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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여정 Apr 03. 2024

벚꽃 만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야, 엄마.



어제 

독서실을 청소하러 가는 길이었어.


날마다 지나가는 길임에도 어제 따라 길이 낯설게 느껴지더라고.

매일 어둑해진 저녁에나 다니던 길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하루 만에 꽃이 활짝 피어난 걸까.


벚꽃이 만개한 나무가 쫙 펼쳐진 길을 지나가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어.

그리고는 문득 엄마 생각이 났어.


계절이 오고 가는지도 모른 채 일상에 쫓겨 살았을 엄마는

'봄'이라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이 벚꽃을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그저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어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덧 엄마 나이 65세가 되어 버렸겠지.


꽃처럼 예뻤던 엄마였는데, 

엄마는 지금

지고 있는 중일까.

다시 피어나는 중일까.

.

.

.


엄마와 나,

어디서부터 꼬여버렸을까.



엄마.

나 말이야.

엄마를 참 미워했었어.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그래서 엄마를 떠났던 거야.

그렇게 엄마와 거의 십여 년을 연락도 잘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아.

물리적인 거리를 핑계로,

바쁘다는 시간을 핑계로,

엄마를 외면한 채 그렇게 살았어.


돈만을 쫓으며 사는 엄마가 너무나도 싫었어.

늘 바쁜 엄마였기에

그 역할을 대신해서 내게 강요하는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웠어.

조금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채워야만 하는 나는 날마다 숨이 막혔어.

사춘기가 찾아왔던 시기에는

엄마한테 대들기도 하고 반항도 했지만,

엄마는 나를 조금도 이해해주지 않았지.

나 또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게 우린 서로를 탓하고 원망만 했어.


간절히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 

엄마가 정해놓은 세상에 갇혀 

나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종용받으며 

엄마의 뜻대로 살아야 했거든.

내 시간도, 내 꿈도, 모두 엄마의 것이었어.


나는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결혼을 택했고

그렇게 정상적이지 않은 판단으로 독립을 했지.


자유를 찾았다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갇혀버리고 말았어.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팔자란 돌고 돌아서 팔자라고 했던가.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제자리인 건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나 엄마처럼 살고 있더라.


엄마처럼 자식을 위한답시고

자식보다 돈을 우선시하며

일에 미치고, 돈에 미쳐 살고 있더라.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받은 자식의 마음 따위 외면한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더라.


어쩜 이렇게 지독히도 엄마와 똑같을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어쩜 이렇게 철저히도 엄마와 닮았을까.


엄마를 이해한다는 게,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에,

나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아직 제대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전혀 사랑스럽지도 않고

내가 전혀 이해되지도 않아.


인생을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아직 내가 불안하기만 해.


엄마를 이해하는 일은

나를 이해하는 일.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것.


엄마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분명치 않은 의식으로 누워 있고

나는 지금 마음의 방황을 하는 중이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내가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를 말이야.



내일은 엄마를 만나러 갈 거야.

담당의와 면담이 잡혔거든.

엄마가 날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벌써부터 걱정이 돼.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확인하면

내가 무너져버릴 것 같은데 어쩌지?


그럼에도 엄마 너무 보고 싶어.

내일 우리 웃으면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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