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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세미 Jul 13. 2023

그는 원래 술을 안 먹는 사람이였다.

두 번째 이야기


 지금이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인데, 20대 초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삶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과정은 스킵하고 결론부터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건지. 너무도 내 취미를 찾고 싶어서 남들 다 하는 헬스도 해보고, 테니스도 쳐보고, 등산도 다녀보면서 말이다. 그것이 현재도 지속이 되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작심삼일에 그치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에서 처음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것을 찾은 건 웃기게도 다름 아닌 ‘술’이였다. 나는 주 1회, 한 달에 평균 4~6번 술을 즐기는 정도이며 주량이 센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먹는 빵을 끊었으면 끊었지 술은 못 끊겠다면 설명이 될까.



 


 “술 언제 처음 먹어봤어?”

 술자리를 가지다 보면 한 번 쯤은 나오는 질문인데, 나는 대학교 OT때 술을 처음 접했다. 이 말을 들으면 백이면 백 거짓말 하지 말라며 눈을 가늘게 뜨곤 하지만 단연 맹세코!


 스무 살이 되던 해, 당시는 2012년이였고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있기 바빴다. 이제는 하도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대강당에서 마이크가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저녁 7시 경 예정된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들은 한 방이 8평 남짓 되보이는 커다란 콘도 방에 모였다.


 내 인생 첫 ‘술자리’ 라는 게 시작된 것이다. 대충 펼쳐진 신문지 위에 허기를 채울 그 나이 대의 십중팔구가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 그리고 과자 등 주전부리가 있었다. 우리는 빙 둘러 앉아 나의 학번보다 2~3년 차이가 나는 복학생 선배 지휘 아래 합창하며 ‘짠’을 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어른들의 음료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난 그게 되게 쓰거나 메스껍거나 아니면 한 잔 먹고 웩 한다던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 투명한 액체는 생각만치 쓰지 않았고, 술술 잘 넘어가는 것이였다. 술술 넘어가서 술인가? 하는 식상한 아재 개그가 나올 정도로.


 그렇게 해가 넘어갈 무렵 시작된 술판은 갓 20대가 된 이들의 위상에 걸맞 듯 고조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씩 나가 떨어지며 오바이트를 하거나 쥐 죽은 듯이 자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한 것들이 무색하게 ‘첫 술자리에서 내 주량을 가늠해보겠어!’ 라고 속으로 외치며 나는 또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했다. 패트로 된 초록 뚜껑의 병들이 몇 개인지도 셀 수도 없어질 쯤, 잠깐 술도 깰 겸 산책하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일어나려 하는데, 핑-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였다. 내 몸이 마치 다른 것들로 조종되는 기분, 그치만 정신은 있고 또 기분은 좋은. ‘아, 이런 게 취했다는 거 구나. 이래서 술을 마시는 거구나’ 하며 알딸딸한 상태로 또 연신 술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날밤을 새며 내 적성을 찾았구나 생각했다.





 강렬한 첫 음주 경험 이후로 물 만난 물고기라도 된 듯, 오늘은 누구 생일이라 또 다음 날은 금요일이라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며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셔댔다. 대학생 때는 같은 과 친구들과 치어리더 동아리 학우들과, 졸업한 후엔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들과, 또 그 이후 입사하고는 회사 사람들과 마시는 등 술을 먹는 대상만 바뀌었지 비슷한 이유로 마셨다. 물론 주 3~5회 가량 퍼부어 대던 나도 이제는 주에 1번 정도 기분 좋게 마시는 수준이니 애주가라고 치긴 뭐한 셈이다.


 정말 막 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나 주량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 날 괴로워했지, 나쁜 술버릇이 있거나 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편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술을 먹고 싸운다거나 집에 안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소위 말하는 ‘진상’ 짓을 하는 일 따윈 없었으니까. 

 

 내 술버릇이라고 하면 편한 사람 앞에서 조는 게 다인데, 이 또한 아무 앞에서나 그렇지는 않을 뿐 더러 귀소 본능을 상실한다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어 술 먹어도 곱게 먹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거다. 내 나름대로의 정직한 술 문화를 지향하면서 나의 일부로 고착시켰다고 할까.





 적절히 지속되던 나의 음주 생활(?)이 처음으로 붕괴된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근 2년 반 만인 꽤 오랜만에 연애를 했었고, 마치 첫 연애하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서툴렀다. 서툴다는 사전적 의미가 그러하 듯 익숙치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란 게 가랑비에 옷 젖듯 점진적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까.

 

 난 ‘사랑’이라는 것이 마치 도달점이 있는 것 처럼 내 마음의 크기를 측정하기 바빴다. 물리 시간에나 배우던 에탄올의 끓는점을 확인하기라도 하 듯, 내 마음은 지금 어느 정도 온도 쯤 인가를 두고. 사랑이라는 주제에 경중을 논하느랴 ‘마음이 더 달궈지고 커지면, 그 때 많은 표현을 해야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은 정말 크나 큰 실수였다. 실수는 반복됐고 우리는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툰 만남은 야속하게 답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이별이라는 결말을 맞게 했는데, 종지부를 찍는 과정에서 나지막히 그가 말했다.

 “술 잘 먹지도 않는데, 매주 내리 마셨네..”

 나는 참 그 상황에서 조차 “뭐가 서운했네, 네가 이렇게 해줬었다면-” 하며 그를 탓하기 바쁘고, 어떤 말을 해도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그 말이 뭐라고 일순간 미안해지는 거다. 미안하다 못해 아득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랬다. 그는 술을 1~3잔 정도가 주량일 정도로 술을 잘 못했고, 못할 뿐 더러 회식 자리에 가지 않을 정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데이트의 마무리는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 라는 나의 말을 듣고는, 우리는 마치 음식에 지켜야 할 도리라도 되는 듯 꼭 그렇게 하루를 매듭 짓고는 했다. 주에 평균 1번, 많으면 3번 씩 술 잔을 부딪히고 기울이면서 그는 마시는 족족 반 병 가량을 비웠다.

 

 나는 그게 너무 신이 나서 “역시 마시면 는다니까!” “이 음식에는 고량주가 맛있어! “ “이거는 증류주고, 이건 발효주야! 포트 와인은 어떤 유래가 있는데-” 하며 알려주기 바빴고, 그 역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려 부단히 노력해줬던 것이다.


 



 작별의 말을 들은 후에 마음에 난 작은 생채기는 커지고 커졌다. 술은 미화된 추억의 증폭제가 되어 받았던 사랑의 발자취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 발자취라는 것은 생각보다 방대했고, 그는 그간 많은 시간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애썼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어 미안한 감정은 미안함에 그치지 않고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별의 한 마디에 그렇게 확 무너져 다시는 쌓을 수 없는 모래성처럼 헤집어져 버렸고, 마치 12시가 땡 하면 누더기 옷으로 변하는 신데렐라 마냥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좋아하던 술을 마시는 게 버거웠다. 마신다고 한들 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술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보통 나는 이별을 하거나 걱정할 만한 사건이 있으면, 술 한 잔에 털어버리거나 위로주로 고별을 마치곤 했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하던 것을 해도 좋지가 않으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오늘은 괜찮겠지 하고 들이키면 눈물을 왈칵 쏟는다거나, 불면에 시달린다거나, 전화 통을 부여잡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으니까.

 

 점차 그것은 술에 그치지 않았다. 그 좋아하던 k리그 경기를 봐도 동그란 공에 집중이 되긴 커녕 추억에 잠기기 바빴고, 그 재밌던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꾹 닫아버리곤 했다. 그렇게 앓고 앓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술을 마신다. 그것은 잠깐 지나가는 사랑의 열병,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별 후유증 정도 였다. 당시엔 그것이 지속될 거라 믿어 내 인생에 커다란 구멍이 난 기분이였다. 난생 처음 느낀 크디 큰 싱크홀 같던 쓰라림도 나의 걱정이나 유난만큼 길진 않았고, 나는 또 여러가지 사유들로 “오늘은 운동이 힘들었으니까 삼쏘 고?!” 하며 술을 들이킨다.


 사실 단지 ‘술’이 가져다 준 건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 또는 사랑의 매개체 정도 됐음을 알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다. 나는 버릇처럼 부딪히던 술잔에도 뭔가를 배웠으니까.

 

 예컨대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해도 그것을 좀 더 일찍 알아차린다거나, 내가 보던 술을 반 병 비워내던 그 사람이 아니라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 사람 자체를 좀 더 들여다 보는 일 말이다. 또한 행여나 내가 원하는 결말이 오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끝났다고 믿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아는.

 

 언제나 그렇 듯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차리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이 드는 술 한 잔 해야될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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