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의 부서는 인사, 운영지원, 기획조정 등과 같은 지원부서와 일반 정책을 다루는 사업부서로 나뉜다. 이건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보통의 기업도 마찬가지일 테다.
나는 제일 처음 지원부서로 발령이 났다. 단순히 일반적인 사업부서에서 일반 정책 관련 업무를 할 줄로만 알았지, 이런 지원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렇기에 희망 부서를 적을 때도 조직도 상 아래에 나열되어 있는 사업부서들만 순위를 매겨보았지, 사장님 직속 부서는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첫 발령지가 그런 곳이었다. 도무지 부서 이름만 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사실 지원부서들이 부서명이 제일 직관적이다. 그냥 당시 나는 마음을 닫고 있었을 뿐이었다).
입사 첫날 대회의실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한 명씩 발령 부서를 발표해 줬다. 나만 지원부서 발령이다 보니 다들 신기해하며 대학교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대학 전공과 전혀 연관은 없었다. 암튼 배치받은 부서에 가서 인수인계를 받는데 -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 그냥 조직도를 부지런히 보며 부서 이름과 각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빨리 외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건 정말 중요한 팁이었다.
지원부서에는 적응 기간, 공부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다. 동기들은 지침이나 법령집을 읽으며 사업을 숙지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에게 지침과 법령은 없었다. 그저 첫날부터 업무에 바로 투입되었고, 대신에 짝꿍 사무관님이 업무 메일 쓰는 법(사업부서 협박하는 법), 사업부서에게 협조를 잘 구하는 법(잘 쪼으는 법), 그 부서에서 누가 제일 협조적인지(누가 제일 호구인지)를 전수해 줄 뿐이었다.
동기들은 설레는 맘으로 사업 지침을 품에 안고 정시퇴근을 했지만, 나는 첫날부터 업무 연락을 돌리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23시가 되어 퇴근했고, 첫 출근이 걱정된 엄마의 시간대별 부재중 전화 5통에 눈물만 줄줄 흘렀다. 일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서는 첫날부터 일을 시키지 않나, 당연한 연거푸 실수에 "죄송합니다. 신규입니다"만 수천번 말했다고 엄마한테 이르는 대목에서는 서러움에 복받쳐 엉엉 울고 말았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지원부서 잔혹사는 끝이 없었다. 사업부서 입장에서는 허구한 날 자료 내놓으라는 지원부서만큼 성가신 존재도 없기에 "일 그딴 식으로 하지 말라."는 식의 내부민원은 해결할 수 없는 고역이었고, 같은 식구끼리 왜 이래ㅠ 뿌엥 울던 나는, 입사 2개월 만에 눈물이 쏙 말라버려 "장차관님 지시입니다." 메마른 목소리로 눌러 찍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미화된 추억들을 꺼내봐도 지원부서에 신규는 너무 가혹했다. 조직을 넓게 조망하며 조직의 생리를 배우고, 빌런들을 빨리 파악해 버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냥 내가 쥐어짜이는게 낫지, 남을 쥐어짜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동기들에 비해 일찍 눈물을 흘린 만큼 환멸 나는 이 조직에 빨리 무덤덤해진 거는 분명한 장점(?)이었다.
사실 그냥 지금 속해있는 부서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첫 부서와 많이 닮아서 문득 첫 출근날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도 안 잊힐 것 같던 첫 출근, 첫 부서, 첫 업무.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아직도 생생하고, 너무 별로였지만, 그 기억을 자원으로 삼아 지금껏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 같다. 추억보정을 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