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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세미 Jul 05. 2023

계란 흰자가 좋은 이유

첫 번째 이야기


 첫 만남의 서두에는 늘 나이, 직업 다음으로 오는 질문이 있다.

 “어디 사세요?” 

 “저는 경기도에 살아요. 용인이요.”

 “경기도 분인 줄 몰랐어요. 당연히 서울 분이신 줄 알았어요.”

 이제는 왜인 지 모를 익숙한 반응이 오면 ‘이건 칭찬인가? 경기도가 어때서.’ 라고 소심히 대꾸한다. (물론 속으로)


 



 평소 네모진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집중력도 부족한 지라 무언갈 챙겨보는 것에는 그닥 소질이 없다. 

 그러나 최근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줄이고자 몰두할만한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추천 받은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것이 ‘나의 해방일지’ 였다. ‘구씨’ ‘추앙해요’ 등 손에 꼭 붙어있는 핸드폰만 펼치면 클립이 쏟아지는 탓에, 이 드라마의 제목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위의 언급한 이유로 몇 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단 시간에 완결까지 보게 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용두사미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책을 읽어도 완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언젠가 진정 다독하는 법은 책을 다 읽어야겠다는 강박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보고 은연 중에 꽂혀 그랬던 것 일지도. (라고 합리화 하곤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드라마가 맘에 든 건 상대적으로 센세이션한 스토리여서도 아니고, 이로 인해 생각이 줄어서도 아니였고, 단순히 주인공의 설정 때문이였다.





 ‘나의 해방일지’는 꽤나 좋은 성과를 거뒀고 매니아 층이 두터운 작품이였으며, 세 남매의 스토리를 가지각색으로 각 시점에서 그리고 있고 그 배경은 ‘산포시’ 이다. 산포시는 드라마에서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하나의 도시이고, 현실로 빗대면 수원 언저리 그러니 내가 사는 용인시 쯔음 됐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사는 ‘용인시’는 집 앞 근거리에 스타벅스가 2개나 있으며, 전철역이 있고 영화관도 여러 개 있다. 드라마가 만든 가상의 세계처럼 논과 밭 또한 펼쳐져 있지 않으니 위치 상으로 ‘나마’ 가까웠던 거 같다. (왜 이런 것 들로 주인공의 거주지 같은 시골 풍경이 아님을 어필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흥미로웠다. 

 막차를 타고 가야해서 남들보다 일찍 자의적으로 자리를 파하고 나온다던가, 약속 시간이 한참 못 미쳐 누군가는 막 준비를 시작할 때 부랴부랴 집에서 나온다던가 등은 공감되고 현실적이라 다소 웃겼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1시간이면 가까운 거지. 코 앞이지.” 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도 서울에 거주하는 이와 약속이 생기면 흔쾌히 내가 이동하는 편이다. (강북이라던가 마포 쪽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흔쾌히)


 언젠가는 강남 부근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때는 월 마다 반복되는 숙제와도 같은 마감 업무가 끝나고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현대인들이야 만성피로라는 건 달고 사는 것이기도 하고, 할 건 해야 한다는 나의 고질적인 마인드 때문에 피곤함은 미뤄둔 채 당연스레 약속 장소로 향한 것이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툭 내뱉던 말이 있는데, 

 “피곤하지? 이렇게 왔다 갔다 하고 1시간 넘는 거릴 매일 다니는 걸 보면, 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야.” 라고 했다.

 “아 그냥 집이 멀어서 그런 것 뿐인데, 뭘.”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심 내 자신이 괜스레 갸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워낙에 강한 대문자 E 유형인지라 집에 가만히 못 있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주말이 되면 대체로 서울로 향한다. 그 곳엔 볼거리가 많고 내 취향 가득한 곳들이 풍성하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는 세 군데 정도로 추릴 수 있는데, 그 동네를 가면 웬만한 서울 사람보다 지리가 빠삭하여 앞장서 소개를 해주며 다닐 정도이다. 구글 맵이라도 켠 듯 익숙한 동네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디저트를 먹기도 하고, 산책을 하고 근황에 대해 공유한다. 보통의 주말이다.


 대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기분 좋은 인사를 주고 받고 어김없이 빨간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주머니 사이를 비집고 이어폰을 꺼내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그것을 풀어 귀에 꼽는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빼곡히 채운 제이팝이나 시티팝이 흘러 나온다.

 

 한남대로 초입을 빠져나오며 노을이나 한강 뷰를 응시하면 점차 어둠이 쏟아지고, 시야는 클락션을 빵빵 울리는 붉은 후미등을 킨 빼곡한 차들로 변한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감상적이여 지기도 한다.




 

 내게 이런 면모가 있다는 걸 나는 꽤 나이를 먹은 지금에서야 알았다. 20대 초 통학할 때나 입사 이후에도 편도 1시간 거리를 늘상 왔다 갔다 했으나, 음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머리만 대면 취기로 인해 골아 떨어진다던가, 누적된 피로와 이 세상에서 가장 무게감이 느껴지는 눈꺼풀을 못 이겨 쓰러지 듯 잠을 청하곤 했다.

 사실 학생인 그 시절보다 현재의 삶이 비교적으로 더 고단하고 체력 또한 퇴보 됐을텐데, 지금은 버스에서 눈을 부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시간이 언제부턴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평일은 업무에 치이고, 운동을 하는 날이면 몸부터 반응을 하기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일에 약간의 시간조차 쏟을 여유가 없다. 다들 그렇겠지만, 내 시간이 주어져도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보거나 킬링 타임용 쇼츠를 보는 등으로 마무리 한다. 모든 것에 방해받지 않는 나름의 최적화된 상태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평소 내 자신의 내면에 쏟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그 시간이 꽤 중요해졌다. 내 자신에게 한 주 재밌었냐고 묻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다시금 상기시키기도 한다. 벌써 소서구나 하며 한 겹 짜리 통유리 창 밖의 변해가는 계절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근심이나 걱정은 연 단위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맘에 걸리는 게 있다면 갈무리하기도 하면서.

 

 그러한 생각들로 한 주를 가다듬으면 어느새 산포시와 흡사한 용인시에 다다르고 있다.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_나의 해방일지 中

 

 

 나는 앞으로도 수도 없이 타게 될 빨간 버스를 좋아하며,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 어느 버스 안에서 제이팝 듣기를 좋아할 것이며, 한 주를 곱씹는 일을 즐길 것이고, 의도치 않게 부지런한 사람이 된 나를 기특해 할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경기도에 살고, 계란 노른자 보다는 흰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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