팡의 주문은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꿈을 꾸려면 당장 몇 푼이라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나에게 조건이 맞는 알바를 지원해 보기로 했다.


오전 또는 낮시간.

홀서빙은 제외.

단기로 해볼 수 있는 것.


그러고 나니 해 볼 수 있는 알바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은 지원자가?


나의 첫 번째 지원은 한번 가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는 동네에 주꾸미 집 설거지 알바였다.

‘오호 집에서 운동삼아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주방에 콕 박혀 있고 5월 중 지정한 날짜 14일 정도만 나오면 되는 자리. 설거지는 늘 하던 거니…’ 하면서 호기롭게 지원했다.

오랜만에 두근대는 당근톡이 왔다.

[알바 지원 결과 안내] 아쉽게도  지원자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었어요….

지원자는 무려 9명이나 되었고 나는 보기 좋게 탈락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두근두근 면접이라니!


그 이후 두 번째 지원은 돼지국밥집이었다.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거리의 가게에 주방 보조를 구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10:30~13:30 재료손질, 주방보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그래.. 설거지는 없는 것 보니 야채들 좀 자르고 씻고 그런 것일려나’하면서 솔직하게 경험은 없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하겠다고 지원서를 썼다.

당근에서 답장 채팅이 왔다. 자신은 사장님의 아들이라며 가게에 부모님이 계시니 한번 방문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오호.. 이게 바로 면접인가’ 라며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면접을 보러 한번 들르라는 것은 거의 뽑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브레이크 타임을 지나 저녁 식사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렀다.

가게에 가니 인상 좋으신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러곤 집사람이 와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5분 뒤 여사장님이 어디선가 내려오셨다. 나를 보시자마자 앉으라는 말도 하기 전 첫마디는 “일 해보셨어요?”였다. “이런 식당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표정이 이미 일이 글렀음을 말해주셨다.

그래도 잠시 식당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 주방이라는 게 집에서 하는 일이랑은 다르다. … 주방 일도 정해진 게 아니고 이것저것 다 도와야 하고…. 생각보다 너무 젊어서…”

결론은 여사장님의 표정과 같았다.


하… 가게 문을 나서는데 조금 허탈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양파라도 한 번 썰어볼까요?’

더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어야 했나.

‘아니야. 수요일에 아이 치과 예약도 있고 금요일에 유치원 공개수업도 있는데…’

그때 가서 하루 빠진다는 얘기 할 바에야 차라리 잘 됐어.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내가 떨어진 두 자리는 모두 시급 1만 원이다.

사실 월급쟁이 시절엔 주는 대로 월급을 받아서 시급이 오른다 어쩐다 하는 말이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들어도 듣는 게 아니다. 영어로 hear와 listen이 다른 것처럼 시급이라는 것은 그저 내게는 귀에 스쳐가는 말이었다. 이제 나는 그 시급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시급 1만 원. 아니 정확히 법으로 정해진 금액은 9860원이다.

어제 카페에서 남편이 사준 커피와 디저트가 내가 뼈 빠지게 2시간 식당 설거지를 한다 해도 못 사 먹는 것이 되는 돈임을 실감한다. 아니 그보다 시급 1만 원의 노동력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어쩐지 슬프다.


남편의 월급이 주는 안정감과 “네가 하려는 일이 그것 맞나…. 왜 퇴사했는데… 당근 그만보고…”라는 진심 어린 폭풍 잔소리에 미안함을 느낀다.

진짜 백수 3개월 동안 녹록지 않은 현실이 와닿는 순간이다.

그래도 여전히 퇴사를 후회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갈 다양한 시도를 하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누군가에게는 포기를 결심할 수 있는 작은 참고자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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