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온 책을 인용해 보자면,
제2차 세계대전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하고 가혹한 수용소 생활..
그 안에서 두 부류의 인격이 나타난다.
감시병 중에는 아주 가학적인 고문을 즐기는 이가 있는가
반면, 수용자들을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고
사비를 털어 수용자의 약을 사 오는 사람, 자신의 빵을 아껴서 몰래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하루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고 넘기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떠한 인격이 나타났을까?
'전쟁'이라는 같은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은 성자처럼 행동하며,
또 다른 사람은 미천하게 행동한다.
결국, 환경이 사람을 반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꼭 수용소 같은 극한에 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직면해야 될 때가 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시련, 고통)에서
나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것은 나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 탓, 남 탓을 할 때가 참 많다.
'환경이 이러하니, 네가 이러하니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합리화를 참 많이 하고 산다.
나 또한 그래왔다.
언제까지 환경 탓, 남 탓을 하고 살 것인가.
결국, 그러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시련들이 무수하다.
그 시련 중에 이해할 수 없는 시련도 찾아온다.
나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시련에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난 기독교인이었지만 교회에 대한 회의감으로
방황을 하고 있었던 터라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내가 교회와 멀어져 하나님이 벌주시는 것인가'라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내가 잘못을 할 때마다 벌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난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시련과 고통을 나에게 주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하며 견뎌왔던 것 같다.
그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내가 죽음을 선택했더라면,
정말 아찔하다.
'하나님이 이 시련을 통해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이 메시지를 찾아보자'
이것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직도 그 시련에 대한 하나님의 정확한 메시지는 모른다.
지금도 그 이유를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난 그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련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터프랭클이 남긴 이야기로 이 글은 마무리하겠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빅터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