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Oct 06. 2024

고도를 기다리며

곁가지로 글도 기다립니다

언제나 약간은 흥분 상태였다.


갑자기 <꼭 그러고 싶은 기분>에 휩싸여 휘갈겨 쓰기 마련이었다, 내게 글은. 바람 같은 존재였다.


더워서, 너무 더워 한 줄기 불어줬으면 바라지만 내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하게 제 멋대로 지나다니는 바람. 살을 찌르는 느낌이 싫어서 한 호흡도 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겨울의 바람. 텁텁할지언정 좀 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올여름 같은 날씨에 바라던 바람.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팔랑팔랑 이쁜 실루엣을 만들어줄 만큼만 불어주길 바라던 바람. 삽살개 앞머리처럼 변하게 해주는 얄미운 바람만은 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미용실 갔다 온 날 바람 등등.


우린 바라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네 생각이고~~"겠다. 희망 사항으로 끝나는 기대일 테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분다. 커튼은 쉼 없이 승무를 추고 해가 사라진 밤에는 추운 느낌마저 든다. 바람이 싫지 않으면서도 혹여나 자다 감기라도 걸릴까? 문을 닫게 된다. 바람을 바라는 마음과 바람이 그치길 바라는 마음.


언제나처럼 욕심이 들어찬 머릿속은 선택하지 못한 보기들로 가득하다. 이건 이런 점은 좋은데 이건 싫고 저건 저런 점은 괜찮은데 요게 별로고 식의 대책 없이 철저하기만 한 기분 분석이 진행 중이다. 언제나 어려운 건 선택과 집중. 고르지 못한 시간 동안 흐른 날들은 집중하고 노력해서 최선의 결과를 내어놓는 걸 방해한다. 언제나 마지막까지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하며 선택만 미룬다.


지금 글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며 뭐라도 하면 되련만 멍하니 고도라도 기다리듯 앉아 있다. 답이 없다. 허무만이 찾아오는 중이다. 뭐라도 왔으니 기다린 보람이 있는 건가?

바람도 글도 기대하던 것들은 원할 때 주어지지 않는다. 아니 바람도 억지로 일으키는 선풍기가 있고 글도 이렇게 아무 내용도 없지만 억지로 글자를 꿰맞추면 문장까지는 만들 수 있다.

자연스럽게 바람이 찾아오길 기다릴 수도 있지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좋은 글을 기다리면 찾아올지도 모른다. 언제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 인생 같다.


앞일을 알 수 없는 인생같이 모름의 묘미. 바람을 바란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듯 글도 원한다면, 무언가가 적힐 때까지 노동하는 방법이 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쓰고 싶은 것도 써지지 않지만, 무슨 글이든 그냥 훌렁훌렁 써지지 않지만 억지로 앉아 뭐라도 써본다. 이렇게 기다리면 글이 올지도 모르니까. 기다리며 뭐라도 쓰다 보면 또 뭐라도 써지니까.


그러니까 기다리던 글은 무언지 알 수 없으니, 가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가을, 그 느닷없음에 대하여>를 쓰기 위해 부었던 마중 글


(대문 사진은 좋아하는 진주 문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호 불어 먹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