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
"카드 강화에 성공하려면 제물을 바쳐야 해."
"빈 화면 몇 번 눌러주고 뽑으면 확률이 올라가는 느낌이야."
"내가 하면 잘 나와. 전에도 그랬거든."
게임 업계에 있다 보면 유저 게시판을 통해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확률형 아이템, 소위 말하는 '가챠' 시스템에서 유저들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전략이죠. 실제로 뽑기의 결과는 엄격히 정해진 확률에 따라 결정되지만, 혹자는 마치 자신이 그 결과를 통제하거나 최소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합니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면 문이 빨리 닫힐 것 같은 느낌, 복권 번호를 직접 선택하면 당첨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런 감정입니다. 실제로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결과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이런 감정은 분명 비합리적이지만 아주 쓸모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통제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더 깊이 몰입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최근 AI 기반의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사용자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줄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저들은 "내가 이걸 선택한 게 맞나?", "내가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기는 한 걸까?"라는 미묘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서비스 경험에 있어 사용자의 이런 착각을 없애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 통제감을 현실적인 피드백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서비스로 가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의 선택과 행동이 실제 서비스의 결과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피드백 시스템을 설계하면, 둘의 관계는 더욱 강력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비스의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지지만, 사용자가 자신의 통제력을 점차 잃어가는 것은 모두가 바라던 AI 세상의 모습은 아닐듯 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앞으로의 UX는 사용자의 통제감을 회복하는 정서적 설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넘어서서, 사용자와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까"를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제의 환상’은 없애야 할 착각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과의 관계에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중요한 감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