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길 힘들어하는 너에게
안녕 나는 일기 쓰기 전문가야.
일기 쓰기 전문가라니 생소하지? 생소라는 단어에 생소하겠구나. 일기 쓰기를 돕는 사람 정도? 음 그러니까, 일기 쓰는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 논술 선생님 이렇게 계시는데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냐고? 그건 아니야. 나도 너처럼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일린이'었다가 오늘날까지 글이라고는 일기밖에 못 써서 일기 전문가가 된 특이한 일기 전문가야. 뭔가 좀 이상하다고? 그래 맞아. 어디 국가 공인 전문가 자격증을 딴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전문가라 붙여 주고서 도움을 바라는 훌륭한 사람도 아니야. 그럼에도 전문가라는 말을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있어. 일단 전문가라는 말의 뜻에서 보듯 나는 이 일을 무척이나 오래 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슬프나 괴로우나 시간이 있든 없든 배가 부르든 고프든 결혼했든 아닐 때든 상관없이 꾸준히 이 일을 했어. 어휴~
특히 알아줘야 할 부분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아니, 돈이 되지도 않는데 계속했다는 건 가짜(아마추어)라는 말이 아니겠냐고? 음. 그럴듯해(일견 일리 있어). 하지만 말이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의지를 꺽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계속 한 가지 일을 이어서 하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그 분야에서는 -혼자서 알아주는-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자칭 기술자. 이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거야. 왜냐고? 이 일의 특수성이 바로 전문성과 연결되거든. 뭐냐고? 일기는 비공개를 전제로 한다는 것. 그러므로 누구도 나의 전문성을 알 수 없다는 데 이 일의 특수성이 있고 그러므로 더욱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지.
뭐 누구에게 보여주고 증명을 받고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건 없다는 것. 나의 일기 인생은 엄청나게 길다는 점. 그러므로 나는 재야의 고수 같은 일기 전문가라는 거, 그것만은 알아둬. 그래서 네게 이런 일기 쓰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도 말이야. 내 소개가 길었지? 내가 일기 전문가라고 하는 바람에 말이 길어졌지만 일단 네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면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적합한지 알려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 전문가 자격증도 발급받을 수 없는 업종의 특수성을 설명하다 보니 이리된 걸 양해 바라.
그럼 내 소개는 그만할게. 초등학교를 입학한 네게 중요한 건 일기를 어떻게 쓰는 것인가? 그것 하나일 테니 말이야. 또 바로 들어가려니 못다 한 말들이 자꾸 뇌리를 스치네. 아참. 간단히 한마디만 하고 설명 들어갈게. 나는 말이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야. 일기도 글 아니냐고? 물론 그렇지. 그런데 내가 <안네의 일기> 같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나만 읽는 글보단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받는 글, 통찰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감을 줄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몰라도 뭐 소망으로 보자면 그런 글을 쓰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인 사람인데 말이야. 그걸 아직도 깨치지 못해 이렇게 40년째 일기만 쓰고 있단다. 아 갑자기 눙물...슬픈 얘긴 그만하고 일기 쓰는 간단하면서 강력한 방법을 말해 줄게.
일단 일기는 말이야 너도 배워 알다시피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을 내 기준에서 내 기분에 비추어 쓰는 글이야.
무척 개인적이고 내 마음대로인 상태를 쓰면 되는 거지. 어때 쉽지?
나한테 오늘 일어난 일을 내 기분대로 쓰면 되는 거.
자 예를 들어볼까? 별일 없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야. 어제와 다를 게 있을까 싶은 그런 하루 말이야. 그런 하루에서 무언가 글감을 끄집어 올려야 하는 그런 작업 해보자고.
나는 오늘 일어났다.
사실 나는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엄마가 나를 깨웠다. 곤히 자는 날 말이다. 일어나라는 소리에 일어나긴 했지만 나는 오늘 기분이 나빠지면서 일어난 거다. 엄마는 도대체 토요일 아침부터 날 왜 깨우는 걸까? 나는 입이 튀어나온 상태로 눈을 비볐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 나는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였다. 내 코를 자극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내 코는 공격당했다. 일어나자마자. 이건 분명 엄마 짓이지. 나는 눈을 반만 뜨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나를 깨운 이유는 이렇게 나를 아침부터 공격하게 위해서였던 거다.
오늘 아침부터 공격당한 나는 그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곳은 식탁. 그래 바로 이거야. 오늘 아침 치킨. 엄마는 내게 치킨을 먹이려고 아침부터 고함을 치셨던 거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이시려고, 따뜻할 때 한 입 먹이시려고 날 깨우신 거였던 거다. 역시 우리 엄마다. 나는 오늘도 엄마를 사랑해요.
자 이렇게 일기를 썼다고 치자. 학교에 제출할 일기로 손을 좀 보자.
일어났다. 실은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엄마가 깨운 거다. 곤히 자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오늘과 나를 빼고 간단히 바꾸면 제출용 일기는 완성이긴 해. 별거 없지? 그냥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만 정해서 사실을 몇 줄 쓰면 되는 거야. 비가 왔으면 비가 왔다는 말을 쓰면 되고, 태양이 뜨거웠으면 뜨거웠다는 말을 쓰면 돼. 태양이 뜨거웠다. 나가서 놀고 싶은데 싫어졌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태양이 싫어~태양이 싫어~~(미안, 아줌마 시대 아, 아니. 이 전문가님 시대 노래가 있단다) 너무 별거 없는 게 일기 아니냐고? 그렇게 보일 수 있지. 진짜도 별거 없어, 어때 할만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쉬워 보이는 건 내가 쉽게 설명해 주어서지 왜냐고? 대답해야지, 나는? 전문가니까~~! 잘했어! 그리고 하나 더!!! 꼭 '나'와 '오늘'이라는 말을 빼야 할까? 그건 너 같은 1학년은 나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에 꼭 그걸 넣어 문장을 시작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지.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단어는 아닌 거야. 하지만 기억해 너는 빼야 해 그렇지 않으면 위의 문장처럼 모든 글의 시작이 나는 오늘로 하게 될 테니까. 조금 더 자라서 나는 오늘로 시작하지 않고도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마음대로 '나는 오늘'을 써. 그건 네게 주는 선물이야. 전문가인 나를 믿고 써보렴! 그럴 때 있거든. 강조의 의미로 분명 내가 쓰는 글이지만, 내게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이라고 써야 할 때가 있단 걸 말이야. 외계인에게 뇌를 공격당해서 나의 뇌와 말하는 나가 분리된 사람의 예도 있는데 그건 넘어갈게("본인은~~~" 땡전 뉴스에서 전두광이 하던 말투란다. 요즘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는 있어. 정치보단 통치에 맛 들인 국군통수권자의 말투도 있지만 정치적 견해차가 있을 수 있으니 또 넘어갈게) 오늘 일어난 일이지만 오늘이라고 꼭 붙여야 글이 매끄러울 때도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오늘부터 아침 일찍 일어날 계획이었다. 어제 분명히 맹세했던 거다. 그런데 하루도 지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나는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뭐 이 정도의 예로도 나는 오늘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내 마음을 잘 나타낸다는 느낌이 들지? (어른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 에헴!) 그러니 무조건 꼭 반드시 기필코 절대 쓰면 안 되는 단어는 아니란 사실 잊지는 말아 줘.
자 그러면 일기 쓰기 전문가가 알려준 일기 쓰기. 어때. 좀 쉬었어? 그냥 그랬어? 별로였어? 여하튼 긴 글 읽느라 고생했어. 자 어서 가서 일기나 써. 나도 오늘 일기 쓰고 자야 하니까. 안녕 꼬마 고양이~~
(대문 사진은 좋아하는 동네. 진주 문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