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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1)

1. 사건의 불씨

2007년 3월 11일 오전, 그와 함께 그 날의 아침에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20분 거리의 대형 교회를 향해 달리면서 나는 언짢은 기분을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간간히 이 문제로 벌써 몇일을 대립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게 이럴 일인가 답답했다.


얼마 전 공군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내 남동생이 군대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기 형과 우리가 사는 곳 시카고 지역을 시작으로 미국 여행을 마친 지 한 두어 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대학에 복학하기 전 영어도 공부하고 이런저런 경험도 쌓기 위해 나와 몇 달 더 지내기로 했다. 마침 우리가 사는 Arlington Heights 타운에서 무료로 ESL클래스도 제공하고 다양한 Business Writing 클래스도 제공하던 때라 동생은 여러 가지 수업을 챙겨 들으며 바쁜 우리를 돕고 우리가 출근한 사이 혼자 지내는 우리 시쭈 강아지도 돌봐주며 지내게 되었다. 나는 월말 분기말마다 바쁜 회계부서에 있으면서 급하게 강아지를 돌보기 위해 달려오지 않아도 되고 맘이 편했다. 하지만 이복 형제가 셋 더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 한 집에서 북적이며 지낸 경험이 많지 않은 그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종종 알 수 없는 일로 갑작스레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면 내가 동생과 그의 친구와 셋이서 아래층 거실에 앉아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와서 나에게 시끄럽다 화를 낸 일, 동생 친구에게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며 나를 들들 볶던 일 등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불만이 쌓여가는 듯했다.


그러다 그 주말 교회로 향하기 몇일 전 동생이 같은 수업을 듣는 동양 친구가 우리 집 근처 고급스러운 한국 고깃집, 우래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종업원을 더 구한다고 했다며 자기도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도 관광 비자로 들어와 현금을 받으면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기와 같은 상황이라 아마 원하면 자기도 일주일에 몇 시간씩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안 해본 일이라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선 나 자신도 대학시절 “학생은 공부만이 본업”이라는 부모님의 믿음에 따라 마땅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었던 터였고 더더욱 귀하게 자란 내 동생이 한식집에서 고기를 굽겠다는 의도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타지에서 해보는 새로운 경험인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반신반의하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딱히 반대나 찬성의 입장은 없었던 나는 강력한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그가 의아했다. 우리는 매우 넉넉하지도 매우 쪼들리지도 않았지만 동생에게 마음대로 쓰라며 용돈을 턱턱 쥐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동생이 본인이 쓸 돈을 본인이 벌겠다는데 내가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 아무리 막내라지만 과잉보호와 간섭이 극심한 집안 분위기를 고려해 내가 이것까지 방해하면 동생에게 좌절감을 심어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선 전형적이면서 꽉 막힌 보수주의 백인 남성이었으니 그에게는 동생의 의도가 매우 부조리한 일로 비추어진 듯했다. 그는 취업을 하려면 취업비자를 받아 와서 세금 납부의 의무를 다 하면서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합법적 절차가 있는 일이 아니라면 당연한 불법이며 이러한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정직한 사람들의 혈세는 오르고 정작 혜택은 세금 한 푼 더하지도 않는 불법 거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의료 혜택을 주는 데에 쓰인다며 격분하는 것이었다. 꽉 막힌 흑백논리로 옳은 것이 아니면 모두 틀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라는 것은 함께 살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사실이었지만 동생이 몇 주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면 얼마나 벌고 탈세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갑자기 불법 노동문제와 혈세문제까지 들먹이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그와 앞으로 어떻게 대화하며 살아갈지 막막한 마음이 앞섰지만, 교회로 향하는 그 길, 또다시 불거져 나온 이 이야기와 그의 단호한 태도에 아 그래 뭐 그럼 말라고 하지 뭐 라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이 나의 큰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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