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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13. 2024

탈출계획

- 세종시로 올라가게된 계기

 대학시절 지루하고 지리멸렬한 9시 첫 수업 강의를 듣던 중에 무심코 창밖을 봤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 집이 보였고, '아, 집에 가고 싶다.' 여느 때와 같은 생각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근처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내가 다녀온 유초중고대가 고작 한 프레임에 담긴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그때 기분이 얼마나 황당하고 처참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그 당시에 나는 탈출계획을 세워야 했다. 견디기 힘들었다. 단순히 유초중고대가 한 프레임에 보였기 때문에 떠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고3 동생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언니야 나는 ㅇㅇ대(나와 엄마와 아빠가 나온 대학교) 가기 싫다."라고 했을 때는 웃고 말았던 그 나의 안주가, 나를 초라하게 만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는 의문스러지만, 아무튼 그때의 나는 그랬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밖으로 나가겠다는 발칙한 결심일까나.


 그런데 우물에서 퍼질러서 놀던 개구리에게 탈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호기롭게 도전했던 취직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했고, 그건 울어도 소용없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 그 동네에 멈춰있었고, 다들 나보고 "너는 어려"라고 위로해 줬지만 대학마저 졸업해 버리는 나는 어느새 나를 수식하는 소속이 없다는 불안감까지 가중되었다. 지나간 시간들을 붙잡고 후회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나는 겉으로만 탈출을 갈망하고 실제로는 간절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무능과 게으름을 탓하고 있던 와중에 나와 피차일반의 상황이었던 남자친구가 먼저 탈출을 성공했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동네에서 초중고대를 나와, 나와 희한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던 이었다. 그는 충청도 어느 지역의 회사로 취직을 했는데, 장거리 연애에 대한 걱정보다 나보다 먼저 이 동네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운하고 괘씸했다. 나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한 그에게 감히.


 아무튼 일련의 불합격들이 나를 거듭 좌절시키자 나는 탈출은 내 운명이 아니라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 동네의 경력(?)을 쌓아 구의원이나 해야겠다는 망상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도전했던 시험 말고 다른 시험에 엉겁결에 합격을 해버렸다. 정말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림도 없더니만 마음을 놓으니 덜컥 탈출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내 평생 26년을 보낸 나의 홈타운 탈출계획이 종료되었다. 지금 충청 어느 동네에서 향수병에 젖어있는 현재 내가 생각하기에는 철없는 애송이의 섣부른, 잘못된 계획이 아니었나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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